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그랑프리 폴란드와 경기에서 득점을 올린 뒤 기뻐하는 김연경(가운데)과 염혜선(왼쪽) 양효진 ⓒ FIVB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수원 경기에 많은 팬이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수들이 스스로 뭘 해야 하는 지를 알고 있어요. 결선 라운드에 올라간 상황에서 이런 점이 자리 잡았습니다. 섬세한 부분, 부드러운 연결과 서브, 그리고 리시브에 중점을 두고 보완하겠습니다."

- 홍성진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감독

'배구 여제' 김연경(29, 중국 상하이)과 배구 대표 팀 여전사들이 '수원 블록버스터'를 완성했다. 대표 팀은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수원체육관에서 국제배구연맹(FIVB) 그랑프리 여자 배구 대회 2그룹 3주차 경기를 치렀다. 사흘 내내 수원체육관은 김연경과 여자 배구 대표 팀을 응원하려는 팬들로 인산인해가 됐다.

첫날인 21일 카자흐스탄과 경기는 오후 4시에 열렸다.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수원체육관은 3천여 명이 넘는 팬들이 몰렸다. 김연경은 "평일 오후라 많이 안 오실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오셔서 놀랐고 힘도 났다"고 감탄했다. 주말에 열린 콜롬비아 전과 폴란드 전은 매진을 기록했다. 최대 수용이 인원이 5000명인 수원체육관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일부 관중들은 일어서서 경기를 지켜봤고 환호성은 체육관 천장을 찌를 정도였다.

여자 배구 경기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열기였다. 김연경과 대표 팀은 이런 응원을 거저 얻지 않았다. 이들은 2012년 런던 올림픽과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인상 깊은 경기를 펼쳤다. 특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김연경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 최고의 스타가 몸담고 있는 대표 팀을 향한 관심도 동시에 올라갔다.

▲ 2017년 그랑프리 폴란드와 경기에서 승리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는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 FIVB

김연경의 호쾌한 경기력은 물론 다른 선수들의 선전도 흥행 요소

김연경은 자타공인 세계적인 선수다. 배구 강국인 미국, 중국, 세르비아, 러시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선수들도 김연경처럼 공격과 수비 그리고 리시브와 리더십까지 모두 갖춘 선수는 드물다. 이런 점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지난 2016~2017 시즌 터키 리그를 통해 나타났다. 김연경이라는 선수가 팀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는 이미 여러 차례 나타났다.

김연경은 뛰어난 실력을 갖춘 것은 물론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까지 갖췄다. 승부 근성이 강한 그는 올림픽 경기 도중 욕설과 비속어를 거침없이 내뱉었다. 이런 점은 혐오감을 줄 수 있지만 오히려 대중들에게 호감을 줬다. 경기에 집중하는 승리욕은 물론 선수들을 이끌고 다독이는 따뜻한 면까지 지닌 김연경은 국민적인 스포츠 스타로 떠올랐다.

김연경의 팬클럽인 '연경 홀릭' 멤버 대부분은 여성이다. 과거 10~20대 여성들은 멋진 남자 스포츠 선수에 열광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걸출한 실력을 갖춘 여자 선수에게 열광하는 '걸크러시' 시대가 도래했다.

수많은 팬은 경기가 끝난 뒤 버스에 올라타려는 김연경을 보기 위해 더운 날씨 속에서도 그들의 '스타'를 기다렸다. 김연경은 팬들의 성원에 힘을 얻은 듯 수원에서 열린 3연전에서 맹활약했다. 카자흐스탄과 경기에서는 10점을 올렸고 콜롬비아 전에서는 18점, 그리고 폴란드와 마지막 예선 라운드 경기에서는 17점을 기록했다.

