▲ 송가연

[스포티비뉴스=이교덕 기자] 먼저 단순화하자. 잔가지를 치자. 줄기를 보자.

재판에서 원고 송가연이 승소했고, 피고 ㈜수박이엔엠이 패소했다. 송가연은 더 이상 ㈜수박이엔엠의 소속 선수가 아니다.

지난해 12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에 따라, 2013년 12월 1일 체결한 매니지먼트 전속 계약이 무효가 됐다. 원래 계약 기간은 7년으로, 송가연은 2020년 11월 30일까지 ㈜수박이엔엠 소속으로 활동해야 했지만 이제 다른 매니지먼트 회사와 계약할 수 있다.

법원은 왜 송가연의 손을 들어 줬을까?

송가연은 2015년 4월 소를 제기할 때, ㈜수박이엔엠이 매니지먼트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계약 해지의 사유가 된다고 주장했다.

송가연이 제시한 근거는 크게 다음과 같다.

①㈜로드FC와 ㈜수박이엔엠은 사실상 같은 회사로 대회사가 선수의 매니지먼트 업무를 동시에 하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부딪힌다. 수익 분배가 ㈜수박이엔엠 8, 송가연 2로 불공정하다.

②㈜수박이엔엠은 송가연에게 무리한 방송 스케줄을 강요하면서 운동 계획을 존중하지 않았다.

③㈜수박이엔엠은 운동선수와 무관한 연기 연습, 세미누드 느낌의 화보 촬영, 로드 걸 활동, 안내 데스크 당직 등을 요구했다.

④송가연은 정문홍 대표와 관계자들에게 성희롱적 발언과 '업계에서 매장하겠다'는 협박성 발언등을 들어 공황장애를 겪었다.

⑤송가연이 정산 자료를 요구했지만 ㈜수박이엔엠은 이를 제공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산정한 정산금을 지급했다.

⑥송가연이 2015년 4월 6일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자 ㈜수박이엔엠은 2015년 4월 13일 '특정 선수와 지속적으로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고'라는 자극적인 표현이 들어간 보도 자료를 배포해 송가연의 인격권을 침해했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①②③④⑤ 주장을 계약 해지를 요구할 만한 근거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판결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①송가연의 주장처럼 정문홍 대표가 ㈜수박이엔엠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해도 계약이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수익 분배 비율이 관행보다 송가연에게 불리하게 정해져 있더라도 송가연의 궁박, 경솔, 무경험을 이용해 계약이 체결됐다거나 내용이 너무 불공정해 무효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②'룸메이트' '띠동갑 내기 과외하기' 등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송가연이 감량하면서 예민한 상태에서 출연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실제로 송가연은 매체에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고 ㈜수박이엔엠도 송가연의 컨디션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촬영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③송가연의 연기 수업은 3회에 그쳤다. 로드 걸 활동은 계약 전에 이뤄졌다. ㈜수박이엔엠은 송가연에게 운동에 필요한 나름의 지원을 했다.

④정문홍 대표와 관계자의 성희롱성, 협박성 발언을 했다는 주장은 송가연과 관계가 있는 지인들의 말로만으로는 믿기 어렵다. 공황장애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⑤㈜수박이엔엠이 정산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송가연도 이를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아 송가연이 번 수입보다 ㈜수박이엔엠이 쓴 비용이 더 큰 상황으로 보인다.

그런데 법원은 송가연의 마지막 ⑥ 주장에 주목했다. ㈜수박이엔엠이 2015년 4월 13일 배포한 보도 자료가 송가연의 이미지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보도 자료에는 "송가연은 그간 소속 팀의 공식 훈련에 수십 차례 불참하는 등 운동선수의 기본을 망각해 왔다. 19살 무렵부터 소속 팀 특정 선수와 지속적으로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이것 때문에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특별 대우를 요구해 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당시 보도 자료를 받은 여러 매체들은 '비정상적인 관계'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제목으로 잡아 기사를 썼다. 송가연의 사생활에 대한 다양한 추측성 댓글이 뒤따랐다.

법원은 여기서 20대 초반의 여성 송가연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됐다고 봤고 인격권이 훼손됐다고 인정했다. 법원은 ㈜수박이엔엠이 송가연의 매니지먼트 회사, 즉 송가연을 지원하고 홍보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 회사인데 오히려 송가연의 이미지를 망치는 보도 자료를 작성했기 때문에 매니지먼트 계약의 기본이 되는, 양측의 신뢰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수박이엔엠은 송가연이 팀 내에서 교제하던 선수가 경쟁 회사로 이적하니까 송가연도 함께하기 위해 계약 해지를 요구했던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악의적인 내용의 보도 자료 배포는 계약을 유지하려는 뜻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즉 법원은 '신뢰 관계' 회복이 어려우니 계약을 무효로 한다고 판결 내렸다. 이것이 양측 법정 싸움의 줄기다. 키워드는 '신뢰 관계'다.

그러나 송가연과 ㈜수박이엔엠의 갈등은 계속된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송가연이 따로 체결한 ㈜로드FC와 계약이 해지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로드 FC 선수들은 ㈜로드FC와 대회 독점 출전 계약서를, ㈜수박이엔엠과 매니지먼트 전속 계약서를 쓴다. 송가연이 확실한 자유 계약 신분이 되기 위해서 ㈜로드FC와 계약도 해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양측은 평행선에 서 있다. 송가연은 ㈜로드FC와 ㈜수박이엔엠은 사실상 같은 회사이기 때문에 ㈜수박이엔엠과 계약이 효력이 없게 된 순간부터 ㈜로드FC와도 독점 계약이 실효됐다고 주장한다. 로드 FC에서 싸울 생각은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8일 재판에서 이기자 송가연의 소송 대리인 법무법인 세종은 "법리상 로드 FC 측의 계약 위반이 명확하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당연한 결과다. 사법부가 거대 단체 앞에 선수들이 더 이상 희생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린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냈다. 여기선 피소한 주체가 '수박이엔엠'이 아니라 '로드 FC'라고 표현했다.

반대로 ㈜로드FC는 송가연과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며 송가연의 복귀전은 로드 FC 무대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제부턴 여론전 양상이다. 최근 양측이 조금씩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누가 어느 편에 서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든 양측 모두 상처가 많이 남을 수밖에 없는 '치킨 게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의 판결 내용으로 커다란 줄기를 살펴봤다. 필요하다면, 줄기 속을 들여다볼 차례다. 양측이 살을 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각오로 폭로전을 펼칠 생각이라면 과감히 줄기의 껍질을 벗겨내겠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대회사와 선수의 신뢰 관계는 어떻게 유지돼야 하는가', '그들의 의무와 권리는 무엇인가', '양측의 분쟁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등이다. 결국엔 대회사와 선수, 지도자와 선수, 선수와 선수 등 여러 관계를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때다. 이미 큰 줄기에서 양측의 싸움은 법원이 정리해 줬다.

약 15년 동안 빠르게 성장해 온 대한민국 격투기계는 이번에 그 안을 들여다볼 기회를 얻었다. 가지가 마르고 줄기가 힘을 잃는 이유가 무엇인지 뿌리까지 살펴봐야 한다. 앞으로 땅 속 뿌리로 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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