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즈키 이치로 ⓒ Gettyimages


[스포티비뉴스=박민규 칼럼니스트]지난 18(이하 한국 시간), 시애틀  매리너스는 경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세이프코필드를 방문한 스즈키 이치로를 환영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에는 CEO 존 스탠트과 하워드 링컨을  비롯한 구단 고위 인사들, 이치로의 전 팀 동료이자 현재 시애틀의 타격 코치를 맡고 있는 에드가 마르티네스  그리고 펠릭스 에르난데스와 같은 현역 선수들이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돌아온 레전드를 환대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환영식이었다.

 

이틀 뒤인 20, 이치로는 4타수 2안타 1타점을  끝으로 시애틀 원정 경기를 마쳤다9회 마지막 타석에서는  세이프코필드에서 54번째 홈런을 치며 시애틀 팬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현역 선수로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시애틀 원정 경기에서 이치로는 의미 있는 홈런을 만들어 냈다.

 

이치로는 시애틀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인 인물이다. 이치로 이전에  미국에 진출했던 동양인 선수는 모두 투수였다. 또한 메이저리그에는 아시아  출신 타자는 파워가 약하기 때문에 활약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활약으로 뿌리 깊게 박힌 인식을 바꿔 놓은 이가 이치로다.

 

이치로가 시애틀과 계약한 이후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장에 나타났을 때 그를 지켜보는 시선은 우려와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2001년 스프링캠프에서 이치로를 지켜본 많은 기자들은 그는 홈런을 칠 만한 파워가 없고 타격 폼(시계추 타법)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비판했다. 시애틀의 루 피넬라 감독 또한 이치로에 대해 타율은 0.280에서 0.300 사이, 도루는 30개 정도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득점력을 조금은 향상시켜 줄  것 같다며 회의적인 자세를 보였다.

 

당시 시애틀 팬들의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이치로와 계약 여부 문제를 떠나 랜디 존슨의 51번을 이치로가 배정 받았기 때문이다. 많은 팬들은 이치로가 51번을 배정 받은 것은 존슨의 명예에 대한 모욕이라며 비난할 정도였다.

 

정규 시즌이 시작되자 이치로는 시범경기 때와는 전혀 다른 타자가 돼 었다. 새로운  타격폼은 시계추 타법에 비해 매우 단순했고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공을 연신 안타로 연결했다 이치로는 그해 타율(0.350)과 안타(242) 그리고 도루(56) 부문에서 아메리칸리그 1위에 올랐고 신인왕과 MVP로 뽑혔. 메이저리그 역사상 신인왕과 MVP가 동시에 된 선수는 지금까지도 프레드 린(1975)과 이치로가 '유이'하다. 이치로는 다른 모든 이들이 자신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2004, 이치로는 다시 한 번 리그를 평정했다. 2001년부터 3년 연속 3할  타율, 200안타, 30도루 이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치로는 만족하지 않았고 다시 한번 변화를 추구했다. 스트라이크 존을 작게 만들기 위해 바꾼 타격폼은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 경신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가져왔다.  1920년 조지 시슬러의 257안타를 경신하며 84년 만에  단일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세운 것이다. 더불어 이치로가 거둔 0.372의  타율은 아메리칸리그 좌타자 가운데 1980년 조지 브렛(.390)에  이은 최고 기록이기도 했다.

 

●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안타 순위

1. 스즈키 이치로(2004년) 262안타

2. 조지 시슬러(1920년) 257안타

3. 빌 테리(1930년) 254안타

3. 레프티 오돌(1929년) 254안타

5. 알 시몬스(1925년) 253안타

 

2001년부터 2010년까지는 이치로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성기의 이치로는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10년 연속 3할 타율과 200안타를 기록했으며 올스타전과 골드글러브 수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한번도 빠뜨린 적이 없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스타였다.

 

당시 이치로가 거둔 기록들은 대부분 메이저리그 전체 상위권에 있다. 같은 기간 이치로가 기록한 안타는 2,244. 메이저리그 전체 2위인 데릭 지터가 1.918안타,  3위인 알버트 푸홀스가 1,900안타로 2000안타를  넘긴 선수는 이치로가 유일하다. 득점과 도루 부문에서도 이치로는 높은 순위에 이름을 남겼다. 이치로는 1,047득점과 383도루를 기록했는데 이는 각각 메이저리그 전체 5위와 3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타격만으론 이치로의 가치를 설명할 수 없다. 이치로의 진정한 가치는 외야수’ 자체에 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를 기준으로 이치로가 전성기 시절 기록한 WAR은  54.6으로 알버트 푸홀스(81.1)와 알렉스 로드리게스(71.4)에 이어 메이저리그 전체 3위에 해당한다. 이치로가 이와 같은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타격과 수비에서 모두 뛰어난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이치로는 그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강한 선수다. 그래서 때로는 누군가에겐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2009 2, 당시 시애틀 소속이었던 애드리안 벨트레는 이치로는 팀 성적보다는 개인 성적에 치중하는 이기적인 선수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치로가 올바른 플레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의외로 시애틀 내 불화는 쉽게 해결됐다. 다시 시애틀로 돌아온 켄 그리피 주니어가  이치로와 팀 내 다른 선수들의 갈등을 봉합했기 때문이다. 그리피는 이치로를 웃게 하기 위해 노력했고  시애틀에서 선수들의 불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2009년 정규 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끝난 이후  시애틀 선수들은 그리피와 이치로를 무등 태우는 보기 좋은 장면을 연출했다. 선수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치로가 처음 미국에 건너왔을 당시 팀 동료들에게 들었던 조언은 경기를 즐겨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야구를 시작한 이치로는 경기 중에는  웃을 수 없다는 뜻을 고수했다. 어쩌면 이치로의 그런 경직된 태도가 동료들과 갈등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치로는 그리피에게서 동료들과 화합하는 방법 그리고 경기를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 확실하게  배울 수 있었고 그동안 경직돼 있던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 시애틀의 레전드, 켄 그리피 주니어와 이치로(오른쪽) ⓒ Gettyimages


메이저리그 역대 타격왕들의 나이는 평균 28세다. 때문에  많은 이들은 선수들의 기량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가 28세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진행된 많은 연구들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전성기는 25세에서 29세 사이에 분포돼 있다고 증명하고 있다. 그 시기 이후에는 많은  선수들이 하락세와 노쇠화를 겪는다.

 

이치로가 처음 미국에 건너왔을 때 그의 나이는 27세였다. 메이저리그  커리어 하이를 찍은 2004년 이치로는 30세였고 마지막 0.350대 타율을 기록한 2009년에는 35세였다. 은퇴할 날까지 전성기와 같은 활약을 펼칠 것만 같았던  이치로였지만 그도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치로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지난해 42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역대 30번째 3,000안타를 달성했다.

 

올 시즌 43세의 이치로는 13경기에서 타율 0.190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혹자가 말하지 않았던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닌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 자신보다  어린 지터와 로드리게스 그리고 데이비드 오티스와 같은 선수들마저 은퇴한 이 상황에서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고령 타자인 이치로는 현역 선수로 살아남았다. 과연 이치로의 한계는 어디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이치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참조 : baseball-reference, fangr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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