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경(가운데)과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 수원체육관,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솔직히 1, 2주차 경기 때 볼이 엉망으로 올라올 때는 한 대 때리고 싶었어요. 그러나 스스로 많이 이겨 내려고 노력하는 점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한국 여자 배구는 리베로와 세터 포지션이 세대교체를 하고 있다. 공격수는 젊은 선수로 자주 바뀌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터와 리베로는 베테랑들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

야전 사령관인 세터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다. 경기 운영을 이끌어 가고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공격수가 많아도 이들을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 세터가 없으면 강팀이 될 수 없다.

지난 10년간 한국 여자 배구를 책임진 야전 사령관은 김사니(36)였다. 2016~2017 시즌을 마친 김사니는 코트를 떠났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국을 이끈 이효희(36, 한국도로공사)는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해인 2020년이 되면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된다.

이런 점을 볼 때 세터의 세대교체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의 장점은 2012년 런던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경험한 김연경(29, 중국 상하이) 양효진(28, 현대건설) 김해란(33, 흥국생명) 김희진(26, IBK기업은행) 등이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박정아(24, 한국도로공사)와 이번 그랑프리에서 선전한 김미연(24, IBK기업은행) 황민경(27, 현대건설) 등 공격수들이 김연경을 받쳐 주는 점도 고무적이다.

한국의 아킬레스건은 세터다. 3년 뒤 올림픽을 앞두고 새롭게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세터의 짐은 매우 무겁다. 김사니와 이숙자(37) 그리고 이효희의 뒤를 이어 대표 팀 주전 세터로 나선 이는 염혜선(26, IBK기업은행)이다.

▲ 그랑프리 카자흐스탄과 경기에서 서브를 넣고 있는 염혜선 ⓒ 수원체육관, 곽혜미 기자

염혜선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백업 세터로 뛰었다. 큰 무대를 경험하며 나름대로 경험을 쌓은 그는 올해부터 주전으로 나섰다. 그랑프리 1주차 경기에서 염혜선과 공격수들의 호흡은 불안했다. 특히 세계 최고의 윙 스파이커로 불리는 김연경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김연경을 비롯한 공격수들과 염혜선의 호흡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21일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국제배구연맹(FIVB) 그랑프리 여자 배구 대회 2그룹 예선 라운드 카자흐스탄과 경기에서 한국은 세트스코어 3-0(25-12 25-14 25-17)으로 완승했다.

이 경기에서 염혜선은 10득점을 기록했다. 8개의 서브 에이스를 꽂아 넣은 그는 세터로는 드물게 두 자릿수 점수를 뽑았다. 아직 불안한 면을 벗어 내지 못했지만 공격수들과 호흡도 발전했다. 김연경(10점)은 물론 김희진(10점)과 박정아는 9점을 기록했고 김수지는 8점을 올렸다.

경기를 마친 염혜선은 "서브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목적타로 때렸는데 잘 들어간 것 같다"며 "이렇게 많은 득점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훈련 때 가장 집중하는 점은 공격수와 세터의 호흡이다. 홍성진 여자 대표 팀 감독은 "이번 경기에서 잘한 것은 선수들의 하려는 의욕이 매우 높았다는 점이다"고 칭찬했다. 홍 감독은 문제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아직 호흡이 엇박자가 난 점이 있는데 이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연경은 "세터가 세대교체 과정이라 (염)혜선이가 많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혜선이는 어린 나이가 아닌데 새로운 것을 다시 배우려다 보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이 노력하는 점을 보면 대단하다"며 격려했다.

평소 엄한 주장으로 알려진 그는 쓴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김연경은 "솔직히 1, 2주차 경기를 할 때는 한 대 때리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며 웃으며 말했다. 그는 "힘들지만 혜선이는 이런 점을 많이 이겨 내려고 하고 있다.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지적한다"고 덧붙였다.

막중한 임무를 어깨에 진 염혜선은 "앞으로 고생할 일이 더 많다. 안 되더라도 끌고 나가야 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 김연경 ⓒ 수원체육관, 곽혜미 기자

이번 대표 팀은 3년 뒤 도쿄 올림픽까지 팀 전력을 100% 끌어올릴 계획을 갖고 있다. 홍 감독은 "올해 팀 전력을 30% 끌어올리고 내년도 30% 그리고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100% 이상 완성하려는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올림픽에 맞춰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팀 전력을 완성하겠다는 것이 홍 감독의 목표다.

세터와 공격수들의 호흡은 한국의 보완 요소 가운데 매우 중요하다. 수원에서 열리는 그랑프리에서 한국은 3천여 명이 넘는 관중들의 뜨거운 응원을 받았다. 홈 팬들의 환호에 힘을 얻은 한국은 카자흐스탄 전에서 좋은 경기력으로 보답했다.

올해 한국의 여정은 그랑프리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 달에는 필리핀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또한 그랜드 챔피언십과 가장 중요한 세계선수권대회 예선도 기다리고 있다.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세터들의 큰 무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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