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년 간 NBA 심판으로 활약한 딕 바베타


[스포티비 뉴스=조현일 NBA 해설위원/전문기자] 농구는 가장 많은 점수를 주고받는 구기종목이다. 코트 왕복 속도, 이동 거리, 공격 소유권 횟수 등 숫자로 나타나는 크기가 다른 스포츠에 견줘 월등히 높다. 경기 스피드도 정신없이 빠르다. 그 때문인지 오심이 꽤나 잦은 편이다. 3심제, 비디오 판독 등 여러 가지 대비책을 내놓았지만 100% 완벽한 판정을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인지 농구 코트는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바로 눈앞에서 반칙 장면을 놓치는 것도 모자라 선을 밟지 않았는데도 라인 크로스를 지적해 해당 선수와 팬들의 분노 지수를 높인다. 이런 굵직굵직한 오심들은 매년 농구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오심으로 들끓는 NBA
수많은 농구 리그가 벤치마킹하는 NBA 역시 오심 논란에서 피해갈 수 없다. 2014년 1월 12일 열린 뉴올리언스 펠리컨스와 댈러스 매버릭스의 경기 막판. 3점 차로 뒤지고 있던 뉴올리언스의 오스틴 리버스가 종료 버저와 동시에 3점을 던졌다. 리버스는 상대 수비수였던 몬테 엘리스의 팔이 자신의 슈팅 핸드를 완전히 휘감자 곧바로 반칙을 유도하면서 슛을 던졌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3점 슈팅 파울이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휘슬은 불리지 않았다. 슈팅 포물선조차 그리지 못할 정도로 수비수가 공격수의 팔을 광범위하게 감았지만 볼과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던 심판은 정상적인 플레이라 판단했다. 경기는 댈러스의 승리로 그대로 끝이 났다. 

정확히 하루 뒤, NBA 사무국은 “오심이었다. 엘리스가 명백히 오스틴의 슛 동작을 방해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잘못된 판정임을 인정한다”며 실수를 시인했다. 억울한 패배를 떠안은 몬티 윌리엄스 뉴올리언스 감독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엘리스는 한 팔도 아니고 리버스의 두 팔을 휘감았다. 덕 노비츠키의 경우, 똑같은 상황에서 이미 전반에 반칙을 얻어내지 않았나. 그 날, 댈러스는 45개의 자유투를 던졌다. 심판을 비난할 마음은 없지만 막판 판정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영상 | 댈러스 vs 뉴올리언스 전에 나온 완벽한 오심(2분 7초부터)
http://watch.nba.com/nba/video/games/mavericks/2014/01/11/0021300549-nop-dal-recap.nba?tab=0

NBA 사무국은 경기 후 열리는 미디어 세션에서 심판 판정에 비난을 가하는 감독, 선수에게 벌금을 매긴다. 내야 하는 액수도 적지 않다. 원칙대로라면 자유투 3개를 얻었어야 할 리버스는 “이런 일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판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 벌금은 원치 않으니까. 그냥 농구장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심판들은 왜 경기 막판에 대담해지지 못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승부처에선 반칙을 지적하기가 쉽지 않다. 3쿼터까지 5번의 휘슬을 불었다면 4쿼터 막판 똑같은 상황에선 1~2개의 콜만 인정한다”며 과감함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선수들은 공격이 극도로 유리한 농구의 특성을 그 누구보다 적극 활용하고 있다. 날로 정밀함을 더해가는 각종 속임 동작에다 승부처에서 대담해지지 못하는 심판의 성향은 공격수들에게 매우 훌륭한 먹잇감이다. 경기 종료 직전, 오심이 범람하는 이유다. 

물론, 실수를 재빨리 인정하는 NBA의 신속함은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재경기가 이뤄지지 않는 한, 당한 팀만 억울할 따름이다. 눈앞에서 승리를 빼앗겼지만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니 말이다. 심판들에게 돌아가는 당장의 불이익도 없다. 인사고과에 어느 정도 악영향은 미치지만 그 수준은 미미한 편인 것으로 알려졌다. 

▲ 심판의 눈을 속이는 플랍(Flop)은 근절되어야 할 행위다


그런데 심판도 힘들다

NBA 베테랑 심판의 말에 따르면 농구에서 가장 힘든 판정은 차징/블록을 가리는 일이다. 순간적으로 수비자의 움직임을 체크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격수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RA(Restricted Area) 침범 여부까지 살펴야 한다. 공격수가 림으로 돌진하기 전, 두 발이 플로어에 붙어있는지, 무릎이나 팔꿈치로 수비자의 신체를 가격하지 않았는지 여부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 모든 이슈를 한 번에 파악해야 하다 보니 힘이 들 수밖에 없다. 

