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교덕 격투기 전문 기자] 헨리 후프트 코치 등 세컨드들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레슬링 하지 마."

"거기서 나와."

"쟤, 우리 말 듣고 있는 거야?"

미리 짠 작전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1라운드가 끝나고 휴식 시간에 코치들이 거리를 두고 경기하자고 말했는데도 앤서니 존슨(33, 미국)은 막무가내였다. 2라운드에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다니엘 코미어(38, 미국)에게 붙어 레슬링으로 싸웠다.

코미어는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나간 엘리트 레슬러 출신이다. 존슨의 뿌리가 레슬링이라고 해도, 그가 고등학교 때 이름 꽤나 날린 유망주였다고 해도 클린치 레슬링에서 코미어와 실력 차가 꽤 났다.

특기인 타격전을 버리고 불나방이 된 존슨은 9일(이하 한국 시간) 미국 뉴욕주 버팔로 키뱅크 센터에서 열린 UFC 210 메인이벤트에서 2라운드 3분 37초 만에 리어네이크드초크로 졌다.

그의 6번째 패배(22승), 눈을 찔려 TKO로 진 경기를 제외하고 5번을 리어네이키드초크에 무너졌다.

코치들은 물론, 코미어조차도 "존슨이 레슬링으로 나와 놀랐다"고 했다. 존슨은 승리를 차지하기 보다 자신의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돌발 행동의 이유가 곧 밝혀졌다. 코미어에게 두 번째로 지고 존슨은 눈물을 흘리며 종합격투기 은퇴를 선언했다.

"어떤 변명도 있을 수 없다. 더 나은 선수에게 진 것뿐이다. 내 마지막 경기였다. 누구에게도 은퇴 결정을 말하지 않았다. 데이나 화이트 대표에게도 언질을 주지 않았다. 내 가족들과 친구들만 알고 있었다. UFC 활동을 즐겼다. 팬 여러분들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뉴욕 버팔로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할 수 있어 기쁘다."

앞으로 하게 될 일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종합격투기와 관련되지 않은 다른 일을 할 것이다. 내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제 새로운 인생을 열 때"라며 안녕을 고했다.

그의 파이터 인생만큼 극적인 마지막이었다.

▲ 앤서니 존슨은 UFC 210에서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란 존슨은 술집 바운서로 일하다가 20살에 종합격투기 세계로 들어왔다. 레슬링 경력이 있으니 해 볼만 할 것이라는 친구의 추천 때문이었다.

재능은 충분했다. 문제는 몸무게였다.

존슨은 데뷔한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매 경기 225파운드(102kg)의 평소 체중에서 웰터급 한계 체중 170파운드(77kg)까지 빼야 하는 생지옥을 경험했다.

상대보다 체격과 힘에서 우위를 갖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UFC 두 번째 경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2007년 9월 UFC 76에서 6파운드(3kg)나 초과한 177파운드를 기록했다. 경기에서도 라이트급과 웰터급을 오가던 리치 클레멘티에게 리어네이키드초크로 패했다.

2009년 10월 UFC 104에서 또 계체에 실패했다. 5파운드를 넘겼다. 이번엔 금전적인 피해도 컸다. 요시다 요시유키와 경기에서 1라운드 41초 만에 KO승을 거둬 'KO 오브 더 나이트'에 선정됐지만 보너스 6만 달러를 받지 못했다. 몸무게를 맞추지 못한 것에 대한 벌칙이었다.

감량 고통에 시달리던 존슨은 미들급 전향을 결정했다. 2012년 1월 UFC 142에서 비토 벨포트와 경기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계체에 실패했다. 미들급 한계 체중 185파운드에서 무려 11파운드(5kg)를 넘겼다.

벨포트는 경기 당일 체중이 205파운드(93kg)를 초과하면 안 된다는 조건을 걸었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존슨은 1라운드 4분 49초 만에 무기력하게 서브미션으로 졌다.

존슨은 UFC에서 퇴출 통보를 받았다. 4개월 뒤엔 타 단체에서도 미들급 한계 체중을 넘겼다. 프로 의식, 정신력에 문제가 있다는 지탄을 받았다. 그는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존슨은 결단을 내렸다. 아예 마음껏 먹자고 생각했다. 체격과 힘의 우위보다 스트레스 없이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체급을 라이트헤비급으로 올렸다.

2013년 3월 WSOF 2에선 전 UFC 챔피언 안드레이 알롭스키를 상대로 헤비급 경기도 가졌다. 여기서 알롭스키의 턱을 부러뜨렸고 판정승을 거뒀다.

감량 스트레스가 없는 존슨은 훨훨 날았다. 몸은 무거워졌지만 마음은 가벼워졌다. 타 단체에서 6연승을 거둔 존슨은 2014년 4월 UFC에 다시 돌아왔다. 웰터급, 미들급이 아닌 라이트헤비급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강자 필 데이비스,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을 차례로 꺾었다.

2015년 5월 UFC 187에서 펼쳐진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다니엘 코미어에게 졌지만 그의 주먹은 여전히 무겁고 강력했다. 지미 마누와가 2라운드 28초 만에, 라이언 베이더가 1라운드 1분 26초 만에, 글로버 테세이라가 1라운드 13초 만에 존슨의 펀치를 맞고 쓰러졌다.

마지막 타이틀 도전에서 챔피언벨트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존슨은 미련 없이 옥타곤을 떠났다. 웰터급→미들급→라이트헤비급→헤비급→라이트헤비급으로 극적인 체급 변화를 겪으며 인생극장을 연 그의 마지막도 어느 영화나 드라마 못지않게 극적이었다.

이제 존슨은 라이트헤비급에서 파이터 인생 2막을 열었던 것처럼, 파이터가 아닌 다른 직업으로 인생 2막을 연다.

UFC 라이트헤비급 역사상 가장 강력한 하드 펀처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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