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효하는 벵거 감독. 최근 마음고생이 심하셨구나…
[스포티비뉴스=유현태 기자] 아르센 벵거 감독이 '수비 축구'로 FA컵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과는 얻었지만 팀을 위한 선택이었는지는 두고 봐야 한다..

아스널은 24일(한국 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 준결승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로 승리했다.

벵거 감독은 스리백을 바탕으로 수비에 집중했다. '아름다운 축구'를 추구했던 벵거 감독에겐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아스널 축구의 포기를 의미했다. 최근 부진한 흐름을 반영한 선택이기도 했다. 어차피 맞불을 놓아도 불리할 것이란 판단이 선택의 배경에 깔렸다.

수비 축구가 일시적인 선택인지, 장기적 변화인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벵거 감독 체제를 유지한 채로, 수비 축구가 정말 아스널에 해답이 될지는 의문이다.

▷ 좌우 간격 좁힌 스리백, 맨시티 침투에 견디다

아스널은 양쪽 윙백까지 깊숙히 수비에 가담해 파이브백 형태를 취했다. 효과는 확실했다. 맨시티는 선이 굵은 크로스 대신 침투와 스루패스로 공격을 펼친다. 파이브백 형태로 수비수의 좌우 간격을 좁히자 맨시티가 비집고 들 틈이 없었다. 최전방 공격수 세르히오 아구에로의 프로필상 키는 173cm다. 헤딩 능력을 갖춘 공격수라곤 하지만 단순한 크로스로 공중볼을 노릴 순 없다. 더구나 맨시티 공격의 핵심 다비드 실바가 부상으로 전반전 일찌감치 피치를 떠나면서 '아스널의 견디기'는 더욱 수월해졌다.

아스널이 전반전 점유율 30%를 기록하고도 버틴 원동력은 바로 '수비'였다.

온통 아스널 수비만 보였던 경기지만, 아스널은 후반전에 10분 정도 공격적인 태세를 유지했다. 후반 17분 세르히오 아구에로에게 선제 실점한 직후였다. 공격적으로 올라섰다가 역습에 무너졌다. 

아스널도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엔 없었다. 수비를 풀고 공격에 집중했다. 아스널의 공격은 꽤 매서웠다. 60분 이상 수비만 펼친 팀이라고 하기엔 공격 전개가 괜찮았다. 그리고 이내 동점을 만들었다. 후반 26분 나초 몬레알이 알렉스-옥슬레이드 챔벌레인의 크로스를 받아 천금 같은 골을 터뜨렸다.

동점을 만들자 아스널은 다시 수비 전술로 돌아왔다. 아스널은 지칠 만했지만 절대 수비를 풀지 않았다. 정규 시간 동안 승패를 가리지 못한 두 팀은 연장에 돌입했다.

연장 전반 11분 왼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에서 알렉시스 산체스가 골을 터뜨렸다. 그리고 리드를 지켜 결승행에 성공했다.

▲ 맨시티 팬들 앞에서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아스널 선수들.

▷ 수비 축구: 단판 대결 위한 선택인가, '새로운 전략'인가.

아스널은 벵거 감독이 부임한 뒤 지난 20년 동안 '아름다운 축구'를 펼쳤다. 경기 내용도 뛰어났고 2000년대 중반까진 성적도 냈다. 그래서 맨시티전 벵거의 변신은 놀라웠다. 지난 미들즈브러전에 이어 두 번째로 스리백 카드를 꺼냈다. 본인이 추구했던 축구를 포기하고 결승에 오르기 위해 수비 축구를 했다. 부진에 빠졌던 아스널이 스리백을 선택한 것은 무척 실리적인 선택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단판 대결에서 과정보단 결과가 중요하다. 아스널 팬들도 우승 컵을 간절히 바랐다. FA컵으로만 범위를 좁힌다면 벵거 감독의 선택은 적절했다. 그러나 아스널 전체에 도움이 될 변화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아스널이 수비 축구를 펼친다고 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스널은 리그에서 분명한 강자다. 팬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컵 대회 우승이 아니라 프리미어리그 우승이다. 수비 축구로 맨시티를 꺾었지만 나머지 리그 경기에서 모두 '버티기'만 할 순 없다. 우승을 위해선 승점을 따야하고, 승점을 따려면 '지지 않는 축구'가 아니라 '이기는 축구'가 필요하다.

라이벌전 승리를 위한 '수비 축구'로 리그 전체를 끌고 갈 순 없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면 팬들의 불만을 달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스널이 수비 축구로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등 다른 리그의 강자들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벵거 감독 그리고 아스널의 변신이 장기적인 차원에서 진행된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 이번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선 어느 때보다 치열한 선두권 경쟁이 펼쳐졌다. 7위까지 밀려난 벵거 감독이 사실상 자신이 추구했던 축구를 포기한 것은 아닐까. 전면적 포기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벵거 감독은 필요하다면 또다시 '수비 축구'를 펼칠 것이다. 그러나 전혀 다른 전술로 전술적 색채가 뚜렷한 라이벌 팀을 잡을 수 있을까. 맨시티는 전술적 목표가 변함 없는, '융통성이 없는' 팀이다.

공격 축구와 수비 축구로 단순한 이분법은 위험하지만, 아스널다운 축구가 무엇인지 확실한 색을 잃을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축구가 되지 않으려면 더 큰 변화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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