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성용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서울월드컵경기장, 유현태 기자] "감독의 전술 문제가 아니다. 선수들의 경기력이 문제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기성용이 내놓은 진단이다. 연이은 졸전으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회의론이 높아지는 가운데 대표팀의 주장은 팀 동료와 후배를 향한 쓴소리를 연이어 쏟아내고 있어 그 속뜻이 무엇인가에 축구팬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 7차전 시리아와 경기에서 1-0으로 이겼다. 한국은 4승 1무 2패 승점 13점으로 2위를 지켰다. 승리했지만 진땀 나는 경기였다. 권순태의 선방과 크로스바가 살린 경기였다.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적 능력 부재가 한국의 부진 원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기성용은 경기 뒤 믹스트존에서 "감독의 문제라고 이야기가 많지만 제가 봤을 땐 감독의 전술적 문제보다는 선수들이 경기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기성용은 지난 23일 중국전에서 0-1로 패한 뒤에도 "선수들이 각자 월드컵 출전에 대한 간절함을 깨달아야 한다. 선수들 뿐만 아니라 코칭스태프도 모두 변화해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라면 자신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성용이 이처럼 연이어 선수단 내부를 향해 쓴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슈틸리케호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 순 없다. 기성용 본인도 시리아전 후 "선수들의 불만스런 경기력의 이유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왜 선수들의 문제를 짚으며 분발을 요구했을까. 가능성은 여럿이다.

가능성 1 말 그대로! "대표팀의 수준이라고 하기엔 이번 경기는 크게 부족했다"

기성용이 말 그대로 선수들의 기량과 태도를 꼬집은 것일 수 있다. 기성용은 "기본적으로 공 관리를 못하고 빼앗긴다. 대표팀의 수준이라고 하기엔 이번 경기는 크게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전에서 프로 선수 수준에 맞지 않는 어이없는 패스 미스가 있었다. 볼 컨트롤이 길어 시리아 선수들과 공을 다투는 아찔한 장면도 있었다. 기성용이 제기한 기량 문제는 분명 선수들이 돌아봐야 한다. 

정신력을 지적했을 가능성도 있다. 기성용은 23일 중국전 뒤 "선수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기 보다 각자가 느꼈으면 좋겠다. 전술이 어떻고 감독이 선수를 누구 기용하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들어가든 대표선수이기 때문에 경기장 안에서 모든 걸 다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전에 이어 시리아전에서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선수들을 질책한 것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가능성 2 경기장 안의 지휘자 주장으로서 책임감? "감독의 전술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감독의 전술을 경기장 안에서 실현해야 하는 경기장 내부의 지휘자로서 책임감에서 비롯된 발언일 수도 있다. 그는 "감독의 전술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감독의 잘못이라고 하기보다는 선수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술에 대한 결정은 감독이 모두 갖고 있어 선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없다. 그리고 선수들은 당연히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을 따르고 그것을 경기장에서 직접 구현해야 한다. 

기성용이 어차피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이 팀에 녹아들 것이란 희망을 버렸을 수도 있다. 선수들을 지적하며 부족한 전술을 각자가 채워야 한다고 강조한 것일 수도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과 상관없이 선수들이 더 나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봤을 가능성도 있다. 

가능성 3 난해한 전술과 선수 기용에 대한 우회적 비판? "감독이 아무리 좋은 전술을 짜도 선수들이 하지 못하면 선수들도 책임이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난해한 전술과 선수 기용 모두에 대한 우회적 불만의 표현일 수도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번 시리아전에선 고명진이 왼쪽 측면에 가는 '기책'을 빼들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왼발잡이인 고명진을 오른쪽 측면에 배치해 안으로 치고 들어와 뒤로 침투하는 황희찬에게 패스하도록 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명진과 황희찬의 '핫 라인'은 없었다. 전반 30분경 고명진은 기성용 옆으로 위치를 옮겨 4-2-3-1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고명진의 위치 변화는 사실상 실패였다.

기성용은 전술을 따라가지 못한 선수들을 지적했다. 그러나 애초에 슈틸리케 감독이 전술이 너무 난해해 선수들이 제대로 이행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 부임 뒤 2년 반 정도가 지났다. 선수 특성과 수준에 맞게 자신의 전술을 조정할 시간은 충분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술 변화가 너무 없다고 비난을 받았는데, 이제는 전술 변화가 많다면서 논란이 발생한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그러나 전술 변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절했는지가 중요하다.

가능성 4 내부 결속을 위해? "대표선수라면 압박감 속에서도 잘해야 한다"

내부 결속 다지기일 가능성도 있다. 23일 중국전 패배로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들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됐다. 부진한 경기력이 문제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무전술'이란 비판까지 받아야 했다.

기성용은 주장이다. 팀을 추슬러야 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일단 필요한 승리를 거두면서 즉각 경질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팀을 위해 선수들이 분발하기를 자극하는 동시에, 슈틸리케 감독을 비롯한 팀을 지키려는 것일 수도 있다.

전술 대신 선수 기량을 탓한다면 내부 결속에 유리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기성용은 최근 인터뷰에서 '월드컵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고 털어놨다. 경기력 문제를 강조하면 선수들의 분위기를 다잡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전술 문제 등 선수들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지적보다, 선수들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도 시리아전 뒤 "후반 공격진에서 볼을 자주 뺏기고 흐름이 끊기면서 그 부담이 수비로 넘어왔다"고 말했다. 공격수를 중심으로 팀 내부 경기력에 문제가 있으며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장과 감독의 인식은 같다. 주장으로서 감독의 전술로 집중되는 비판의 초점을 돌리면서 선수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내부 결속을 꾀하려고 생각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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