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글 딥마인드사 데미스 하사비스 대표(왼쪽), 이세돌 9단 ⓒ 구글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인공지능(AI) 시대다. 체스, 퀴즈 쇼에 이어 바둑에서도 AI가 완승 깃발을 꽂았다. 바둑은 무한하다. 10의 170제곱에 이르는 경우의 수를 지녔다. 인류 최고(最古) 두뇌 승부로 꼽힌다. 그 바둑마저 기계를 당해 내지 못했다.

술렁였다. 세계 바둑계는 '예견된 우울'에 허덕였다. 지난해 한·중·일 바둑 최고수를 상대로 60전 전승을 거둔 닉네임 'master'가 알파고인 것으로 밝혀졌다. 약 9개월 만이다. "인간이 진 게 아니라 이세돌이 진 것"이라며 치열한 기계와 승부가 예고된 지 1년도 안 돼 세계 바둑 1인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전세는 뒤집혔다. 바둑 AI가 인간을 이겼다.

기회다. '뼈아픈 패퇴'를 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기계가 편입되면 더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17세기 블레즈 파스칼, 20세기 앨런 튜링이 발명한 계산기 덕분에 세계 수학계는 혁신적인 성장을 이뤘다. 애초 수학자가 설 자리를 뺏을 거라며 비판 여론이 거셌다. 기본 계산력이 뒷걸음질 쳐 증명에 접근하는 사고력 확장에 애를 먹을 거라는 경고음이 일었다.

컴퓨터도 그랬다. '애니악'은 현대 컴퓨터 효시로 불린다. 이 기계가 처음 나왔을 때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다. 현존하는 직업 80%가 사라질 거라고 했다. 질타가 봇물을 이뤘다. 명분도 약했다. 애니악은 미국 국방부가 탄도탄을 계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대 지식인, 직업인이 격렬하게 반대했다. 포연이 멈추면 활용 폭이 좁아질 전쟁 산물이라고 수군댔다. 

예상과 달랐다. 컴퓨터는 보폭을 넓혔다. 방 하나를 가득 채웠던 '덩치'가 조금씩 작아졌다. 더 똑똑해졌다. 발전을 거듭하며 접근 가능성을 키웠다. 일상에 스몄다. 탄도탄 거리 계산을 위해 탄생한 이 기계는 이후 인류 삶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쓰였다. 이밖에도 증기기관, 자동차, 인터넷, 스마트폰 등이 비슷한 궤적을 그렸다. 첫선을 보인 '기계들'은 예외 없이 등장 초 홍역을 치렀다.

스포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20년 전 체스가 그랬다. 영리한 기계가 종목 인지도를 크게 키웠다. 1997년 5월 세계 챔피언 개리 가스파로브가 무너졌다. 11년 동안 최강자로 군림한 '체스 황제'가 IBM 슈퍼 컴퓨터 딥블루에 완패했다. 인간을 이긴 첫 컴퓨터였다. 체스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미래학자 레이몬드 커즈와일의 예측보다 1년 빨랐다. 가스파로브는 "언론 헤드라인을 '경악'이라는 단어로 도배하게 만들었다"며 고개를 떨궜다. 세계 언론은 인공지능 통제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흥분보다는 비관이 많았다.

체스는 저변이 넓다. 우선 역사가 깊다. 5,0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시간을 견뎠다. 체스를 즐기는 인구는 약 6억 명으로 추산된다. 천문학적인 상금 규모를 갖춘 국제 대회도 많다. 그러나 서구권에 국한됐다. 아시아에서는 힘을 못 썼다. '서양판 장기' 정도로 인식됐을 뿐 큰 인기를 누리진 못했다. 

이때 딥블루와 인간 대결이 체스 인기에 불을 지폈다. 'AFP통신'은 '무릎 꿇은 챔피언이 역설적으로 체스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체스판 바깥은 여전히 아이러니가 지배하는 인간 세상'이라고 말했다. 인간을 제압한 인공지능 뉴스는 전 세계로 타전됐다. 파괴력은 예상보다 컸다. 유럽이 낳은 두뇌 스포츠가 아시아인 입에 오르내렸다.

거꾸로다. 이제는 바둑이 유럽과 미국으로 퍼질 차례다. 동아시아를 넘어 지구촌 구석구석 바둑의 매력이 홍보돼야 한다. 사양(斜陽) 위기가 아닌 천우신조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가로, 세로 19칸 대국판에 마주 앉은 벽안의 두 사람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바둑의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고 국민 관심을 제고하면 새로운 먹거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바둑 AI 개발을 위한 범정부적 TF 구성에 속도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 파고에도 효과적으로 몸을 맡길 수 있다. 빼어난 'AI 각성제'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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