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복싱 밴텀급 결승에서 우세한 경기를 펼치고도 은메달을 차지한 송순천(오른쪽)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편집국장] 1948년 런던 올림픽 복싱 플라이급 준준결승에서 한수안은 네덜란드의 코만을 2라운드 KO로 눌렀지만 페더급 서병란은 폴란드의 안트키비츠에게 판정으로 져 아쉽게 탈락했다. 홀로 남은 한수안은 준결승에서 이탈리아의 밴디넬리와 맞붙게 됐다. 한수안은 안트키비치와 경기에서 양쪽 고막을 다친데다 오후 5시로 예정된 경기 시작 시간을 오후 8시로 잘못 알고 잠을 자다 경기 시작 직전 경기장에 도착했다. 게다가 한수안은 고막을 다친 후유증으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결과는 판정패. 당시에는 복싱도 동메달 결정전이 있었다. 심기일전한 한수안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즈로치를 판정으로 물리치고 감격의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아 나라 선수로는 유일한 복싱 메달리스트였다. <4편에서 계속>
 
1952년 헬싱키 올림픽 파견 선수단 구성을 둘러싸고도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처럼 분규가 여전했다. 그리고 1952년 휴전회담이 시작됐다고는 하나 남북이 대치한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쟁 상태였고 후방인 지리산 지역의 공비 토벌이 한창인 뒤숭숭한 때였으나 그해 1월 에이버리 브런디지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한국의 헬싱키 올림픽 참가를 희망했고 국회도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미군이 한국 선수단 파견 비용 모금 운동을 벌이고 해외 동포들의 성금도 들어왔으며 국회의원들은 세비의 10% 이상을 갹출했다. 5사단 장병들의 480만 원을 비롯해 국군 장병들이 성금을 모았고 미 8군 사령관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은 7천 달러씩 두 차례나 성금을 내놓았다. 정부는 여비를 부담하기로 했으며 서울대학이 140만 원, 내무부가 78만 원을 내놓는 등 거국적으로 성금이 모아졌다.

복싱과 육상, 역도, 레슬링, 승마, 사이클 등 모두 44명의 선수단(임원 23명 선수 21)이 최순주 단장 인솔 아래 6월 12일 부산 수영비행장에서 항공편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머문 뒤 6월 30일 헬싱키에 도착했다. 복싱은 플라이급 한수안, 밴텀급 강준호, 페더급 서병란, 라이트급 주상점이 출전했다.

전 대회 동메달리스트 한수안은 준준결승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토윌에게 판정으로 져 올림픽 연속 메달의 꿈을 접었다. 서병란은 16강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자하라에게 판정으로 져 런던 대회에 이어 올림픽 메달의 꿈이 또다시 무산됐다. 주상점은 1회전에서 폴란드의 포테실에게 판정으로 졌다.

1회전을 부전으로 통과한 강준호는 16강전에서 이란의 니카, 준준결승에서 미국의 무어를 각각 판정으로 물리치고 4강에 올랐다. 금메달이 코앞이었는데 아일랜드의 강호 맥날리에게 판정으로 져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 대회부터는 복싱 종목의 3위 결정전을 치르지 않았다.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1953년 7월 27일)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4년 5월 1일부터 9일까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에 한국은 이상백 단장 인솔 아래 6개 종목에 걸쳐 81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이 대회에서 복싱은 페더급의 박금현이 금메달, 플라이급의 이장교와 라이트웰터급의 이삼룡이 은메달, 웰터급의 김윤서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7개 체급 가운데 금메달 5개(은메달 1개)를 휩쓴 필리핀의 홈 텃세에 밀려 1952년 헬싱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강준호(밴텀급)를 비롯해 출전 선수 7명 가운데 3명이 메달권에 들지 못했지만 한국 선수단의 메달 레이스에 많은 힘을 보탰다.

제16회 하계올림픽은 1956년 11월 22일부터 12월 8일까지 호주 멜버른에서 열렸다. 한국은 이상백 단장 인솔 아래 7개 종목에 49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한국은 이 대회 복싱 밴텀급에서 송순천이 올림픽 출전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획득했다.

1955년 4월, 성북고 2학년에 재학하고 있던 송순천은 한국체육관을 찾아 복싱을 시작했다. 을지로 3가에 있었던 한국체육관은 1950~70년대 복싱 레슬링 등 우리나라 격투기 종목의 본산으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그해 가을에 열린 멜버른 올림픽 파견 복싱 선수 1차 선발전은 송순천의 KO 퍼레이드를 보는 것 같았다.

송순천은 1회전에서는 필리핀의 알베르토 아델라, 2회전에서는 호주의 로버트 바스를 각각 판정으로 누른 뒤 준준결승에서 아르헨티나의 카멜로 토마세리, 준결승에서 칠레의 클라우디오 바리엔토스를 역시 판정으로 물리치고 대망의 결승전에 올랐다. 금메달을 겨룰 상대는 독일(1956년부터 1964년까지 동·서독은 단일팀을 꾸려 올림픽에 출전했다)의 볼프강 베렌트였다.

송순천은 우세한 경기를 펼쳤으나 판정은 베렌트의 승리였고 억울하긴 하지만 송순천은 한국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가 됐다.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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