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희(왼쪽), 최수빈 ⓒ KOVO
[스포티비뉴스=김도곤 기자] 웜업존에 머물렀던 선수들의 활약이 V리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2016~2017 NH농협 V리그가 어느덧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시즌 남녀부 관계없이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후보 선수들의 활약이다. 후보 선수들은 주로 코트 양쪽 끝에 있는 웜업존에 머문다. 작은 공간에 여러 선수들이 모여 있어 팬들은 이곳을 흔히 '닭장'이라고 부른다.

프로스포츠는 2군 리그가 존재한다. 야구는 '퓨처스리그', 축구는 'R리그', 농구는 'D리그', 그렇다면 배구는?...없다.

배구는 야구, 축구, 농구와 함께 '4대 프로스포츠'로 꼽히지만 4개 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2군 리그가 없다. 후보 선수들이 활약할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후보 선수들은 2군 리그 활약을 바탕으로 감독 눈에 띄게 되고 1군 경기에 투입될 기회를 조금씩 잡는다. 그리고 출전 시간을 늘리며 기존의 주전 선수와 경쟁한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 과정이다.

하지만 배구는 2군 리그가 없어 이런 선순환이 이뤄지지 않는다. 후보 선수가 출전 기회를 얻는 방법은 훈련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실전이 아닌 연습에서 활약으로 출전 기회를 잡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감독 관점에서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순위 경쟁을 하는 가운데 실전에서 증명되지 않은 후보 선수를 훈련에서 괜찮았다고 투입하는 것은 무리수가 될 수 있다. 그렇다보니 경기에 투입되는 주전 선수들이 무거운 짐을 지게 되고 웜업존에 있는 후보 선수들은 소리 소문 없이 은퇴하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180도 달라졌다. 후보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늘린 것은 물론 주전을 꿰찬 선수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팀은 KGC 인삼공사다. 인삼공사는 현재 리그 4위다. 지난 시즌 꼴찌 팀이 플레이오프에 도전하고 있다. 주전이 대거 바뀌었다. 최수빈은 입단 5년 만에 주전으로 도약했다. 인삼공사는 FA 자격을 얻은 백목화, 이연주를 잡지 않았고 그 자리는 최수빈이 차지했다. 최수빈은 지난 시즌 29경기, 63세트 출전했다. 그나마도 원 포인트 서버나 리베로였다. 득점은 3점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158점을 기록했다. 50배가 넘는 수치다. 최수빈은 발목 부상으로 잠시 전력에서 이탈했지만 이달 중순 복귀가 전망된다.

인삼공사의 세터 이재은도 기회를 잡았다. 백업 세터로 주로 웜업존을 지켰으나 이번 시즌 세터 한수지가 센터로 포지션을 변경해 주전 세터로 도약했다. 이재은은 지난 시즌 9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이번 시즌 23경기째 출전하고 있다.

데뷔 후 주로 후보로 뛰었던 김진희는 이번 시즌 초, 중반까지 주로 웜업존에 있었다. 하지만 올해부터 조금씩 출전했고 출전 경기마다 활약을 펼치면서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김진희는 올해 활약을 바탕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해 '스파이크 서브 퀸'을 차지하기도 했다.

흥국생명의 리베로 한지현은 팀의 1위 질주를 이끌고 있다. 한지현은 이번 시즌 주전으로 도약해 리시브 6위, 디그 4위, 수비는 1위에 올랐다. 주전 세터 조송화가 부상으로 빠진 틈은 김도희가 메웠다. 흥국생명은 주전 세터의 부상으로 전력 공백이 예상됐지만 김도희의 활약으로 1위를 지킬 수 있었다.

주전은 아니지만 쏠쏠한 활약을 펼친 선수도 있다. GS 칼텍스 센터 이영은 지난 1일 흥국생명에 세트스코어 3-1로 이긴 경기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한송이 대신 선발 출전해 8점을 기록하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다. 경기 후 차상현 감독은 이영의 활약을 칭찬하며 앞으로 여러 선수들을 골고루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 신으뜸(왼쪽), 이강원 ⓒ KOVO
남자부에서도 웜업존 선수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우리카드 신으뜸은 지난 시즌 주전과 후보를 오가며 28경기에 출전했는데 두 라운드가 남은 올 시즌 이미 28경기에 출전했다. 득점은 87점에서 211점으로 늘었다. 특히 리시브, 수비 1위로 '수비형 레프트'로 가치를 높였다.

현대캐피탈 센터 김재휘는 신영석, 최민호란 확실한 주전이 있어 많은 시간 출전하지 못하지만 나올 때마다 쏠쏠한 할약을 하고 있다. 출전 경기 수도 18경기에서 25경기로 늘었고 득점은 7점에서 54점으로 늘었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최민호와 신영석이 있어서 그렇지 김재휘는 다른 팀에 가면 주전 센터로 활약할 선수다"고 평가했다.

'봄 배구'가 좌절된 OK 저축은행은 시즌 초반 주전 선수들의 줄 부상 속에서 전병선의 활약으로 버틸 수 있었다. 데뷔 후 2시즌 동안 45경기에 출전한 전병선은 이번 시즌 28경기에 출전해 121점을 기록하고 있다. 시즌 초반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OK 저축은행의 한 줄기 빛이었다.

주전층이 뚜렷한 삼성화재에서는 세터 이민욱 주목된다. 입단 후 주로 원 포인트 서버로 뛴 이민욱은 이번 시즌 들어 세터로서 출전 비중을 늘리고 있고 7일 세트스코어 3-2로 이긴 우리카드전에서 2세트부터 투입돼 승리를 이끌었다.

멀티 플레이어로 활약해 온 KB 손해보험 이강원도 올해 날개 공격수로 입지를 굳히며 출전 시간을 늘렸고 278점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시즌 52세트 출전에 그쳤던 한국전력의 센터 윤봉우는 119세트에 출전해 219점을 기록하며 부활에 성공했다.

이들의 등장은 사실상 기적에 가깝다. 이번 시즌처럼 웜업존에 머물던 선수들이 꾸준히 경기에 나온 것은 V리그가 출범한 이래 손에 꼽을 정도다. 이 현상은 올해에 그칠 수도 있다. 2군 리그가 없는 배구의 특성상 후보 선수들이 출전 기회를 잡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올해처럼 많은 선수들이 경기에 출전하고 성장하는 장면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2군 리그의 존재가 꼭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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