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우승한 뒤 태극기를 들고 관중들의 환호에 답례하는 손연재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한국 리듬체조 역사를 홀로 바꿔 온 손연재(23, 연세대)가 매트를 떠난다.

손연재의 소속사 갤럭시아SM은 18일 “손연재는 오는 3월 열리는 리듬체조 국가 대표 선발전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고 은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손연재는 한국 리듬체조가 세계 속에서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6살 때 리듬체조를 시작한 손연재는 17년 동안 매트 위에서 연기를 펼쳤다. 동유럽 선수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리듬체조에 손연재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동아시아 선수들은 러시아와 유럽 선수와 비교해 신체 조건이 떨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계 무대 도전이 힘들 것이라고 여겨졌던 불가능에 그는 과감하게 도전했다. 세계 챔피언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손연재가 이룬 업적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 손연재 ⓒ 한희재 기자

유난히 끼가 많던 소녀, 한국 리듬체조 유망주로 성장

손연재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6살 때 리듬체조의 길을 걸었다. 일찍 리듬체조에 입문해 누구보다 기본기가 탄탄했다. 초등학교 시절 주요 국내 대회를 휩쓸던 그는 2009년 크로아티아 챌린저 주니어에서 우승했다. 국제 대회에서 첫 정상에 오른 순간이었다.

2010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그는 세계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2010년 국제체조연맹(FIG) 모스크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손연재는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처음 출전한 시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손연재는 32위에 그쳤다.

이 경험은 손연재의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됐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며 자신감을 얻은 그는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한다. 이듬해 손연재는 자신의 훈련지를 러시아 노보고르스크 리듬체조 훈련장으로 옮겼다. 이곳은 세계 최강 러시아 선수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이름값을 하는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다.

손연재는 쟁쟁한 선수들 틈에서 땀을 흘리며 급성장한다. FIG 리듬체조 월드컵에서 메달을 따기 시작한 손연재는 2013년 마침내 일을 낸다.

그해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FIG 리듬체조 월드컵에서 개인종합을 비롯해 후프와 곤봉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해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볼 종목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리듬체조 월드컵과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처음 메달을 딴 리듬체조 한국 선수는 손연재다. 장점인 표현력과 정확한 기술에 승부를 걸었던 그는 어느덧 리듬체조 강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선수들과 경쟁하는 수준에 올라섰다.

▲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곤봉 경기를 하고 있는 손연재 ⓒ GettyImages

두 번의 올림픽 출전, 메달보다 값진 최고 성적

손연재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5위에 올랐다. 이 종목 최연소 선수였던 그는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받았다. 곤봉에서 아쉽게 실수를 했지만 나머지 종목에서 완벽한 경기를 펼치며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런던 올림픽 이후 손연재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큰 목표인 올림픽을 처음 경험한 뒤 그의 목표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었다.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라 손연재에게 유리할 듯 여겨졌다. 그러나 손연재는 당시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있었다. 중국 리듬체조 기둥인 덩센유에(25)는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종합에서 손연재를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손연재는 덩센유에에 이어 5위에 올랐다.

손연재는 아시안게임 우승을 위해 훈련에 전념했다. 여름에는 러시아 선수들과 크로아티아에서 지옥 훈련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냈다.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는 러시아 선수들의 훈련 과정은 매우 혹독하다. 손연재는 이들과 차이 없는 훈련을 해내며 한층 뛰어난 선수로 성장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손연재는 덩센유에를 제치고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그는 “내 생애 한번만이라도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그의 꿈은 인천에서 이뤄졌다.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처음으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차지한 그는 시상대 위에서 눈물을 흘렸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마친 그의 목표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었다. 2015년 손연재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그해 충북 제천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개인종합 우승을 비롯해 3관왕에 올랐다. 또 광주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는 라이벌인 안나 리자트디노바(24, 우크라이나)와 멜리티나 스타니우타(24, 벨라루스)를 따돌리며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손연재는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선수권대회 그리고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우승하는 업적을 남겼다. 2016년, 손연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월드컵에서 개인 최고 점수를 계속 갈아 치웠다. 올림픽을 앞두고 상승 곡선을 그린 그는 리우데자네이루 무대에 섰다.

4년 전 런던에서 실수를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반복하지 않았다. 후프 볼 곤봉 리본을 모두 깨끗하게 해낸 그는 4위를 차지했다. 한국 리듬체조 사상 올림픽 최고 성적이다. 손연재는 리자트디노바와 동메달을 놓고 경쟁했다. 손연재가 성장했듯이 리자트디노바도 올림픽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리자트디노바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손연재는 자신이 준비한 것을 모두 보여 줬다.

▲ 손연재 ⓒ 한희재 기자

손연재, 은퇴를 결심한 이유와 미래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마친 손연재는 “런던 올림픽 때도 그랬고 인천 아시안게임 때도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도 그런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6년 동안 러시아 사람이 다 됐다. 한국에 있는 시간은 1년도 안된 것 같다”며 “이제는 한국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은퇴할 속내가 드러나는 말이었다.

그러나 손연재의 은퇴는 쉽지 않았다. 협회와 소속사 그리고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그가 선수 생활을 계속 하길 원했다. 손연재 이후 국제 대회에서 경쟁력을 갖춘 후배들이 없고 손연재가 여전히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는 기량을 갖췄기 때문이다.

지난해와 올해 겨울 손연재는 미국과 러시아와 영국 등을 오가며 리듬체조 유망주들에게 기부 활동을 했고 자신도 간단한 훈련을 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을 위한 새 프로그램은 준비하지 않았다. 손연재는 다음 달 열리는 국가 대표 선발전 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가 은퇴할 것이라는 가능성은 커졌고 18일 소속사인 갤럭시아SM은 손연재의 은퇴를 알렸다.

손연재는 7년 동안 시니어 무대에서 활약했다. 선수 생명이 짧은 리듬체조에서 7년간 시니어 무대에서 뛰는 것은 쉽지 않다. 손연재는 고질적인 발목 부상에 시달렸다. 철저한 관리와 꾸준한 재활로 부상을 이겨 내며 한국 리듬체조 역사를 홀로 썼다.

▲ 손연재 ⓒ 한희재 기자

은퇴 결정을 고민하는 시간, 그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손연재는 곤욕을 치렀다. 손연재는 2014년 박근혜 정부가 실시한 늘품체조 행사에 참여했다. 이 행사에 참여해 특혜를 받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대해 갤럭시아SM 측은 “아무 근거 없는 터무니없는 얘기”라며 일축했다.

손연재에 대한 논란은 많았지만 왜곡된 소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노력하고 리듬체조에 집중한 선수는 드물다. 노보고르스크 훈련장에서 손연재와 훈련하는 러시아 선수들은 “(손)연재만큼 열심히 하는 선수는 없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훈련했지만 언제나 꾸준하고 성실하다”며 칭찬했다.

매트를 떠났지만 리듬체조를 향한 열정은 계속된다. 그는 유망주들을 가르치는 지도자로 새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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