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현은 패배의 아픔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싱가포르, 곽혜미 기자

-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UFC 백스테이지에서

[스포티비뉴스=싱가포르, 이교덕 격투기 전문 기자] 승자에게는 천국으로 가는 길, 패자에게는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두 명의 선수가 경기를 마치고 옥타곤에서 내려와 백스테이지로 돌아오는 통로.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기쁜 사람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 같은 길을 걷어야 한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지난 17일 UFC 파이트 나이트 111이 열린 싱가포르 인도어 스타디움 백스테이지.

영상 인터뷰를 준비하며 선수들의 퇴장을 지켜보는 동안, 강렬한 환희와 고통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UFC는 경기 후 백스테이지에 들어오는 모든 선수들에게 메디컬 테스트를 가장 먼저 실시한다. 청 코너와 홍 코너 선수들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둔 각각의 진찰실로 들어간다.

여기서 나오면 완전히 길이 갈린다. 승자는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인터뷰실로 향한다. 패자는 라커룸으로 돌아간다. 큰 부상이 염려되는 선수는 바로 병원행이다.

콜비 코빙턴에게 판정패하고 돌아온 '스턴건' 김동현은 진찰실로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스포티비뉴스 취재진들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옥타곤에서 느끼는 네 번째 패배의 고통. 쓰라려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졌으니까 인터뷰는 힘들겠네요"라면서 가벼운 미소를 짓고 터벅터벅 라커룸으로 향했다.

뒤따라 들어온 코빙턴은 잔뜩 기분이 '업'된 표정이었다. 그런데 한국 취재진이 인터뷰를 요청하자 감정 표현을 그쳤다. 일종의 배려로 보였다.

그는 한국 팬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요청하자 "김동현이 지금까지 이룬 것들을 그대로 이어 가겠다. 이것이 내 최고 기록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타이틀전까지 가서 그가 세계 5위권 파이터로 계속 남도록 하겠다. 한국 팬들이 부끄러워할 패배가 아니다. 나는 최고의 파이터다. 다음 경기에서 또 증명하겠다"고 말했다.

"네 실력을 인정한다"며 승리를 축하했더니, 코빙턴은 먼저 악수를 청하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TKO로 진 곽관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초반 경기를 잘 풀어가다가 한 번의 펀치 러시에 승리를 내줬으니 아쉬울 법했다.

선수 한 명의 패배가 아니다. 그와 함께한 팀 전체가 이 고통을 같이 느껴야 한다.

코리안 탑팀 세컨드들도 굳은 표정을 풀지 못했다. 선수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들이기에 섣부른 위로나 격려를 하지 않는다. 그때만큼은 선수가 아픔을 잘 견뎌 주길 바라며 옆에 서 있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4연패의 부진에서 빠져나온 러셀 돈은 백스테이지로 오면서 F로 시작하는 욕설과 으아아아 고성으로 격하게 기쁨을 표출했다. 하지만 백스테이지에 들어오자 자제했다.

승자는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고 패자는 고통을 참아야 하는, 묘한 분위기의 이 공간은 모두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UFC 백스테이지에는 천국과 지옥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길에서 천국을 자주 느꼈을 왕년의 스타들 안드레이 알롭스키와 고미 다카노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들은 5연패와 4연패 수렁에 빠졌다. 세월이 지나고 파이터 인생 황혼기를 맞은 이들은 이 길에서 지옥을 더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 경기로 끝이 아니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어찌 됐든 인생은 계속된다. 다시 전진해야 한다.

파이터는 훈련하고, 감량하고, 싸우는 직업이다. 여기에 우리가 잘 모르는 하나를 추가한다면, 승패 이후 마음을 다잡고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일도 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순전히 감정 노동이다.

'코리안 불도저' 남의철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운동선수들, 특히 파이터들은 승리와 패배 사이에서 극과 극의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 폭이 너무 커서 심리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지면 팬들의 비판도 견뎌야 한다. 다시 원궤도로 돌아와 훈련에 복귀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파이터는 참 힘든 직업이다. 내게도 지옥이었던 백스테이지에서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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