관계자들 역시 심판의 이런 고충을 이해하는 편이다. 많은 현지 해설자들이 차징/블록을 놓고 ‘50-50의 상황이다’라 칭하는데 이는 그만큼 판정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에 최근 NBA 사무국은 경기 종료 2분 전, 공격자를 보호하는 반원의 침범 여부를 살피는 것에서 범위를 늘려 차징/블록 파울의 판독 여부도 리플레이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기계의 힘을 빌려서라도 정확한 판정을 내리고자 하는 NBA의 의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심판만 잘해선 곤란하다. 감독들도 오심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행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의 투지를 일깨우기 위해 일부러 심판을 타겟으로 삼는 몇몇 NBA 감독들이 있다. 딱히 이상한 판정이 아닌데도 정장 상의를 벗어던지며 심판을 향해 요란한 삿대질 쇼를 벌인다. 

심판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해 좋은 판정을 끌어내기 위해서인데 이는 감독의 지위를 악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판도 사람이다. 욕설, 삿대질, 반말을 가하는 감독들에게 더 많은 프레스를 느낄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나긋나긋한 감독들은 이런 어드밴티지를 누리지 못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오심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선수도 마찬가지. 어떻게든 눈을 속여 가며 비겁한 플레이를 펼치기보다는 정당한 동작으로 심판의 오심 빈도를 줄이는데 일조할 수 있다. 선수들은 평생 농구만 해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심판을 속일 수 있다. 여기에 할리우드 액션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에 반해 심판들이 코트 위에서 체크해야 할 사항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농구 전문가가 틈만 나면 상대를 속이니 심판도 힘들 수밖에 없다. NBA 사무국은 2013년부터 할리우드 액션에 대한 강한 제제를 가해왔다. 하지만 완벽하게 철퇴를 내리진 못하고 있다. 플랍에 능하거나 교묘한 스텝으로 4발 이상을 걷는 일부 선수들의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종종 지나친 권위의식이 경기를 망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앞서 언급한 댈러스와 뉴올리언스 경기에서 엘리스의 반칙을 지적하지 않은 토니 브라더스 심판은 2년차에 불과했던 리버스의 항의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 벤치에서 웃었다는 이유로 팀 던컨을 퇴장 조치한 조 크로포드의 예도 존재한다. 결국, 크로포드는 NBA 사무국으로부터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아야 했다. 

특정 팀이나 감독과의 악연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심판들도 있다. ‘미소천사’ 던컨을 경기장 바깥으로 보내버린 조 크로포드-샌안토니오 스퍼스, 댄 크로포드-댈러스 매버릭스는 NBA 관계자들도 인정하는 앙숙들이다. 30년째 NBA 코트를 누비고 있는 데릭 스테포드는 팻 라일리가 감독으로 활동하던 시절, 몇 분간이나 서슬 퍼런 설전을 벌였고 보스턴 셀틱스 팬들은 빌 케네디 심판을 대놓고 싫어한다. 

그런 면에서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했던 딕 바베타 심판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그라고 해서 실수가 없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선수, 팀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가장 큰 원동력은 소통이었다. 고집, 권위 대신 책임감, 프로 정신을 내세워 감독과 선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39년이란 긴 세월 동안 거친 NBA 코트를 누빌 수 있었던 이유다. 

“매일 아침 몇 킬로미터씩 조깅을 했습니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죠.” 소통 외에 바베타 스스로는 39년 간 NBA 심판으로 활약할 수 있는 최대 요인을 ‘체력’으로 꼽았다. 실제, 승부처에서 체력 부족에 따른 집중력 난조로 오심이 잦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 NBA 관계자는 “전반에만 해도 별 탈 없었던 심판의 경기운영이 후반으로 갈수록 엉망이 되어가는 경우가 있다. 에너지 부족이 그 이유 가운데 하나”라 지적했다.  

사무국도 쓸 데 없는 개입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 플레이오프 시리즈 전적, 경기 수, 관중 수를 결정하는 건 게임 그 자체이지 사무국의 역할이 아니다. 1쿼터 시작부터 경기 종료 이후에도 온갖 논란이 끊이질 않았던 2017 NBA 파이널 4차전 같은 경기는 팬들의 원성만 살 뿐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심판도 사람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진부한 말이다. 하지만 결코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농구가 주는 참맛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농구판’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사무국을 필두로 심판, 감독, 선수가 모두 힘을 합칠 때 팬들은 비로소 농구 코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플레이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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