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정현준 기자]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폴 포그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등 화려한 스타플레이어들을 영입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세계 최고의 명장 중 한 명인 펩 과르디올라 감독을 선임한 맨체스터 시티 등이 EPL 우승 유력 후보로 평가받았고, 상위권 팀들의 치열한 우승 경쟁이 펼쳐질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시즌 전 예상이 무색하게도 첼시는 초반에 잠시 주춤했을 뿐, 그 뒤로는 완벽한 경기력을 과시하면서 EPL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반면 첼시의 경쟁 팀들로 분류된 맨유, 맨시티, 아스날, 리버풀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목이 잡히면서 첼시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뒤늦게 불이 붙은 토트넘이 거세게 추격했으나 이미 벌어진 격차를 좁힐 순 없었다.

첼시는 리그 최종전까지 리그에서 29승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초로 30승 고지에 오를 기회를 맞이했다. 그리고 21일 오후 11시(한국 시간) 영국 런던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2016-2017 시즌 EPL 38라운드에서 선덜랜드에 5-1로 역전하면서 EPL 역사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불과 1년 만에 강팀으로서 면모를 되찾았다. 지난 시즌 태업 논란과 부진으로 이번 시즌 첼시의 행보는 쉽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지휘 아래 첼시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고, 챔피언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운명을 바꾼 8라운드 그리고 '신의 한 수' 스리백

이번 시즌 첼시를 상징하는 전술은 스리백을 기반으로 한 3-4-3 전술이다. 하지만 시즌 초까지만 해도 첼시가 활용한 전술은 스리백이 아닌 포백이었다. 첼시는 6라운드까지 4-1-4-1과 4-2-3-1을 번갈아 꺼내들었다. 그 중 4-1-4-1에선 수비형 미드필더로 은골로 캉테를 넣고, 그 위에 오스카와 네마냐 마티치로 중원의 지배력을 높였다. 오스카의 이적 후엔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하지만 첼시의 포백은 생각보다 강력한 위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들이 배치된 탓도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첼시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개막 후 리그와 잉글랜드풋볼리그(EFL)컵에서 치른 8경기 동안 첼시는 무려 13골을 허용했다. 그 중에서 EPL 7, 8라운드에서 상대한 리버풀과 아스날에 각각 1-2, 0-3 패배로 체면을 구겼다. 특히 아스날과 경기에서는 알렉시스 산체스, 메수트 외질의 발에 수비가 완전히 붕괴됐다.

해결책이 절실했던 콘테 감독은 첼시의 전술을 모두 뜯어내고 새롭게 시작했다. 우선 포백에서 스리백으로 전환한 뒤 게리 케이힐, 다비드 루이스,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를 주전으로 기용했다. 눈에 띄는 선수는 아스필리쿠에타였다. 프로 데뷔 후 풀백 자리에서 뛰어온 그에게 센터백은 낯선 자리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콘테 감독은 아스필리쿠에타의 앞에 윙백으로 빅터 모제스를 배치하는 도박을 했다. 풀백의 센터백 변신, 공격수를 윙백으로 활용하는 선택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콘테 감독과 첼시의 과감한 결단은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윙백으로 포진한 모제스가 빠른 발과 폭발적인 활동량으로 측면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우려했던 수비 능력도 경기를 치르면서 조금씩 성장을 거듭했다. 물론 모제스가 흔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모제스의 뒤에 위치한 아스필리쿠에타가 침착하게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면서 첼시의 강력한 방패가 됐다. 때로는 오버래핑을 전개해 상대의 측면에 부담을 안기기도 했다.

첼시 빌드업은 루이스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발기술과 수비력을 모두 지닌 루이스는 첼시에 꼭 필요한 선수였고, 지난해 여름 루이스를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엔 지나친 공격 성향으로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사이에 상대 팀들은 루이스가 비워둔 공간을 집요히 공략하면서 첼시를 위협했다. 스리백으로 전환한 뒤엔 케이힐, 아스필리쿠에타보다 조금 앞에서 캉테, 마티치와 함께 첼시의 빌드업을 주도, 공격적인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그 뒤는 케이힐이 단단히 받쳐주면서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왼쪽 윙백으로 출전한 선수는 마르코스 알론소. 피오렌티나에서 기량을 만개했다고는 해도 영입 당시 스피드와 압박, 경기 템포에서 큰 차이가 있는 EPL에 적응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안정된 수비력과 왼발에서 나오는 강력한 킥력을 바탕으로 주전으로 맹활약, 첼시 우승의 한 축을 담당했다.

안정된 중원, 첼시에 레스터 색깔 입힌 캉테

캉테의 영입은 첼시의 이번 시즌 최고의 영입이라 평가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 캉테는 뛰어난 활동량과 체력, 스피드, 부드러운 공수 전환으로 지난 시즌 레스터 시티의 우승을 일궈낸 핵심 선수 중 하나다. 지난 시즌 말부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 진출하는 팀에 뛰고 싶다는 생각을 밝혀온 캉테였기에, 당장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레스터를 떠나 10위에 머무른 첼시로 이적은 예상 외였다.

