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태릉선수촌, 글 조영준 기자, 영상 이나현 PD] 네 살 위인 언니를 따라 빙판에 들어섰던 작은 소녀가 12년 뒤 일을 냈다. 다섯 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최다빈(17, 수리고)은 올해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다빈은 지난달 25일 일본 삿포로 마코마나이빙상장에서 열린 2017년 동계 아시안게임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68.4점 예술점수(PCS) 57.84점을 더한 126.24점을 받았다.

쇼트프로그램 점수 61.3점과 합친 총점 187.54점을 기록한 최다빈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최다빈의 우승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그는 한국 피겨스케이팅 선수 가운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최다빈은 이 대회 출전 예정이었던 박소연(20, 단국대) 대신 출전했다. 부상인 박소연의 대타로 나선 그는 멋지게 홈런을 때렸다.

▲ 최다빈 ⓒ 태릉, 한희재 기자

최다빈의 선전은 이미 예고됐다. 그는 지난 1월 제 98회 전국동계체육대회 피겨스케이팅 여자 고등부에서 187.98점으로 우승했다. 최다빈은 동계체전 여자 싱글을 통틀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2월 4대륙선수권대회에서는 쇼트프로그램(61.62) 프리스케이팅(120.79) 총점(182.41)에서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이 인정한 개인 최고 점수를 받았다. 시즌 중반부터 최다빈의 상승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에 "우승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특히 피겨스케이팅의 관심도 높아져서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귀국한 최다빈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인터뷰가 예정된 날 그는 오전에 훈련을 마친 뒤 기자와 만났다. 4대륙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을 치른 최다빈은 하루만 휴식하고 다시 스케이트 끈을 단단하게 묶었다. 올 시즌 가장 중요한 무대인 세계선수권대회가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 최다빈 ⓒ 태릉, 한희재 기자

두 명의 멘토, 친언니와 김연아

최다빈은 네 살 위인 언니 최다혜(21) 씨를 따라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다. 다섯 살 때부터 빙판을 질주했던 그는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유망주가 됐다. 점프에 소질이 많았던 최다빈은 12살때 토루프, 살코, 루프, 플립, 러츠를 3회전으로 완성했다.

기술에서는 국내 여자 싱글 선수 가운데 상위권에 속했던 최다빈은 12살이었던 2012년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2015년과 지난해에는 2위에 오르며 '포스트 김연아'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언니 최다혜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7살에 빙판을 떠났다. 최다빈은 부상으로 힘든 시기가 많았지만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언니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피겨스케이팅을 그만뒀어요. 저는 부상이 있을 때 힘들었고 성적도 좋을 때와 나쁠 때가 있었어요. 그래도 피겨스케이팅을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선수 생활을 하던 최다빈은 또 다른 멘토를 만났다. 어린 시절 김연아와 같은 아이스링크에서 훈련한 경험이 있는 그는 새 동기부여가 생겼다.

"피겨스케이팅을 하게 된 계기는 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한 거였어요. 선수로 뛰면서 같은 아이스링크에서 (김)연아 언니가 훈련하시는 것을 봤죠."

2015년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그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4위에 그쳤다.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올 시즌 출발도 좋지 않았다. 두 번 출전한 ISU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최다빈은 7위(스케이트 캐나다)와 9위(일본 NHK트로피)에 그쳤다.

▲ 최다빈 ⓒ 태릉, 한희재 기자

그러나 올해부터 조금씩 살아난 최다빈은 동계체전과 4대륙선수권대회 그리고 아시안게임에서 값진 성과를 얻었다.

"(동계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 중국 선수들을 비롯해 기술이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어요. 현지에서 연습을 할 때 제 프로그램에만 집중하고 등수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최다빈은 압도적인 점수 차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많은 이들에게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이 가운데에는 김연아에게서 온 축하도 있었다.

"생중계를 보신 뒤 경기가 끝나고 많은 분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 주셨어요. 매우 잘했고 감동 받았다고 말씀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연아 언니는 4대륙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을 연달아 뛰어서 힘들었을 텐데 매우 잘했고 수고했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최다빈은 김연아의 프로그램 가운데 록산느의 탱고(쇼트프로그램)와 레미제라블(프리스케이팅)을 가장 좋아한다고 꼽았다. 김연아는 2013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레미제라블을 연기했다. 당시 현장에서 이 경기를 지켜본 최다빈은 지난 시즌 자신도 이 곡을 프리스케이팅곡으로 선정했다.

