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강릉, 조영준 기자] 그 어느 해보다 알찬 결과가 많았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유망주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국제 대회에서 경쟁력이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남자 싱글과 여자 싱글이 동시에 주목을 받은 적은 드물었다. 8일 막을 내린 KB금융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제 71회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은 남녀 싱글에서 모두 뛰어난 선수와 기록이 나온 대회였다.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희망 차준환(16, 휘문중)은 국내 최고 권위의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정상에 올랐다. 그는 프리스케이팅에서 클린 경기에 실패했지만 주니어 부문에서 세계 정상급 실력을 자랑했다. 여자 싱글은 춘추전국시대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임은수(14, 한강중)가 최종 승자가 됐다. 임은수는 190점을 넘는 성과를 나타내며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선전을 예고했다.

그러나 한국 피겨스케이팅이 걸어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차준환은 얇은 선수층 속에서 뚝 떨어진 보석이다. 여자 싱글에는 많은 인재가 나타났지만 이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이 절실하다.

▲ 2017년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여자 싱글 1그룹에서 우승한 임은수(가운데)와 시상자로 등장한 김연아(왼쪽) ⓒ 강릉, 곽혜미 기자

'남자 김연아' 차준환, 황무지에서 등장한 또 다른 보석

이번 대회 남자 싱글은 1그룹과 2그룹을 모두 합쳐 16명에 불과했다. 김연아(27)의 영향으로 여자 싱글 지망생들은 꾸준하게 늘고 있다. 반면 남자 싱글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있다.

사공경원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전문 선수로 활동하는 남자 선수들은 50명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피겨스케이팅은 다른 종목과 비교해 수명이 짧다. 남자 선수들은 여자 선수들과 비교해 가능성이 늦게 나타난다. 20살이 넘은 뒤 빛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에서 남자 선수들이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데에는 걸림돌이 많다.

남자 선수들이 하나둘씩 빙판을 떠나는 이유는 군 문제 때문이다. 피겨스케이팅은 국군체육부대종목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남자 선수들은 스무살을 넘으면 자연스럽게 은퇴를 선택한다. 피겨스케이팅은 매일 꾸준하게 연습해야 점프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입대해 공백이 생기면 선수 생명은 끝난다.

▲ 2017년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 남자 싱글 1그룹에서 우승한 차준환 ⓒ 강릉, 곽혜미 기자

국군체육부대에 피겨스케이팅 종목이 없는 것은 물론 변변한 실업 팀도 없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문제도 있다 보니 선수 생활을 하기가 녹록치 않다.

사공 부회장은 "연맹은 국군체육부대에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피겨스케이팅은 국군체육부대와 맞지 않다는 소리도 들었다. 이 점이 해결돼야 남자 선수들이 오랫동안 선수로 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차준환이 급부상하기 전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을 이끌어 온 이는 김진서(21, 한국체대)와 이준형(21, 단국대)이다. 이들도 어느덧 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전 국가 대표 김민석(24, 고려대)은 2015년 입대를 앞두고 은퇴할 수 밖에 없었다.

전문 선수가 50명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차준환이 등장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이 발전하려면 국내 대회에서 차준환과 어느 정도 경쟁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이번 종합선수권대회에서 200점을 넘은 이는 차준환(238.07)과 김진서(216.16) 밖에 없었다. 부상인 이준형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시형(17, 판곡고)이 이번 대회에서 182.81점을 받으며 선전했다. 그의 선전은 고무적이었지만 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선수층은 여전히 얇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남자가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것에 대한 시선이다. 일본의 경우 여자 싱글이 주춤할 때 남자 선수들이 붐을 일으켰다.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하뉴 유즈루(22)의 등장은 일본 피겨스케이팅의 판도를 바꿨다.

한국도 차준환의 등장을 발판 삼아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새로운 지평을 열 때가 왔다.


'리틀 연아'의 치열한 경쟁, 여자 싱글 미래 예사롭지 않다

남자 싱글은 차준환의 우승이 전망됐다. 그러나 여자 싱글의 결과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다. 7일 끝난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임은수(14, 한강중)는 64.53점으로 1위에 올랐다. 63.98점을 기록한 김예림(14, 도장중)은 2위를 차지했고 김나현(17, 과천고, 62.87점)이 그 뒤를 이었다.

임은수와 김예림의 점수 차는 0.55점이었다. 김예림은 김나현에게 1.11점 차로 앞섰다. 작은 실수가 순위를 결정하기에 선수들은 프리스케이팅에서 피말리는 경쟁을 펼쳤다.

여자 싱글 최종 승자는 임은수였다. 그는 쇼트프로그램에 이어 프리스케이팅에서도 클린 경기에 성공하며 191.98점을 받았다. 임은수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한 번도 점프 회전 부족에 따른 언더 로테나 다운그레이드 판정이 지적되지 않았다. 그의 프로토콜은 깨끗했고 몇몇 기술에서는 높은 가산점(GOE)을 챙겼다. 기술은 물론 예술점수(PCS)도 다른 선수보다 월등했다.

임은수의 이런 점은 김연아와 비슷하다. 긴 비거리의 점프와 풍부한 표현력을 동시에 갖춘 점은 김연아와 임은수의 공통점이다. 임은수는 "아직도 나는 (김)연아 언니보다 100분의 1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1위를 해서 기분은 좋지만 지켜야 할 자리다. 지키는 것이 중요하니 앞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임은수는 국내 대회 여자 싱글에서 김연아 이후 190점을 넘었다. 2014년 종합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김연아는 227.86점의 점수를 받았다.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식 점수로 인정받지못한다. 박소연(20, 단국대)은 지난해 11월 ISU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 총점 185.19점을 받으며 4위에 올랐다. 김연아는 여전히 여자 싱글 역대 최고점(228.56)의 주인공이다. 국내 선수들 가운데 김연아 다음으로 공식 인정된 높은 점수를 얻은 이는 박소연이다.

국내 대회에서 나온 191.89점이지만 값진 결실이다. 임은수는 주니어 그랑프리 7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당시 그는 쇼트프로그램에서 선전했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흔들렸다. 이런 경험은 좋은 밑거름이 됐고 이번 대회에서 결실을 맺었다.

임은수는 "올 시즌 연습 때는 좋았는데 경기에서는 그대로 하지 못해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 대회 결과가 좋아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 대회에 출전하면서 제 페이스를 찾는 법을 배웠다. 긴장해도 마음을 다잡는 방법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 2017년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에 시상자로 등장한 김연아 ⓒ 강릉, 곽혜미 기자

김예림도 높은 수준의 점프와 기술을 펼치며 183.27점으로 2위를 차지했다. 김나현은 오른쪽 발목 부상을 이겨 내며 181.48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번 대회 여자 싱글에서 180점을 넘은 이는 5명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경기가 진행된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 대해 "온도가 따뜻하고 빙질이 좋아 연습과 경기를 하기에 편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선수들의 성적이 대체로 좋았던 점은 좋은 시설에서 경기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앞으로 점점 개선돼야 한다. 한국은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열지만 여전히 빙상경기 종목 훈련 환경은 좋지 않다. 춥고 딱딱한 아이스링크는 선수들의 성장에 발목을 잡는다. 평창 올림픽은 물론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까지 내다볼 때 선수들이 최상의 훈련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분명히 김연아 이후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이했다. 이 기회가 '제2의 전성기'로 이어지려면 깊은 고민과 실천이 따라야 한다.

[영상] 차준환, 임은수 프리스케이팅 경기 ⓒ 촬영 김의정 촬영 감독, 편집 장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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