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세계여자아이스하키선수권대회에 출전한 북한 선수들.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0일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강릉에서 열린 2017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여자선수권대회 디비전Ⅱ 그룹 A에 출전한 북한 선수들이 강릉시와 강원도가 준 선물을 돌려주고 평양으로 돌아갔다.

북한 선수단은 9일 오전 강릉 숙소를 떠나면서 우리 측 관계자에게 선물을 모두 돌려줬다고 한다.

강릉시는 웰컴 기프트 열쇠고리 30여 개를 대회 팀 리더 미팅 때 매니저를 거쳐 북한 선수단에 전달했다. 웰컴 기프트는 ‘솔향 강릉’이 자랑하는 소나무 재질의 작은 열쇠고리로 강릉 시민들이 직접 만든 것이다. 열쇠고리에는 아이스하키, 스피드스케이팅 등 종목별 빙상경기 장면이 눈 내리는 형상과 함께 새겨져 있다.

북한 선수단은 대회 마지막 날인 8일 강원도가 선물한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 반다비도 돌려줬다. 강원도 관계자는 "수호랑 반다비는 갖고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다 돌려줬는지 여부보다는 북한 선수단이 우리 쪽 성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또는 못한 최근의 남북 관계가 글쓴이의 관심사다. 9일 오전 출국을 위해 강릉 숙소를 떠나 버스에 오른 선수 일부가 눈물을 흘리는 등 작별의 아쉬움을 나타냈다는 기사 마지막 한 줄이 눈길을 끌었다.
이 기사를 보면서 글쓴이는 꽉 막혀 버린 요즘과 달리, 비교적 활발했던 30여전 남북 스포츠 교류 현장을 떠올렸다.

1960∼7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은 '북괴'(北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터이다. 주요 국제 대회에서 북괴가 입장할 때가 되면 본 화면과는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화면을 내보내 '인공기'가 보이지 않도록 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이번 강릉 세계여자아이스하키대회에서도 그랬지만 이제 북괴가 북한으로 바뀌었고 제한적이지만 '인공기'가 게양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가 연주됐다. 이렇게 된 데에는 스포츠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스포츠 기자를 한 덕분에 남북 교류가 활발해 지기 전인 1980년대부터 북쪽 사람들과 몇 차례 만날 수 있었다. 1987년 서독 에센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는 이창수(71kg급), 박정철(86kg급) 등을 만났다. 이창수는 1991년 남쪽으로 와 글쓴이와 다시 만나기도 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 측 정은순(농구)과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한 박정철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재회했다.

그렇게 1980년대가 지나갔고 1990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제 11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렸다. 대회 직후 평양과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경기’가 열렸고 이어 1991년에는 탁구와 청소년축구 남북 단일팀이 구성됐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는 남북 스포츠 교류에 큰 물꼬를 튼 대회가 됐다. 그때 북한은 중국이 개최하는 대회인 만큼 대규모 선수단은 물론 응원단까지 파견하는 열의를 보였다. 남북한 모두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한데다 북한이 다른 국제 대회와 달리 체육인이 아닌 사람들을 응원단 자격으로 제법 많이 보내 여기저기서 북한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많았다.

2000년대 이후 남쪽에서 열린 여러 남북 관련 행사에 참가한 북측 예술단원 가운데에는 평양 음악무용대학 출신 또는 재학생이 많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7년 전인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 응원단으로 온 북한 여성들 가운데에도 평양 음악무용대학 학생이 여럿 있었다. 응원단 가운데는 또 청진사범대학 학생도 있었고 전산 관련 교육 기관에서 공부한 뒤 평양에 있는 기업소에서 근무한다는 이도 있었다.

글쓴이는 이들 가운데 몇 명을 북 측이 운영하는 류경식당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회 일정이 끝난 유도 종목의 남북 경기인이 마련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 북 측 응원단 일부도 참석한 것이다.

이들 가운데 평양 음악무용대학 학생들도 있었는데 뽑혀서 온 학생들이어서인지 미모가 상당했다. 어찌어찌 해서 이들과 말을 트고, 예쁘장하게 생긴 한 학생에게 목에 거는 끈이 달린 볼펜을 선물로 줬다. 모두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는데 마땅한 게 없었고, 볼펜도 달랑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잠시 뒤에 일어났다. 선물을 받지 못한 한 학생이 지도 교수, 또는 기관원인 듯한 이에게 고자질을 한 것이다. "저 언니가 남조선 기자가 주는 선물을 받았데요." 상급생 언니의 미모에 밀려 선물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아무튼 샘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룡성 맥주를 마시며 좋던 분위기가 갑자기 썰렁해졌다. 글쓴이는 선물을 받은 학생에게 혹시 불이익이라도 갈까 봐, 아니면 돌려주라는 불호령이 떨어질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지도 교수인 듯한, 또는 기관원인 듯한 이가 "선물 받은 게 뭐이 어드래서"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게 아닌가. 고자질한 학생은 머쓱해졌고, 옆에 있던 다른 신문사 기자가 글쓴이가 준 선물과 비슷한 볼펜을 고자질한 학생에게 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추측컨대 집단적으로 선물을 돌려줬을 2017년 북한 선수단과 "선물을 받은 게 무슨 대수냐"던 1990년 북한 응원단. 27년 사이에 남북 관계는 이런저런 이유로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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