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한국의 유일한 메달리스트(은)가 된 오승립(왼쪽)의 경기 장면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64년 유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도쿄 올림픽에서, 뒷날 외국인 코치 초빙 사업에 참여해 모국의 후배들을 지도하게 되는 김의태(80kg급)는 준준결승까지 3경기 연속 한판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으나 준결승전에서 이 체급 우승자인 오카노 이사오(일본)에게 판정패해 동메달을 차지했다. 나머지 출전 선수는 대부분 메달 문턱인 8강전에서 탈락했다. 유도 종주국을 자처하는 일본은 4개 체급 가운데 안톤 헤싱크(네덜란드)가 우승한 무제한급을 제외한 3체급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2편에서 계속>

1967년 도쿄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는 유도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고 한국은 정삼현과 김정행, 윤수균, 김충조, 박청삼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정행은 은퇴한 뒤 용인대학교 총장, 대한유도회 회장, 대한체육회 회장 등을 지내며 한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에서는 유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빠졌다.

이어 1970년 대만에서 열린 제2회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에서는 최규본이 중량급에서 처음으로 일본을 제압하고 금메달을 획득했고 정삼현, 김대권, 윤공화가 은메달, 정이수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오승립이 한국 선수단의 유일한 메달인 은메달을 차지한 상황은 당시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0년대에 한국 스포츠의 지상 목표 가운데 하나는 북한과 경쟁에서는 이기는 것이었다. 한국과 북한은 1972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뮌헨 올림픽 남자 배구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맞붙는 등 몇몇 종목에서는 기량을 겨뤘지만 하계 올림픽에서 맞부딪힌 것은 1972년 뮌헨 대회가 처음이었다.

이에 앞서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열린 제9회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과 북한이 남북 분단 이후 올림픽 무대에서 처음으로 만났으나 한국이 7명의 선수를 내보냈을 정도로 선수단 규모가 워낙 작아 본격적인 대결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뮌헨 올림픽에 이어 테헤란에서 열린 1974년 제7회 아시아경기대회는 한국과 북한의 합계 메달 숫자가 103개(한국 57개, 북한 46개)에 이를 정도로 대규모 경쟁이었다. 이어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과 1978년 제8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등 한국과 북한은 1970년대 내내 한 치도 물러 설 수 없는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뮌헨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체육회는 멕시코시티 대회에 이어 다시 한번 6위 이내 입상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과 선수 위주로 소수 정예 선수단을 꾸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1차적으로 확정된 선수단은 여자 배구, 복싱, 역도, 레슬링, 유도 등 5개 종목에 39명(임원 13명 선수 26명)이었다. 이는 1952년 헬싱키 대회 때보다 4명이나 적은 역대 최소 규모였다. 그러나 7월 프랑스에서 열린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자유중국(오늘날의 대만)을 3-0, 북한을 3-1로 꺾고 본선 티켓을 손에 넣은 남자 배구(임원 2명 선수 12명)가 합류한 데 이어 서독 현지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던 육상의 박상수(남자 높이뛰기)와 백옥자(여자 포환던지기) 그리고 수영의 조오련과 사격 대표 팀(임원 1명, 선수 5명)이 추가되면서 62명(임원 6명 선수 46명)으로 선수단 규모가 늘었다.

이러저런 까닭으로 선수단 규모는 커졌지만 한국은 대회 내내 노메달 행진을 하고 있었다. 선수단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가운데 재일 동포 유도 선수가 다시 한번 한국 스포츠의 체면을 살렸다.

오승립은 유도 80kg급에서 은메달을 차지해 한국 선수단에 유일한 메달을 안겼다. 8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유도 첫 메달을 모국에 선사한 또 다른 재일동포 김의태는 도쿄 대회 80kg급에서 체급을 올려 93kg급과 무제한급에 출전했으나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63kg급의 한성철과 70kg급의 장인권도 메달권에 들지 못했다.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 때 정식 종목에서 탈락했다가 올림픽 무대에 복귀한 유도에서 일본은 또다시 5체급 가운데 3개의 금메달을 얻었으나 종목의 대표성을 지닌 무제한급에서 1964년 도쿄 대회의 안톤 헤싱크(네덜란드)에 이어 같은 나라의 빔 루스카가 다시 정상에 올라 머쓱하게 됐다. 또 다른 중량급인 93kg급에서는 소련의 스코타 코초스리가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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