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오넬 메시(가운데)를 막으려면 수비 간격을 좁힐 수밖에 없다. 협동 수비가 아니라면 메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득점을 올릴 것이다.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국제축구연맹(FIFA)의 기술위원장이자 네덜란드 축구의 전설적 공격수 마르코 판 바스턴이 오프사이드 규정 폐지를 주장했다. 그는 "현대 축구가 핸드볼을 닮아가고 있다. 골문 앞에서 10명의 선수가 수비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오프사이드를 없애면 다양한 전술이 나오고 더 많은 골이 터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의견이 상당한 가운데 논란이 지속되자 판 바스턴은 "오프사이드를 당장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논의하자는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판 바스턴의 주장으로 오프사이드 규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29일(한국 시간) 스페인 세비야 에스타디오 베니토 비야마린에서 열린 2016-17 시즌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베티스 경기는 1-1 무승부로 마무리됐지만 오프사이드 규정과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경기였다. 바르사가 공교롭게도 오프사이드 판정 오심으로 1골을 도둑 맞으면서 승리를 억울하게 놓쳤지만, 베티스의 경기력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고 강하게 바르사를 밀어붙였다. 베티스가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오프사이드가 있었다.

판 바스턴의 의견대로 오프사이드 규정이 폐지된다면, "차라리 새로운 종목을 만들어야 된다" 리버풀 위르겐 클롭 감독의 말처럼 축구는 현재와 완전히 다른 종목이 될 수 있다. 오프사이드 규정이 정말 축구를 수비 일변도로 만들고 있는지, 오프사이드 규정이 폐지되면 정말 축구가 재미있어질 것인지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베티스의 경기를 예시로 검증해 본다. 

FACT CHECK 1. 오프사이드가 수비적 경기 운영을 유도하나

베티스는 바르사를 전방에서 강하게 압박해 경기를 주도했다. 높은 위치에서 직접 공을 빼앗아 슛으로 연결하기도 했고, 바르사의 패스 미스를 유도해 공의 소유권을 찾은 뒤 공격을 펼치기도 했다. 전방 압박은 매우 공격적인 전술이다. 판 바스턴은 극단적 수비 전술을 없애기 위해 오프사이드를 폐지한다고 주장했지만, 오프사이드가 없었다면 전방 압박은 펼치기 어려운 전술이다.

전방 압박 전술에서도 선수들이 좁은 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좁은 간격을 유지해야 빠른 커버 플레이가 가능하고 협력 수비를 펼칠 수 있다. 메시 또는 네이마르처럼 압도적인 개인 기술을 가진 선수를 막기 위해선 협력 수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간격이 벌어지면 발이 빠르거나 기술이 좋은 선수들은 손쉽게 화려한 돌파를 펼칠 수 있다. 빠른 발을 활용해 '치고 달리는' 드리블에도 대처하기 힘들다.

그래서 전방 압박을 펼치는 팀도 반드시 전후 간격을 유지하기 위해 최종 수비 라인을 높은 위치까지 끌어올린다. 수비는 오프사이드 규정이 있어 공격수의 위치를 컨트롤할 수 있다. 수비 라인이 전진하면 공격수 역시 오프사이드를 피하기 위해 수비 라인에 맞춰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오프사이드가 사라진다면 전방 압박 전술은 유지되기 어렵다.

베티스가 전방 압박을 펼칠 때 최종 수비는 중앙선까지 전진했다. 오프사이드 규정이 없다고 가정하면 바르사의 공격수들은 수비수를 따라 중앙선 아래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다. 바르사의 공격수는 베티스 수비수보다 골문과 가까운 곳에서 긴 패스를 기다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지금처럼 오프사이드 라인을 무너뜨리기 위해 침투나 리턴패스로 유기적인 패스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한 번에 수비 뒤를 노리는 단순한 패스가 축구를 흥미롭게 만들까.


FACT CHECK 2. 10명이 골대 앞에 있기만 하면 수비가 될까?

베티스는 전방 압박을 기본으로 했지만, 바르사가 압박을 벗어나면 뒤로 물러나 두 줄 수비를 구축했다. 베티스는 수준 높은 수비 조직력으로 MSN(리오넬 메시, 루이스 수아레스, 네이마르)을 앞세운 바르사의 공격을 막았다. 정말로 10명 모두 골문 앞을 지키면 개인 기술과 관계없이 수비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

바르사의 수비를 보면 이 주장이 사실이 아니란 것을 볼 수 있다. 바르사도 베티스가 공세를 강화할 땐 수비 라인을 골문 앞까지 내리고 미드필더와 간격을 좁혔다. 그러나 바르사는 베티스의 지공 상황에서도 여러 차례 위협적인 상황을 허용했다. 문제는 대인 마크를 확실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르사는 침투하는 선수들을 놓치기 일쑤였고, 패스를 받는 선수가 슛을 시도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 주기도 했다. 

단순히 약 팀이 강팀을 괴롭히기 위해 '두 줄 수비'가 등장한 것이 아니다. 10명의 수비가 진을 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적절히 섞고 모든 선수가 성실히 뛸 때야 강력한 수비를 펼칠 수 있다. 수비 조직력을 갖추는 것이 유기적인 공격 전술을 만드는 것보다 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팀이 수비 전술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축구는 드리블 돌파 수나 패스 횟수가 아니라 골이 목표인 스포츠다. 90분 내내 수비만 하는 팀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그래서 최근의 수비 전술은 역습 전술과 짝을 이루고 있다. 수비적인 팀도 언젠가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고, 이는 동시에 공격적인 팀에는 반대로 기회가 될 수 있다.

