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라파엘 나달이 우승 컵을 들고 '10'이 적혀진 시상대 위에 앉아 있다 ⓒ GettyImages

- 테니스 사상 남자 단식에서 단일 그랜드슬램 대회 10회 우승한 최초 선수

- 개인 통산 15번째 그랜드슬램 대회 타이틀

- 서브와 포핸드, 네트 플레이 발전하며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변신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느낌이군요. 제가 이 코트(롤랑가로스 코트)에서 느끼는 대담성과 아드레날린은 다른 코트와 비교하기 힘듭니다. 이번 우승은 제 경력에 있어 중요한 사건이고 여기서 다시 우승하는 것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흙신'이 재림했다. 클레이 코트에 서면 세계 최고 테니스 선수가 되는 위엄은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라파엘 나달(31, 스페인, 세계 랭킹 4위)이 롤랑가로스 우승 컵을 품에 안았다. 이제 10번째다. 그는 11일 프랑스 파리의 롤랑가로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7년 롤랑가로스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스탄 바브린카(32, 스위스, 세계 랭킹 3위)를 세트스코어 3-0(6-2 6-3 6-1)으로 이겼다.

그가 10번째 롤랑가로스 황제에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2시간 5분이었다. 서른을 훌쩍 넘은 그는 과거 20대 전성기 때보다 성장해서 돌아왔다. 고질적인 무릎과 발목, 손목 부상으로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찾아온 위기를 극복한 나달은 로저 페더러(36, 스위스, 세계 랭킹 5위)와 더불어 자신이 '살아있는 테니스의 전설'임을 증명했다.

▲ 라파엘 나달의 테니스 라켓 가방에 적혀진 롤랑가로스 '라 데시마' ⓒ GettyImages

'흙신의 재림'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나달은 2005년 프랑스오픈에서 처음 우승했다. 이후 2008년까지 4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2009년에는 16강전에서 떨어지며 주춤했다. 그러나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연속 롤랑가로스를 지배했다. 2015년에는 8강전에서 노박 조코비치(30, 세르비아, 세계 랭킹 2위)에게 발목이 잡혔다. 이듬해에는 3라운드에서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나달은 2014년 프랑스오픈 우승 이후 2년 6개월여간 4개 그랜드슬램 대회(호주 오픈 롤랑가로스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 4강에 진출하지 못했다. 지난해 나달은 프로 데뷔 이후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그는 호주 오픈 1회전에서 탈락했고 자신의 무대였던 롤랑가로스에서는 3라운드에서 부상으로 기권했다. 윔블던은 불참했고 US오픈에서는 16강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위기에 몰린 그는 변화를 시도했다. 우선 늘 부상에 시달리던 그는 건강 회복에 집중했다. 고질적인 부상에서 벗어난 그는 지난 2월 새로운 지도자를 만났다. 나달을 27년간 가르친 이는 삼촌 토니 나달(56)이었다.

선수 출신이었던 토니 나달은 조카 라파엘의 재능을 이끌어냈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체력이 뛰어나고 운동 신경이 좋았던 나달은 삼촌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실력은 물론 코트에 서면 잃지 말아야할 집중력과 인성도 가르쳤다.

▲ 2017년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포핸드를 치고 있는 라파엘 나달 ⓒ GettyImages

그러나 나달은 변화를 선택했고 토니 나달도 이를 받아들였다. 토니 나달은 유망주 유성에 집중했고 나달은 같은 국적 선배인 카를로스 모야(40, 스페인)를 새 코치로 영입했다.

SPOTV 테니스 해설위원인 박용국 NH농협 감독은 "나달은 원래 빠른 발을 이용해 코트를 뛰어다니며 상대 볼을 받아내는 경기를 펼쳤다. 워낙 코트 커버력이 뛰어나고 클레이 코트에서는 볼의 회전력이 좋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은 "그러나 서른을 넘어서며 예전과 비교해 체력이 떨어졌고 부상 문제도 있었다. 올해 나달은 새로운 코치인 모야를 만나면서 변신을 시도했다. 포핸드 발전과 네트 플레이가 많아지는 등 공격력이 다양해졌다. 여기에 기존의 코트 커버력과 수비 능력이 조화를 이루며 (로저)페더러와 같은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됐다"고 분석했다.

나달은 올해 프랑스오픈에서 과거 20대 시절에 보여줬던 기량에 못지않은 경기력을 펼쳤다. 준결승전에서는 클레이코트의 미래로 평가받은 도미니크 팀(23, 오스트리아, 세계 랭킹 7위)을 3-0으로 완파했다. 결승전에서 만난 바브린카는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그러나 나달은 장기인 수비 능력은 물론 강해진 서브와 포핸드 공격으로 바브린카를 압도했다.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변신한 그는 '야생마'를 넘어 '무결점'으로 성장했다.

'제 2의 전성기' 맞이한 나달 앞에 있는 회춘한 페더러

경기를 마친 그는 AFP 통신을 비롯한 언론과 나눈 인터뷰에서 "(10번 우승한) 느낌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 롤랑가로스 코트에서 느끼는 대담성과 아드레날린은 다른 코트와 비교하기 힘들다"며 롤랑가로스 대회에 가지는 특별한 애정에 관해 설명했다. 이어 "이곳에서 다시 우승하는 것도 설명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나달이 롤랑가로스 코트에서 이룩한 10회 우승, 10번 결승에 진출해 100% 승률을 기록한 점, 클레이 코트 대회 우승 횟수 53회와 승률이 90%가 넘는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어렵다.

그가 가장 찬란하게 빛을 발휘한 해는 2010년이다. 이 해 나달은 호주 오픈을 제외한 나머지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우승했고 시즌 승률은 88%(71-10)였다. 2013년은 프랑스오픈과 US오픈에서 우승했지만 윔블던에서는 1회전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이 해 나달은 75승 7패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승률 91%를 찍었다.

▲ 2017년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한 라파엘 나달이 관중들에게 기랍박수를 받고 있다 ⓒ GettyImages

올해 나달이 출전해야 할 경기는 아직 절반이나 남았다. 그러나 상반기까지 나타난 그의 기록은 2010년과 2013년과 비교해 떨어지지 않는다. 나달은 올 시즌 49경기에 출전해 43승 6패를 기록했다. 특히 클레이 코트에서 펼친 경기는 24승 1패다. 현재까지 나타난 그의 올 시즌 승률은 88%다.

'빅 4' 가운데 올 시즌 상반기 가장 두드러진 성적표를 받은 이는 나달이다. 그는 호주 오픈에서 준우승했고 프랑스오픈에서는 정상에 올랐다. 남은 윔블던과 US오픈에서 나달의 상승세가 계속 이어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한 윔블던 출전 예정인 '평생의 라이벌' 페더러와의 경쟁도 피해갈 수 없다.

그랜드슬램 대회 역대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이는 18회의 페더러다. 나달은 피트 샘프라스(미국)와 14회로 공동 2위에 올랐었다. 이번 프랑스오픈을 정복한 그는 샘프라스를 따돌리며 15회로 단독 2위가 됐다.

올해 페더러는 호주 오픈 결승전과 남자 프로 테니스(ATP) 투어 마이애미 오픈 결승전에서 모두 나달을 이겼다. 나달이 롤랑가로스를 가장 선호한다면 페더러는 잔디 코트에서 열리는 윔블던에 애정이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나달과 페더러의 경쟁도 올 시즌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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