첼시에 합류한 캉테는 잠시 적응 기간을 거친 뒤, 중원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공격과 수비를 오가면서 볼을 공급했고, 빠른 역습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상대의 역습 시엔 빠른 커버 플레이와 압박 전개로 흐름을 끊었다. 캉테의 활약 덕분에 첼시의 스리백은 수비 부담을 덜 수 있었고, 에당 아자르와 페드로 로드리게스가 포진한 2선은 공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첼시는 지난 시즌에 비해 이번 시즌 볼 점유율이 소폭 하락한 대신(54.4%→53.7%) 빠른 역습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장착했다. 첼시가 자신의 진영에서 볼을 탈취하면 캉테 혹은 좌우 풀백이 빠르게 전진하면서 상대를 몰아쳤다. 마치 캉테가 활약했던 지난 시즌 레스터의 공격 패턴과 상당히 흡사했다. 역습에서 시작해 아자르와 페드로의 드리블 돌파, 코스타의 마무리하는 첼시의 공격은 단순하지만 그 위력은 가볍게 여길 수준이 아니었다.

레스터에서 캉테의 옆에 다니엘 드링크워터가 있었다면, 첼시엔 마티치가 존재했다. 드링크워터는 캉테가 종횡무진 하는 동안 중원 혹은 처진 위치에서 공격진을 향해 예리한 패스로 레스터에 힘을 실었다. 마티치의 임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로 스리백을 보호하면서 중원을 장악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강력한 몸싸움과 볼을 간수하는 능력 등 많은 부분에서 드링크워터보다 우위를 보이며 캉테의 완벽한 지원군이 됐다. 캉테가 부상으로 이탈한 시즌 말에도 파브레가스가 공격과 경기 조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살아난 아자르-코스타 조합, 아무도 그들을 대신할 수 없다

가장 큰 수확은 아자르와 코스타 조합의 귀환이다. 지난 시즌 주제 무리뉴 감독을 거쳐 거스 히딩크 감독 체제로 마친 첼시는 둘의 부진이 뼈아팠다. 아자르는 태업 논란의 중심으로 지목되며 큰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고군분투한 코스타가 아니었다면 첼시는 더 낮은 순위로 시즌을 마감할 뻔했다.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자 아자르는 자신이 언제 부진에 빠졌냐는 듯 과거의 뛰어난 경기력을 회복했고, 2선에서 빛나는 존재로 돌아왔다. 빠른 발과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를 제쳐냈고, 침착한 마무리로 상대의 골망을 흔들었다. 전방에서 아자르가 자유자재로 움직이자 상대는 자신들의 플레이를 펼치기 어려워졌다. 이번 시즌 아자르는 16골 5도움으로 이적 첫 해(38경기 14골 9도움)와 비견되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콘테 감독의 원톱으로 낙점된 코스타는 포스트 플레이, 연계 플레이로 공격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지난해 12월까지만 해도 득점포를 쉼 없이 가동하면서 득점왕 경쟁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가 닥쳐왔다. 올해 1월 중국 슈퍼리그로 이적설이 제기되면서 코스타는 경기력에 난조를 보였다. 3월 7일 웨스트햄과 EPL 27라운드를 시작으로 7경기 동안 득점이 침묵하자 영국 언론들은 코스타를 대신할 선수로 로멜루 루카쿠의 영입을 추천했다. 코스타 대신 미키 바추아이를 기용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콘테 감독은 코스타의 이적설을 일축하고, 영국 매체 ‘스카이 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코스타는 득점 여부와 관계없이 첼시에 가장 중요한 선수다”고 말해 코스타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그 후 코스타는 콘테 감독의 신뢰 속에 팀 승리에 주도적인 활약을 했고, 골 가뭄까지 끝내면서 첼시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로테이션과 아브라모비치, 콘테의 새로운 도전

2년 만에 첼시를 EPL 정상에 올려놓은 콘테 감독은 28일 아스날과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이 끝나면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한다. 바로 UCL이다. 이번 시즌 첼시는 주전들의 높은 의존도로 지적을 받았는데, 다행히 이번 시즌엔 유럽 클럽 대항전을 뛰지 않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은 UCL을 병행해야하는 만큼 로테이션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콘테 감독에게 한 가지 고민이 더 있다.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다. 2003년 첼시의 구단주가 된 아브라모비치는 막대한 자금울 투자하면서 첼시를 EPL 명문팀 반열에 올려놨다. 아브라모비치의 강력한 지원을 받은 첼시는 EPL 우승 4회, UCL 우승 1회 등 여러 차례 정상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업적만 보면 그는 첼시의 역대 최고의 구단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문제도 많았다.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주로 취임 후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주제 무리뉴, 루이스 스콜라리,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카를로 안첼로티 등 화려한 명장들이 첼시를 거쳐 갔는데, 대부분 계약 기간을 마치지 못했다. 심지어 한 시즌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경질된 경우도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UCL 우승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

다음 시즌 UCL에 참가하는 콘테 감독으로선 우승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눈앞의 성적을 보여줘야 한다. 리그에서 아무리 뛰어난 성적을 거둬도 아브라모비치의 시선은 UCL로 향해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아브라모비치의 인내심은 결코 많은 편이 아니다. 리그와 UCL을 병행하면서 확실한 성적을 거두는데 실패한다면 다음 시즌 그의 자리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영상] 첼시 우승 시상식 하이라이트 ⓒ장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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