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FIVB 그랑프리 여자 배구 대회 콜롬비아와 경기에서 득점한 뒤 환호하는 김연경(가운데)과 양효진(오른쪽) ⓒ FIVB

[스포티비뉴스=수원, 조영준 기자] 최근 신조어 가운데 '브로맨스(bromance)'가 유행이다. 남자들의 진한 우정과 화합을 뜻한다. 거친 몸싸움과 구슬땀이 흘러내리는 스포츠 현장에서는 브로맨스가 자주 나타난다.

그러면 여자 선수들의 단결과 우정을 뜻하는 신조어는 있을까. 최근 소셜네트워크에서는 멋지고 개성 넘치는 언니들의 조합을 '시스맨스(sismance : sister + romance)라고 부른다. 21일과 22일 수원체육관을 아이돌 콘서트장으로 만든 여자 배구 대표 팀에도 시스맨스를 찾을 수 있다.

'배구 여제' 김연경(29, 중국 상하이)은 대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공격과 수비, 리시브 그리고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김연경은 한국 여자 배구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 호남정유(현 GS칼텍스)가 국내 리그를 휩쓸었다. 호남정유 선수들은 태극 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서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끈질긴 수비와 탄탄한 조직력으로 뭉친 한국은 배구 강국들이 두려워한 팀이었다. 그러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을 끝으로 한국 여자 배구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전력이 과거와 비교해 떨어졌다. 선수들의 평균 키는 커졌지만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조직력 배구가 실종됐다. 이런 현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로 이어졌다.

그러나 김연경이라는 걸출한 선수가 등장하며 한국 여자 배구는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 갔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4강에 올랐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8강에 진출했다. 세계적인 올라운드 플레이어인 김연경의 존재감은 침체에 빠진 한국 여자 배구를 부활시켰다.

김연경의 존재감은 매우 크지만 배구는 혼자서 할 수 없는 종목이다. 런던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얻은 성적표는 베테랑들과 젊은 선수들이 의기투합해 이룬 값진 결과물이다. 김연경 옆에는 늘 양효진(28, 현대건설)이 있었다. 국제 대회에 꾸준하게 출전하며 기량이 향상된 그는 김연경처럼 대표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됐다.

▲ 콜롬비아와 경기에서 대화를 나누는 김연경(왼쪽)과 양효진 ⓒ FIVB

런던에서 리우데자네이루까지 한솥밥을 먹은 '시스맨스'

김연경과 양효진은 런던 올림픽과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함께했다. 두 번의 올림픽에서 메달에 도전했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런던 올림픽 준결승전에서는 '숙적' 일본에 무릎을 꿇으며 통한의 눈물을 쏟았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8강전에서는 '장신 군단' 네덜란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두 번의 좌절이 있었지만 김연경과 양효진의 꿈은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어쩌면 마지막 올림픽이 될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2017년 국제배구연맹(FIVB) 그랑프리 여자 배구 대회는 도쿄 올림픽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김연경은 터키와 유럽에서 기나긴 시즌을 보낸 뒤 대표 팀에 합류했다. 양효진은 국내 V리그 일정을 마친 뒤 풀리지 않은 피로를 털어 내며 진천선수촌에 입촌했다.

대표 팀은 런던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경험한 선수들이 남아 있다. 또한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정에 참여했던 선수들도 다시 태극 마크를 달았다. 조직력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표 팀은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세터와 리베로가 세대교체 과정이다.

그랑프리 1, 2주차 경기에서 대표 팀의 문제점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새로운 세터인 염혜선(26, IBK기업은행)과 이소라(30, 한국도로공사)는 아직 공격수들과 호흡에서 불안하다. 1주차 경기에서 김연경은 토스 불안으로 호쾌한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나 수원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3주차 경기에서는 한층 발전된 호흡을 보이며 홈 관중들의 응원에 보답했다.

김연경은 "(염)혜선이가 아닌 다른 세터가 들어왔어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한다. 혜선이는 발전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결선에서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며 염혜선을 격려했다. 3년 뒤 올림픽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런던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문제점은 있었다. 김연경이 아무리 잘해도 홀로 대표 팀을 이끌 수는 없다. 런던 올림픽 전부터 함께했던 동료들이 있기에 김연경은 짐을 덜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오랫동안 함께 뛴 양효진의 존재는 특별하다. 태극 마크를 단 지 10년이 된 양효진은 "(김)연경 언니 후배들 가운데 내가 유일하게 의견을 받아치는 것 같다"며 웃으며 말했다. 평소 후배들에게 엄격한 선배인 김연경은 "가끔 막말도 했는데 상처 받은 후배들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양효진은 김연경과 어린 후배들의 소통을 연결하는 가교 노릇도 한다. 그는 "어린 후배들은 연경 언니를 어려워하는데 아무래도 나이 차가 있어서 그렇다. 난 언니와 거의 10년째 가까이 지내고 있는데 편하고 좋은 선후배 사이다"고 말했다.

22일 열린 콜롬비아와 경기에서 김연경은 18점, 양효진은 13점을 기록했다. 31점을 합작한 두 선수는 늘 대표 팀의 득점을 책임진다. 김연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점수를 올리고 있는 양효진은 "후배들이 국내 리그뿐만이 아니라 국제 대회에도 자주 출전해 성장할 기회를 얻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 2017년 FIVB 그랑프리 여자 배구 대회 콜롬비아와 경기를 마친 뒤 승리의 포즈를 취한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 FIVB

그랑프리 2그룹 우승은 물론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해피 엔딩을 꿈꾸다

대표 팀의 장점은 날개 공격과 수비, 리시브를 책임지는 김연경은 물론 붙박이 주전 미들 블로커 양효진이 있다는 점이다. 양효진의 활약은 김연경처럼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뛰어난 블로킹 감각을 지닌 양효진이 중앙에 있을 때 대표 팀 전력은 탄탄해진다.

양효진은 미들 블로커 임무는 물론 김연경 다음으로 많은 점수를 올리는 일까지 해내고 있다. 두 선수의 조화는 대표 팀을 굳건하게 받쳐 주는 기둥과 같다. 여기에 김수지(30, IBK기업은행)와 베테랑 리베로 김해란(33, 흥국생명)이 함께하면서 한국은 그랑프리 2그룹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국은 12명으로 어렵게 그랑프리를 치르고 있다. 적은 인원으로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많은 경기를 치르다 보니 체력이 큰 걱정거리다.

김연경은 "우리는 12명이 뛰고 있다. 유럽과 한국 다시 유럽으로 오가는 힘든 일정을 해내고 있는데 이런 점이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양효진은 "결선에서 중요한 것은 체력이라고 생각한다. 컨디션만 회복하면 어떤 팀과 붙어도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카자흐스탄, 콜롬비아와 경기에는 많은 관중이 대표 팀을 응원했다. 22일 콜롬비아전은 물론 23일 폴란드와 경기도 매진됐다. 4,500여 명 팬들의 성원은 그냥 얻은 것이 아니다. 김연경이라는 빼어난 스타의 등장에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여자 배구 선수들이 펼친 선전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특별한 지원 없이 세 번의 올림픽에 도전해 메달의 꿈을 이루려는 이들의 '시스맨스'는 가볍지 않다. 이번 그랑프리 흥행에 만족하지 않고 3년 뒤 올림픽을 대비한 체계적인 대표 팀 전력 강화 시스템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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