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우승한 최다빈(가운데)과 은메달 리지준(오른쪽) 동메달 엘리자베트 트루신바예바 ⓒ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김연아(27)가 2013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와 그해 12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진행된 골든 스핀 오브 자그레브에서 우승한 뒤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얼어붙었다.

많은 유망주가 김연아가 떠난 큰 빈자리를 대신했다. 곽민정(23)은 2011년 알마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고 김해진(20, 이화여대)은 2012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슬로베니아 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박소연(20, 단국대)은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 9위에 오르며 김연아 이후 이 대회 10위 안에 진입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세계의 벽은 매우 높았고 상위권 진입은 쉽지 않았다. 박소연은 지난해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총점 180점을 넘으며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ISU 그랑프리 프랑스 트로피에서는 개인 최고 점수인 185.19점을 기록하며 5위를 기록했다.

상승세를 탄 박소연은 지난해 12월 서울 공릉동 태릉실내아이스링크에서 스텝 훈련 도중 발목을 다쳤다. 수술을 받은 박소연은 지난달 열린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와 동계체전,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 4대륙선수권대회, 그리고 동계 아시안게임 출전을 포기했다.

올해 종합선수권대회에서 181.78점을 얻은 김나현(17, 과천고)은 '동갑내기 라이벌' 최다빈(181.48)을 0.3점 차로 제치고 다음 달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거머쥐었다.

상승 곡선을 그린 김나현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상이었다. 그는 오른쪽 발목과 햄스트링 부상으로 4대륙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을 앞두고 기권했다. 부상 투혼을 발휘하며 동계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지만 총점 108.77점으로 13위에 그쳤다.

올 시즌 상반기 한국 여자 싱글 시니어 선수 가운데 페이스가 좋았던 이는 박소연과 김나현이다. 이들이 부상으로 고생하면서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위기에 몰렸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1년 앞둔 상황에서 '빨간불'이 켜졌다.

▲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경기하고 있는 최다빈 ⓒ GettyImages

위기에 몰린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을 살린 이는 최다빈(17, 수리고)이다. 올 시즌 최다빈의 출발은 좋지 못했다. ISU 그랑프리 대회에 두 번(스케이트 캐나다, 일본 NHK트로피) 출전했지만 각각 7위와 9위에 그쳤다. 성적을 떠나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최다빈은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난달 초 열린 종합선수권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클린 경기에 성공하며 4위를 차지했다. 김나현과 펼친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 경쟁에서 아깝게 졌지만 경기 내용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막을 내린 제 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피겨스케이팅 여자 고등부에서 우승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여자 싱글을 통틀어 최고 점수인 187.98점을 받았다. 임은수(14, 한강중) 김예림(14, 도장중) 유영(13, 문원초) 등 어린 선수들이 상위권을 점령한 한국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에서 최다빈은 '언니의 자존심'을 지켰다.

최다빈은 시즌 도중 쇼트프로그램 곡을 교체했다. 그는 북미와 유럽 등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는 크리스타 파시(독일) 코치의 지도를 받는다. 국내에서는 지현정 코치 밑에서 훈련했지만 이은희 코치와 새롭게 손을 잡았다.

시즌 중에 시도한 몇몇 변화는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이달 강원도 강릉 4대륙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최다빈은 쇼트프로그램(61.62) 프리스케이팅(120.79) 총점(182.41)에서 모두 개인 최고 점수를 갈아 치웠다.

4대륙선수권대회를 마친 최다빈은 곧바로 일본 삿포로로 떠났다. 애초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박소연은 기권했다. 삿포로 무대에 선 최다빈의 아시안게임 선전은 예고됐다.

올 시즌이 진행되며 최다빈의 점프 성공률은 점점 높아졌다. 새로운 쇼트프로그램 곡인 영화 '라라랜드' OST는 최다빈에게 잘 어울리는 드레스였다. 최다빈은 4대륙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 쇼트프로그램에서 모두 클린 경기에 성공했다.

25일 열린 프리스케이팅은 최다빈에게 쉽지 않았다. 출전 선수 24명 가운데 가장 마지막 순번을 받았다. 모든 선수가 불편해 하는 순서다. 최다빈은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살코에서만 실수를 했다. 이 점프는 회전 부족으로 언더 로테 판정이 지적됐다. 그러나 나머지 6가지 점프는 깨끗하게 뛰었다.

첫 점프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와 트리플 플립은 1.12점의 가산점(GOE)을 챙겼다. 플라잉 카멜 스핀과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 레이백 스핀은 최고 등급인 레벨 4를 기록했다.

▲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경기하고 있는 최다빈 ⓒ GettyImages

이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최다빈은 긴장감을 이기고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정신력과 기량을 펼쳤다. 지난 시즌과 비교해 정신력에서 그는 한 단계 성장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일본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기둥인 미야하라 사토코(18) 등 상위권 선수들이 빠졌다. 우승 후보인 혼고 리카(일본)가 실수로 무너진 점도 최다빈에게 행운이었다.

최다빈은 아시안게임에서 총점 187.54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점수는 1주일 전 강릉에서 기록한 최고 점수인 182.41점보다 5.13점 높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점수는 ISU 공식 점수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최다빈의 아시안게임 우승은 여러모로 값지다. 그는 평창 동계 올림픽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위기에 몰린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을 살렸다. 또 김연아 이후 동계 국제종합경기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아시안게임을 마친 김나현은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경쟁자이자 친구인 최다빈에게 양보했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는 평창 동계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다. 최다빈이 10위 안에 진입하면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2장의 올림픽 티켓을 얻는다.

최다빈의 올 시즌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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