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글 조영준 기자, 영상 이충훈 기자] "저 스스로에게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이 두 단어는 제가 가장 두려워했던 말인데 마지막 시즌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렸고 다행히 아쉬움과 후회를 남기지 않았어요."

한국 리듬체조의 역사에서 손연재(23, 연세대)란 이름 석 자를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종합에서 동메달을 딴 그는 7년 동안 한국 리듬체조를 대표했다. 손연재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진출한 신수지(27) 이후 2012년 런던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고 5위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다.

그는 시니어 무대에서 7년간 국제체조연맹(FIG) 리듬체조 월드컵 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에서 선전했다. 동유럽 선수들의 전유물이었던 리듬체조 무대에서 손연재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선수 생명이 짧은 리듬체조에서 7년간 활약한 점도 높이 평가 받아야 할 이유 가운데 하나다.

매트 위에서 17년 동안 선수로 활약한 손연재는 4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 리듬체조장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은퇴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 2017년 리듬체조 국가 대표 선발전에서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는 손연재 ⓒ 태릉, 스포티비뉴스

17년 동안 정든 매트를 떠나기로 한 사연

손연재의 기자 간담회가 열리는 이날 오전에는 2017년 리듬체조 국가 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손연재의 기자 회견은 오후였지만 그는 오전, 태릉 리듬체조장에 나타났다.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시니어 무대에서 7년간 동유럽 선수들과 경쟁해 온 손연재는 새로운 삶을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손연재는 "은퇴를 갑자기 결정한 것은 아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5위에 오른 그의 최종 목표는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었다. 손연재는 한국 리듬체조 사상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딴 뒤 매트를 떠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손연재는 고심 끝에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결정했다.

리듬체조 선수가 올림픽에 두 번 이상 출전하기는 쉽지 않다.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리듬체조 선수로는 처음으로 결선에 진출한 손연재는 올림픽 메달에 도전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엫서 안나 리자트디노바(24, 우크라이나)와 치열하게 메달 경쟁을 펼쳤지만 4위에 만족해야 했다. 최종 목표였던 올림픽 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지만 런던 올림픽 때보다 한층 깨끗한 경기를 펼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끝난 뒤 손연재는 매트를 떠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주변 지인들과 대한체조협회 관계자, 소속사 등은 그가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를 원했다. 손연재의 한 지인은 "가까운 주변 인사들 가운데 손연재가 계속 선수 생활을 하기를 원했던 이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 겨울 은퇴에 대해 고민하던 손연재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2014년 11월 박근혜 정부가 실시한 늘품체조 시연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여러 문제가 쏟아졌고 늘품체조도 큰 논란이 됐다.

리듬체조 선수였던 손연재는 '뜀틀의 신' 양학선(24)과 이 행사에 참석했다. 그가 늘품체조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대한체조협회의 요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연재는 늘품체조에 참석해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지 않았냐는 의혹을 받았다.

근거 없는 시선에 손연재는 큰 상처를 받았다. 소속사인 갤럭시아에스엠은 보도 자료로 이 문제를 해명했지만 17년간 운동에 모든 것을 쏟은 선수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였다.

좋지 않은 일이 생겼지만 2014년부터 은퇴를 생각했던 손연재는 매트를 떠났다. 손연재는 "은퇴가 갑자기 진행된 것은 아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도 은퇴하려고 했었고 이번에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 은퇴 기자 간담회에서 질문에 답변하는 손연재 ⓒ 태릉, 스포티비뉴스

전문가들이 인정한 한국 최고의 리듬체조 선수, 뛰어난 선수로 기억돼야 마땅

손연재는 "시니어 무대에 처음 데뷔했을 때 출전한 대회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다.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마지막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가장 뜻깊고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리듬체조 선수가 시니어 무대에서 7년간 활약하기는 쉽지 않다. 손연재와 또래의 선수들은 하나둘씩 매트에서 사라졌다. 고질적인 발목 부상을 안고 살았던 손연재는 끈질긴 정신력으로 이를 이겨 냈다.

손연재가 처음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을 때 세계 5위권 진입은 쉽지 않아 보였다. 당시 상당수 리듬체조 전문가들은 "세계 10위 안에만 진입해도 성공적"이라고 전망했다. 큰 키와 긴 팔다리를 가진 동유럽 선수들은 신체 조건이 뛰어나다. 일본과 중국 선수들은 수년간 세계 상위권에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이 장악하고 있는 리듬체조의 벽은 매우 높았다.

손연재는 이런 현실을 이겨 내며 세게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했다. 리듬체조는 1984년 LA 올림픽 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32년 동안 올림픽 리듬체조에서 4위를 차지한 아시아 선수는 알리야 유수포바(카자흐스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4위)와 손연재뿐이다.

이런 점만 봐도 손연재는 충분히 훌륭한 선수다.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아시아선수권대회 3연속 개인종합 우승(2013, 2015, 2016년) 그리고 유니버시아드대회 3관왕 등 그가 이룬 업적은 과소 평가할 수 없다.

▲ 2016년 리듬체조 국가 대표 선발전에서 리본 경기를 하고 있는 손연재 ⓒ 한희재 기자

무엇보다 손연재는 리듬체조란 종목을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이 인정한 선수다. 주니어 시절부터 손연재는 지도자들 사이에서 "실력도 뛰어나지만 성실도 최고인 선수"로 인정받았다. 송희(43) 리듬체조 국가 대표 코치는 "실력과 노력 근면 등 모든 면에서 (손)연재는 최고의 선수"라고 칭찬했다.

리듬체조 국제 심판은 물론 해외 선수들도 손연재를 인정했다. 손연재와 함께 훈련한 러시아 선수들은 "(손)연재만큼 열심히 하는 선수는 없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은퇴를 선언하는 순간 손연재는 악성 댓글로 받은 상처를 어떻게 다스렸는지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이러한 질문을 받은 그는 "관심을 받으면서 안 좋은 시선도 있었다. 그때마다 더 좋은 기량을 보여 드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오히려 그런 시선에도 감사한다. 더 노력하자는 동기부여가 됐다"며 성숙한 자세를 보였다.

이어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았다. 제가 더 힘을 낼 수 있었고 행복한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손연재의 어머니 윤현숙 씨는 "어린 시절부터 연재는 힘든 점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이겨 낸다.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여기까지 왔고 고맙게 생각한다"며 딸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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