일찍 3회전 점프를 익힌 최다빈은 한동안 러츠 점프의 에지 문제로 고생했다. 그는 3년 전 캐나다에서 러츠 점프를 가다듬었고 지금은 깨끗한 점프를 뛰고 있다. 최다빈은 "에지 문제가 있었던 러츠 점프를 교정해서 인정받았을 때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뒤 최다빈은 기술과 비교해 표현력과 스케이팅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결실은 올 시즌 열매를 맺었다. 올해 4대륙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에서 최다빈은 한층 발전한 표현력을 보여 줬다. 또 스케이팅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전에는 스트로킹(빙판 활주)과 스텝 연습을 따로 했지만 지금은 프로그램과 같이 하고 있어요. 기술 연습을 할 때도 함께 하고 있죠. 그래서인지 작품을 할 때 조금씩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최다빈 ⓒ 태릉, 한희재 기자

세계선수권대회까지 신중하고 싶은 소녀, "일단은 올림픽 출전권 한 장이 목표"

꾸미기 좋아하는 17살 소녀인 최다빈은 고등학생이 되면서 화장을 직접하고 있다. 최근에는 켈리그라피(글자 디자인)와 헤어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시간이 나면 친구와 동료들의 머리도 만져 준다. 최다빈은 "대회가 끝나고 방켓(선수들이 드레스와 정장을 입고 참여하는 축하 파티) 때 선수들의 머리를 많이 해 줬다"고 말했다.

많은 동료와 잘 어울리지만 어린 시절부터 피겨스케이팅의 길을 동행해 온 같은 나이 선수들과 관계는 특별하다.

최다빈은 올해 동갑내기 라이벌 김나현(17, 과천고)과 선의의 경쟁을 했다. 지난달 열린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먼저 웃은 이는 김나현이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181.78점을 받으며 181.48점을 기록한 최다빈을 0.3점 차로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종합선수권대회에는 다음 달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이 걸려 있었다. 김나현은 기회를 얻었지만 발목 부상으로 출전권을 최다빈에게 넘겼다.

"(김)나현이와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훈련했고 대회도 같이 출전한 적이 많았어요. 그래서 서로 기 싸움보다 격려해 주고 잘하자는 말을 많이 하죠. 나현이가 부상으로 힘들어 했고 제가 세계선수권대회에 가게 됐는데 '부담 갖지 말고 다녀와라'고 말해 줬어요."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는 내년 열리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다. 최다빈이 여자 싱글 10위 안에 진입하면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은 올림픽 출전권 2장을 거머쥔다.

큰 대회를 앞둔 최다빈은 "일단은 올림픽 출전권 한 장이 목표"라고 밝혔다. 무리하게 목표를 설정하지 않고 신중하게 세계선수권대회를 준비하겠다는 것이 그의 각오다.

▲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는 최다빈 ⓒ 곽혜미 기자

"아시안게임보다 세계선수권대회에는 더 잘하는 선수들이 많이 출전해요. 제 단점도 드러날 수 있죠. 아시안게임 때보다 제 프로그램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최다빈은 지난 시즌과 비교해 기술적인 면은 물론 정신력도 향상했다. 아시안게임 프리스케이팅에서 그는 가장 마지막 순서 배정을 받았다. 모든 선수가 피하고 싶은 순서다. 쇼트프로그램 1위에 올라 마음의 짐도 컸지만 최다빈은 이를 이겨 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는 긴장을 많이 했어요. 올 시즌 초반에는 점프가 많이 흔들려서 긴장감이 밀려왔죠. 사실 모든 대회가 긴장됩니다. 그때마다 연습했던 것을 떠올리며 이미지트레이닝을 하죠."

5살 때 시작한 최다빈의 피겨스케이팅 여정이 정점으로 향하고 있다. 다음 달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는 물론 1년 뒤에는 그의 목표인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린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가능했던 원인은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프로그램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최다빈은 세계선수권대회는 물론 올림픽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는 "언제나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는 것이 목표고 구체적인 등수는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한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피겨스케이팅 선수에게 체형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어린 시절 뛰어난 재능을 보인 이들 가운데 체형 변화로 꽃을 피우지 못한 선수도 많다.

키가 다 크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은 그는 "키는 잘 모르겠는데 아직도 체형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시니어 선수들은 계속 체형 변화가 와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156cm인 최다빈은 키에 대한 질문에 "그래도 키는 좀 더 컸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