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소년체육대회 첫 대회에서 대표 선서를 하고 있는 선수 뒤로 ‘제1회 전국스포오츠소년~’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대한체육회가 주관하는 2017년 제46회 전국소년체육대회가 오는 27일부터 나흘 동안 아산시 등 충청남도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대회에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1만6,964명의 선수와 임원이 참가한 가운데 충남 도내 15개 시·군, 51개 경기장에서 35개 종목의 경기가 펼쳐진다. 

스포츠 팬들 귀에 익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라는 구호 아래 열리는 이 대회는 언제 어떻게 출발했을까. 또 대회 초창기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전국소년체육대회는 1972년 전국체육대회에서 분리돼 따로 전국 규모로 열리고 있는 스포츠 꿈나무들의 종합경기대회다. 1960년대 들어 전국체육대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비대해져 갔다. 1971년 제52회 대회부터는 거대 도시인 서울에서조차 대회를 치르기 벅차다는 소리가 나왔다. 대회가 커지면 지방 도시에서 열기 어려운 것은 둘째 치고 대회의 비대화가 바람직한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대한체육회는 전국체육대회의 규모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전국 규모 주니어 체육대회 창설을 1970년도 사업 계획으로 결정했으나 정부 당국의 미온적인 자세로 대회를 열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이 무렵 대한체육회가 일본체육협회와 함께 마련한 한일고교교환경기대회(한중일 주니어 종합경기대회 전신)가 열리고 있었다. 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본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스포츠 소년단을 국내에 도입해 전국체육대회 비대화를 막는 방안으로 활용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1972년 첫 대회 명칭이 '스포츠 소년단 창단 기념 제1회 전국스포츠소년대회'라는 것을 보면 대회의 도입 과정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명칭은 1974년 제3회 대회까지 사용하다 스포츠 소년단 창단이 재정 문제 등으로 흐지부지되자 1975년 제4회부터 '전국소년체육대회'로 바뀌었다. 

제1회 대회에서는 스포츠 소년단 단기가 게양되고 단복과 단모를 착용한 선수단이 입장했다. 대회 구호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으로 이후 스포츠 팬은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친숙한 문구가 됐다.

스포츠 소년단 창단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그동안 여러 국제 대회와 국내 대회에서 뼈저리게 느껴 온 기초 체력의 향상과 기본 경기력의 충실을 기해야 한다는 교훈을 살리고, *제52회 전국체육대회까지 포함하고 있던 중학부를 분리해 국민학교(초등학교) 상급반과 묶어 종합경기대회를 만들어 소년 스포츠 활동을 활성화하며, *각종 경기로 스포츠 인구의 저변 확대와 경기 수준의 향상 나아가 국민 체위 향상을 기해 국가 저력의 배양에 힘쓰고, *기록이나 경기 위주의 단순한 경기 자세에서 진일보해 스포츠 종목 외에도 스포츠의 생활화를 돕는 등산과 캠프 생활을 추가해 명랑한 생활 속에서 협동 정신과 단결력을 기르고, *그런 가운데 규율과 질서를 배워 사회 봉사 활동의 정신을 익히고 나라와 겨레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이 나라의 어린이상(像)을 마련한다. 

전국체육대회 비대화를 막는 방안과 유소년 또는 청소년 체육의 바람직한 활동 방향을 한꺼번에 제시한 당시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이후 전국소년체육대회는 이런저런 논란 끝에 1988년 제17회 대회를 끝으로 전국 규모 종합경기대회의 위상을 잃게 되지만 한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점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제1회 대회는 1972년 6월19일부터 19일까지 서울에서 열렸다. 

경기 종목은 육상 수영 축구 야구 테니스(중학부) 연식정구(중학부) 농구 배구 탁구 핸드볼 럭비풋볼(중학부) 씨름 유도(중학부) 검도(중학부) 체조 필드하키(중학부) 펜싱(중학부) 배드민턴 태권도(중학부) 등 19개 종목으로 6,652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 옛 이름)을 비롯한 22개 보조 경기장에서 열렸다. 초등학교 육상경기 가운데에는 체력을 고려해 세부 종목으로 공던지기가 있었다. 

종합 순위 1위는 뜻밖에도 충남이었다. 2위와 3위도 전북과 경기로 전국체육대회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서울은 5위에 그쳤다. 인기 구기 종목 위주로 이어진 대도시 학교 체육의 문제점이 드러난 한편, 대한체육회가 1960년대 중반까지 실시한 전국체육대회의 시도 순회 개최 등 체육 저변 확대를 위한 정책적 배려가 효과를 거둔 측면으로 풀이할 수도 있는 결과였다. 

첫 대회 최고의 화제는 전남 신안군 안좌초등학교 사치분교 남자 농구부의 선전이었다. 서남해의 외딴 섬 사치도에 있는 이 분교는 전교생이 80명이 안 되는 미니 학교였지만 결승전에서 서울 계성초등학교에 57-86으로 져 준우승할 때까지 숱한 화제를 뿌렸다. 역경 속에서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사치분교의 교훈은 당시 시대상과 맞물려 많은 이에게 감동을 안겼다. 사치분교의 이야기는 뒤에 ‘섬개구리 만세’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