김연경은 "선수들이 잘해줬다. (폴란드 전은) 쉴 수도 있는 경기였지만 많은 팬 분들이 직접 와주셨다. 덕분에 힘이 나서 경기를 잘 풀어갈 수 있었다. 결선에서도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여드리겠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과거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김연경 원맨 팀'으로 여겨졌다. 그만큼 김연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그러나 수원 시리즈에서 3연승한 대표 팀은 달랐다. 양효진(28, 현대건설)과 김수지(30) 김희진(26, 이상 IBK기업은행) 박정아(24, 한국도로공사) 황민경(27, 현대건설) 등은 매 경기 고르게 득점을 올렸다.

카자흐스탄과 경기에서는 김연경, 김희진 그리고 세터 염혜선(26, IBK기업은행)이 모두 똑같이 10점을 올렸다. 콜롬비아 전에서는 김연경이 18점, 양효진이 13점, 박정아가 11점을 기록했다. 폴란드와 경기에서는 김연경이 17점, 양효진이 11점, 김희진이 10점을 올렸다. 3경기에서 10점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세 명이나 됐다.

홍성진(54) 여자 배구 대표 팀 감독은 "이제는 모든 선수가 해결사로 나서고 있다"며 고른 공격 분포를 높게 평가했다. 김연경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대표 팀은 이번 수원 시리즈에서 끈끈한 조직력을 보여줬다. 양효진은 "이런 응원은 처음 경험하는 것 같다. (김)연경 언니의 효과가 컸다"고 말했다.

▲ 2017년 그랑프리 폴란드와 경기에서 승리한 뒤 관중의 환호에 답례하는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 FIVB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닌, 네버 엔딩 스토리가 되려면?

1, 2주차 경기와 비교해 대표 팀의 전력은 한층 발전했다. 이번 그랑프리가 시작되기 전 가장 우려했던 점은 세터 문제였다. 현재 대표 팀은 야전 사령관인 세터가 세대교체 중이다. 1, 2주차 경기에서 염혜선과 공격수들의 호흡은 제대로 맞지 않았다. 수원 시리즈에서도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1, 2주차와 비교해 어느 정도 안정됐다.

가장 아쉬운 점은 12명의 인원으로 그랑프리 일정을 치르는 점이다. 그랑프리를 앞두고 젊은 공격수인 강소휘(20)와 이소영(23, 이상 GS칼텍스) 그리고 이재영(21, 흥국생명)이 부상으로 빠졌다. 그랑프리는 국제 대회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다. 배구 강국들도 승패에 큰 영향이 없는 경기를 과감하게 젊은 선수들을 내보낸다.

그러나 교체 멤버 여유가 없는 한국은 고정된 주전 선수들이 대부분 경기를 책임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가장 큰 고민거리는 '체력'이다. 양효진은 "결선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체력 같다. 컨디션만 좋으면 못할 것이 없다"며 우려했다. 김연경도 "유럽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힘든 일정을 치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체력이 큰 문제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엷은 선수층은 국제 대회에서 여실히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2군 제도는 배구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선수들의 체력을 조절해주고 유망주들에게 국제 대회 경험을 주려면 2군 제도의 도입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2군 제도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국 여자 배구의 밝은 앞날은 장담할 수 없다.

양효진은 "국내 대회에서만 뛰면 발전이 덜 하다. 국제 대회 경험도 많이 쌓아야 발전할 수 있다. 2군 제도 등 시스템이 완성되면 어린 후배들도 국제 대회 경험을 쌓고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1그룹에 속한 '숙적' 일본은 최근 배구 강국인 세르비아와 러시아를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물리쳤다. 세르비아는 주전 선수 몇몇이 빠졌지만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강팀이다. 일본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경기력으로 대어를 낚았다.

기무라 사오리(31)가 은퇴한 일본도 세대교체 중이다. 그러나 일본이 지속해서 국제 대회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은 풍부한 선수층과 체계적인 시스템 때문이다. 새롭게 주전이 된 선수들은 이미 대표 팀 상비군 시절부터 국제 대회에서 뛰며 기량을 닦았다.

미래를 내다보며 노력한 과정은 좋은 결실로 이어진다. 한국 배구는 수원 흥행에 취해 한여름 밤의 꿈속에만 빠지면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3년 뒤 도쿄 올림픽 메달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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