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이 6월24일 한화전서 백투백 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를 돌며 헬멧을 누르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
[스포티비뉴스=정철우 기자]오늘은 요즘 유행에 편승해... '알'고보니 '쓸'모없었지만 여전히 '신'비한 '이'승엽 이야기다.

이승엽은 한국 프로야구 겸손의 아이콘이다. 홈런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단어에선 '겸손'이 매우 앞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홈런을 친 뒤에도 그의 겸손은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난 2015년 6월23일 사직 롯데전서 담장 밖을 훌쩍 넘기는 장외포를 쏘아올린 뒤 고개를 숙이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그 이유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당시 이승엽은 "별 뜻은 없었다. 다만 홈런 맞은 투수가 너무 기가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젊은 투수였던 만큼 기 죽지 않고 계속 자신있게 던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이승엽에게 홈런을 맞은 선수는 조현우였다. kt에서 이적한 유망주 투수였다. 이승엽은 자신의 기록과 팀의 승리 못지 않게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을 고민하는 선수다. 조현우 같은 선수들의 성장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이승엽의 고개 숙인 홈런은 수 차례에 걸쳐 화제가 된 바 있다. 주로 젊고 유망한 선수들에게 홈런을 쳤을 때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지난 26일 대구 NC전서는 좀 더 수상한(?) 모습이 포착됐다. 이승엽은 이날 15경기만에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그리고 또 한 번 고개를 숙이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 보인 건 그의 오른손 때문이었다. 그라운드를 돌던 이승엽은 몇 차례 헬멧을 손으로 누르는 모습을 보였다.

'고개 숙인 이승엽'을 처음 보도했던 기자로서 사명감(?)이 생겼다. '이번에도 저 동작의 의미를 알아보자'

경기가 끝난 뒤 이승엽에게 물었다. "왜 고개숙인 뒤 모자를 누른 것이었나요?"

잔뜩 기대를 하고 기다렸지만 그의 대답은 김이 빠지는 것이었다. "그냥요. 헬멧이 벗겨질 것 같아서요," 마치 허무 개그의 결론 같은 마무리였다. 어색하게 웃으며 전화를 끊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홈런 영상을 돌려보다 보니 이승엽이 또 한 번 헬멧을 누르고 달리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상대 투수는 한화의 유망주 이태양이었다. 만루포를 허용한 뒤 이승엽에게 백 투 백 홈런을 허용한 뒤였다. 이승엽은 역시 기가 죽지 않길 바라는 듯 고개를 숙이고 뛰었다. 그러다 헬멧을 누른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뛰는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조금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자. 고개를 숙이고 뛰면 헬멧 창에 맞바람이 아래서 위로 불며 헬멧이 올라가게 돼 있다. 고개 숙이고 뛰다보면 자연스럽게 헬멧이 벗겨질 수 있다. 원래 큰 헬멧을 쓰는 버나디나(KIA)와는 이유가 다르다. 그러고보니 26일 경기 홈런을 친 선수도 영건 장현식이었다. 헬멧 누르기 역시 이승엽의 후배 사랑과 겸손이 빚어낸 하나의 장면이었던 셈이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아쉬운 분들을 위해 애피소드 하나를 더 투척해 본다.

이승엽은 모든 후배들을 아낀다. 그 중에서도 구자욱은 꽤 앞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다. 삼성의 미래를 책임져 줘야 할 큰 인물이기 때문이다. 장비를 포함해 참 많은 것을 챙겨준다.

하지만 이승엽은 구자욱에게 좀처럼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전제 조건이 있다. "구자욱이 먼저 물어올 때만 내 의견을 말해준다"가 그것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겸손, 한 가지는 엄한 가르침이다.

이승엽은 "구자욱은 3할5푼에 가까운 타율을 두 번이나 친 선수다. 난 그런 타율을 기록해 보지 못했다. 나 보다 나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 내가 먼저 기술을 가르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승엽 다운 겸손한 이유다.

두 번째는 구자욱이 보다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스스로 느끼고 깨닫는 것이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 진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승엽은 "구자욱은 참 똑똑한 선수다. 타석에서 움직이는 걸 보면 머리가 잘 돌아가는 선수라는 걸 알 수 있다. 기술적인 조언도 빠르게 습득한다. 다만 자신이 느끼고 움직여야 한다. 가끔 보면 게으름을 피려 할 때가 있다.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그걸 이겨내고 모자람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진짜다. 내가 나설 때도 그럴 때라고 생각한다. 먼저 이야기하기 전에 구자욱이 필요한 걸 물어 오면 가르쳐주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던 그가 최근엔 먼저 나서는 일도 종종 나오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급한 마음에서다. 우리가 그를 보낼 시간은 그처럼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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