FACT CHECK 3. 수비 전술은 공간을 없애고 있나

판 바스턴 위원장은 "수비 전술이 공간을 없애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반대로 수비 전술이 발전하면서, '이미 있는 공간을 이용하는 축구'에서 '공간을 주도적으로 만드는 축구'로 공격 전술 역시 변화하고 있다. 축구의 공격 전술은 더욱 세밀하고 유기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2선에서 침투를 시도하면서 밀집 수비의 형태를 무너뜨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 1일 리버풀과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대표적인 예를 찾을 수 있다. 0-1로 뒤진 리버풀은 후반전 공세를 강화했는데, 엠레 찬, 조르지뇨 바이날둠 등 미드필더들이 끊임없이 박스 안으로 침투하면서 첼시의 수비들을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측면 수비수들도 적극적인 오버래핑으로, 형태를 갖췄던 첼시의 수비에 균열을 만들었다. 미드필더가 침투하며 만든 페널티박스 정면의 공간에서 조던 헨더슨의 패스가 왼쪽 수비수 제임스 밀너의 머리를 거쳤고 바이날둠이 달려들며 머리로 마무리했다.

이제 공격수가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공간을 만들기 어렵다.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이용할 것인가는 밀집 수비를 어떻게 뚫을 것인가와 직결된 문제다. 오프사이드가 없다면 지공을 펼치는 팀은 단순하게 골문 앞에 공을 때리는 단순한 형태가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오프사이드 때문에 공격 전술이 세밀해지고 있다. 단순한 개인 돌파가 아니라 팀의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고, 또 이 공간으로 적절히 침투하는 형태로 공격 전술도 변화하고 있다. 

베티스는 바르사를 상대로 더 능숙한 공간 활용을 보였다. 일단 좌우 측면 수비수의 공격 가담이 잦았고, 역습을 시도하다가 역습 속도가 떨어졌을 땐 주변에서 스루패스를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침투했다. 직접 공을 받아 공격을 이어 갈 수도 있고, 침투하는 움직임만으로 다른 동료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수도 있었다.

바르사는 역습 때도 공간으로 침투하기 보다 공을 직접 받고 드리블로 운반하길 원했다. 공격의 속도는 떨어졌고 예측이 가능했다. 측면 수비수 루카 디뉴와 알레이스 비달이 공격 가담을 할 때 공간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MSN만으로 공격을 할 때보다 동료들이 침투할 때 더 위협적인 공격을 펼칠 수 있었다.


FACT CHECK 4. 수비 전술이 축구를 단순하게 만들고 있나

현재 시점에서 수비 전술이 더 단순하고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대응책이 충분히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축구 전술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주류 전술을 깨뜨리기 위해 새로운 전술이 나오곤 한다. '패스'와 '점유율'이 화두로 등장했던 '티키타카'의 시대가 있었다. 2010년을 전후해 바르사와 스페인 A 대표 팀이 세계 축구를 주도했지만, 결국 '두 줄 수비'와 '압박' 전술이 나오면서 전성기를 지났다. '두 줄 수비'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AT 마드리드 역시 최근 전방 압박 전술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수비 전술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상급 팀들도 두 줄 수비의 개념을 알고 있고 상대가 주도권을 가졌을 땐 두 줄 수비를 펼치곤 한다. 다만 수비를 펼치는 시간이 적을 뿐이다. 상위권 팀들 역시 수비 전술 발전의 결실을 함께 누리고 있다. 하위권 팀들이 상위권 팀에 대항하기 위해서만 수비 전술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줄 수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실마리를 바르사와 베티스의 맞대결에서도 볼 수 있었다. 후반 45분 바르사의 패배를 막은 득점도 역습으로 나서는 베티스의 공격을 메시가 끊으면서 시작됐다. 베티스의 수비 형태는 완전히 무너졌고 수아레스에게 허무하게 실점했다. 

어떤 팀이든 역습을 펼치는 타이밍은 있다. 역습에 나서기 시작한 팀은 잘 조직된 수비 형태를 깨고 전방으로 움직인다. 빠른 전방 압박으로 다시 공을 빼앗아 '재역습'을 한다면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잡을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감독들이 수비 전술을 깨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포체티노 감독은 중앙에 많은 수를 배치하는 3-5-2 전술을 내세워 수비 전술을 깨뜨리려 하고 있다. 윙백을 전진시켜 수비의 좌우 간격을 벌리고 중앙에 득점력과 연계 플레이에 강점이 있는 선수들을 여럿  배치해 수비 전술을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이미 수비 전술에 대한 나름의 대응이 나오고 있다. 수비 전술의 유행은 오히려 '구식 전술'인 스리백의 부활과 진화까지 이끌었다. 장기적 측면에서 보면 수비 전술이 오히려 축구에 다양한 전술의 등장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상] [라리가] 바르사-R.베티스 수비 분석, [라리가] 바르사-R.베티스 공격 분석, ⓒ스포티비뉴스 김나은
[H/L] 레알 베티스 vs 바르셀로나 ⓒ스포티비뉴스 정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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