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글 조영준 기자, 영상 촬영 편집 임창만 기자] 김연아(27) 이후 날개를 펴지 못한 여자 싱글 시니어 선수가 비상(飛翔)했다.

지난해 한국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은 1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 점령했다. 임은수(14, 한강중) 김예림(14, 도장중) 유영(13, 문원초) 삼총사가 급부상하며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판도를 바꿨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을 1년 앞둔 상황에서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위기에 몰렸다. '국가 대표 맏언니' 박소연(20, 단국대)은 지난해 12월 발목을 다쳐 올해 열린 굵직한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올 시즌 가파른 상승세를 탄 김나현(17, 과천고)은 오른쪽 발목과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다빈(17, 수리고)은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선수권대회와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선전하며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자존심을 살렸다.

▲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인천국제공항에 귀국한 최다빈 ⓒ 스포티비뉴스

최다빈은 26일 일본 삿포로에서 막을 내린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총점 187.54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피겨스케이팅 사상 아시안게임에서 나온 첫 금메달이었다.

애초 최다빈은 아시안게임 메달 후보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상황은 쉽지 않았다. 세계 정상급 선수 상당수가 불참했지만 지난해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혼고 리카(20)가 출전했다. 카자흐스탄의 피겨스케이팅 신동 엘리자베트 투르신바예바(17)도 출전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기둥 리지준(20)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최다빈은 아시안게임 일주일 전에 강원도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선수 가운데 가장 성적이 좋았다.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최다빈은 ISU가 인정한 총점 개인 최고 점수인 182.41점으로 5위를 차지했다. 리지준(177.05)은 7위, 투르신바예바(176.65)는 8위, 혼고(167.42)는 10위에 그쳤다.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최다빈이 증명한 상승세는 아시안게임으로 이어졌다. 최다빈은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받은 점수를 뛰어넘으며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 최다빈(가운데)과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오른쪽) 김상항 한국 선수 단장 ⓒ 스포티비뉴스

대타로 타석에 등장해 홈런 때려…"몸 관리가 중요"

최다빈은 27일 오후 동계 아시안게임 선수단과 인천국제공항에 귀국했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취재진을 본 최다빈은 "이런 자리에 있는 것이 아직 어색하다"며 웃으며 말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소감에 대해서는 "이번 아시안게임은 급하게 출전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최다빈은 동계 아시안게임에 나설 예정이었던 박소연 대신 출전했다. 대타로 타석에 등장해 홈런을 때린 셈이다. 다음 달 29일부터 4월 2일까지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은 김나현이 쥐고 있었다. 김나현은 지난달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에서 최다빈과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경쟁을 했다. 김나현은 이 대회에서 181.48점으로 3위에 올랐다. 181.48점으로 4위에 그친 최다빈을 0.3점 차로 제쳤다.

그러나 김나현은 달갑지 않은 불청객인 발목 부상이 악화됐다. 4대륙선수권대회에서는 프리스케이팅에서 기권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모든 일정을 해냈지만 총점 108.77점에 그쳤다. ISU가 인정한 개인 최고 점수인 177.27점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점수였다.

김나현은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최다빈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최다빈은 아시안게임에 이어 연속 대타로 큰 무대에 출전한다.

최다빈은 "세계선수권 대회까지 몸 관리를 잘하겠다"며 내년 열리는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는 중요한 대회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올 시즌 초반 미국에서 훈련했다. 크리스타 파시(독일)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약점인 스케이팅과 표현력 보완에 집중했다. 또 점프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부상 치료가 문제였다. 최다빈은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국내에서 훈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외국에서 훈련하면 제대로 치료를 하지 못한다. 늘 부상이 있는데 몸 관리를 위해 국내에서 훈련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는 최다빈 ⓒ 스포티비뉴스

평창 동계 올림픽 출전 열쇠 쥔 최다빈, 최고 성적 가능할까

최다빈은 4대륙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전국종합선수권대회 때보다 컨디션이 떨어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층 깨끗한 경기를 펼치며 5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가 끝난 뒤 일본 삿포로로 이동한 그는 좋은 흐름을 이어 갔다.

최다빈은 아시안게임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한층 발전한 기량을 자랑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트리플 살코만 회전수 부족 판정이 지적됐다. 나머지 6가지 점프는 가산점(GOE)을 챙겼다.

아시안게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최다빈은 기술점수(TES) 68.4점, 예술점수(PCS) 57.84점을 기록했다. 기술점수는 물론 PCS에서도 출전 선수 가운데 가장 높았다.

그동안 최다빈은 낮은 PCS 점수가 약점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한 최다빈은 한층 발전한 에지 사용과 스트로킹을 보였다. 2006년 토리노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이자 해설가인 아라카와 시즈카(35, 일본)는 아시안게임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해설에서 "최다빈의 에지 사용이 깊어졌다. 트리플 살코를 제외한 점프는 모두 가산점을 받을 정도로 깨끗했다"고 칭찬했다.

최다빈은 4대륙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에서 모두 180점대 중반의 점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86.65점을 기록한 미라이 나가수(23, 미국)는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9위 가브리엘 델먼(19, 캐나다)은 195.68점이었다.

세계선수권대회는 4대륙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과 비교해 차원이 다르다. 여자 싱글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는 러시아 선수들이 출전한다. 또 부상인 일본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기둥 마야하라 사토코(18)도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

▲ 최다빈 ⓒ 곽혜미 기자

최다빈은 이들과 경쟁해 10위 안에 진입해야 평창 동계 올림픽 여자 싱글 출전권 2장을 얻을 수 있다. 최다빈의 세계선수권대회 10위권 진입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올 시즌 중반부터 나타난 최다빈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면 가능하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오른 그레이시 골드(21, 미국)와 7위 아사다 마오(27, 일본)는 올 시즌 부진하다. 아사다는 지난해 12월 열린 전일본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12위에 그치며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놓쳤다. 골드는 지난달 열린 전미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6위로 머물렀다.

199.15점으로 8위에 오른 혼고는 4대륙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에서 무너졌다. 반면 최다빈은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최다빈이 아시안게임의 좋은 기운을 세계선수권대회로 이어 가면 박소연(2014년 세계선수권대회 9위) 이후 이 대회 최고 성적도 가능하다.

최다빈은 아시안게임에서 향상된 정신력도 보여 줬다. 그는 프리스케이팅에서 가장 마지막 순서로 경기했다. 여러모로 부담이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를 이겨 내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목표를 이룬 피겨스케이팅 선수 대부분은 컨디션 조절과 정신력 싸움에서 이겼다. 세계선수권대회를 한 달여 앞둔 최다빈에게 중요한 것은 몸 관리와 마음 다스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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