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2018 시즌 ISU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 프리스케이팅 경기를 펼치고 있는 김예림 ⓒ 연합뉴스 제공

[스포티비뉴스=목동, 조영준 기자] 지난해 1월 한국 피겨스케이팅에 큰 경사가 일어났다. 몇 년간 한 번 등장하기 어려운 특별한 인재가 동시에 세 명이나 나타났기 때문이다.

'피겨스케이팅 신동'으로 불리는 유영(13, 과천중)은 만 11살의 나이에 국내 최고 권위 대회인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다. 올 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데뷔를 앞둔 그는 트리플 악셀과 쿼드러플(4회전) 살코를 연습하고 있다. 다른 선수들과 비교되는 남다른 재능과 타고난 '끼'까지 갖춘 그는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선두 주자로 평가받았다.

임은수(14, 한강중)은 지난 1월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3월 ISU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를 차지했다. 비록 아쉽게 메달은 놓쳤지만 이 대회에서 180점을 넘으며(180.81) 자신의 가능성을 세계무대에 알렸다.

유영, 임은수가 각종 대회에서 성과를 낸 것과 비교해 김예림(14, 도장중)은 반걸음 뒤졌다. 그는 지난해 7월 열린 2016~2017 시즌 ISU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서 임은수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주니어 그랑프리에 처음 도전장을 던진 김예림은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지난해 8월 프랑스 생제르베에서 열린 ISU 주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김예림은 4위에 올랐다. 9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3차 대회에서는 개인 최고 점수인 165.89점으로 5위를 차지했다.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출전에 실패한 그는 지난 1월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 임은수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김예림은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1월 동계체전이 끝난 뒤 훈련 중 오른쪽 발가락 부상을 입으며 자신을 존재감을 알릴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부상은 2017~2018 시즌 준비에 차질이 있었다. 다른 유망주들보다 뒤늦게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또한 키도 부쩍 자라 '성장통'의 위기도 찾아왔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김예림의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지난 시즌 마무리가 아쉬웠던 김예림은 지도자인 이규현 코치와 새 프로그램 준비에 들어갔다. 자신의 장점을 살리고 지난 시즌 국제 대회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약점을 보완했다. 피겨스케이팅 전문가들에게 김예림은 매우 성실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언제나 꾸준하게 훈련하고 모든 일에 성실하게 임하는 점은 그의 장점이다.

한 피겨스케이팅 관계자는 "유영이 재능적인 면에서 뛰어나다면 김예림은 타고난 노력가"라고 평가했다. 김예림이 재능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유영과 임은수 그리고 김예림은 남다른 재능을 지닌 공통점이 있다. 문제는 타고난 재능을 뛰어난 기량으로 승화시키는 열정과 인내심이다. 지난 시즌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아픔을 겪은 김예림은 2017~2018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서 최종 승자가 됐다.

▲ 김예림의 성장에 큰 발판이 된 프로그램인 '돈데보이' ⓒ 곽혜미 기자

러시아 스케이터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기술 구성

김예림은 29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KB금융 피겨스케이팅 코리아 챌린지(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1차 선발전 및 2017~2018 ISU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 여자 싱글 주니어부에서 총점 193.08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임은수(174.17)와 점수 차는 무려 18.91점이다. 김예림과 임은수 그리고 유영이 지금까지 경쟁한 대회에서 이 정도로 큰 점수 차가 난 적은 없었다.

김예림의 프리스케이팅 프로토콜은 보면 매우 놀랍다. 주니어 수준을 넘는 기술 구성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다. 스텝시퀀스로 프로그램의 포문을 연 뒤 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으로 이어지는 점프와 다리를 놓는다. 첫 점프는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다. 이어 더블 악셀+트리플 토루프를 시도하고 트리플 루프를 뛴 뒤 플라잉 싯 스핀으로 한숨을 돌린다.

프로그램 후반부에는 4개의 점프가 배치됐다. 트리플 플립과 트리플 러츠+더블 토루프+더블 루프 그리고 트리플 살코와 더블 악셀을 뛴다. 그리고 레이백 스핀으로 프로그램을 마무리 짓는다. 점프를 프로그램 후반부로 몰아서 배치하는 점과 대부분 점프에 타노(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뛰는 점프)로 처리하는 점은 러시아 선수들이 많이 하는 방법이다.

현재 세계 여자 싱글은 시니어는 물론 주니어도 러시아 선수들이 점령하고 있다. 풍부한 선수 자원은 물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앞세운 러시아는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최강국이 됐다. 러시아 선수들의 공통점은 프로그램 후반부에서 몰아치는 '후폭풍'이다. 체력이 필요한 점프를 후반부에서 뛰면 가산점(GOE)가 주어진다. 프리스케이팅에서는 연기 시작 이후 2분 뒤부터 점프를 뛰면 1.1배의 가산점이 매겨진다.

이런 전략을 제대로 성공시키려면 안정된 점프 성공률은 물론 프로그램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는 체력이 필요하다.

김예림은 "점프를 후반부에 배치한 이유는 좀 더 가산점을 받기 위해서다"며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프의 완성도와 체력을 익히면서 점점 적응했다"고 밝혔다.

부상을 입은 뒤 김예림은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그는 "부상을 입은 뒤 힘든 운동은 되도록 피했다"고 말했다. 이어 "발에 무리가 가지 않는 복근 운동과 허리 운동을 집중적으로 했다. 이 과정이 체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힘든 과제를 끝까지 해내려면 강한 열정과 끈기가 필요하다. 김예림은 어린 시절 김연아(27)가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본 뒤 피겨스케이팅에 마음을 뺏겼다. 힘든 상황이 와도 피겨스케이팅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스케이팅이 매우 좋고 사람들 앞에서 경기하는 것을 누구보다 즐겼던 김예림의 열정은 힘든 운동도 이겨냈다.

▲ 김예림이 표현력 발전에 눈을 뜨게 한 새로운 도전, 조수미의 '나가거든' ⓒ 곽혜미 기자

불가능하지 않은 200점 돌파와 객관적인 문제점

김예림은 "김연아 이후 200점을 돌파하고 싶지 않은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그는 "솔직하게 그런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웃었다. 이어 "먼저 200점을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는 것이 우선이다. 기록은 그 다음에 세우겠다”고 말했다.

김예림은 주변인들은 그가 "14살의 어린 나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고 점잖은 소녀"라며 칭찬했다. 두 번째로 임하는 주니어 그랑프리에 대한 각오에 대해 그는 "지난 시즌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고 그때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점수와 등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번 선발전에서 김예림이 보여준 경기력과 가능성은 매우 놀라웠다. 한국 피겨스케이팅은 러시아 유망주 못지않은 기대주를 얻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김예림은 아직 주니어 국제 무대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절호의 기회인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를 경험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다. 동갑내기 경쟁자 임은수는 이 대회 4위에 오르며 자신의 존재를 국제 대회에서 어필했다. 반면 김예림은 올 시즌부터 착실하게 국제 대회에 출전해야 한다.

앞으로 국제 대회에 꾸준하게 출전해 자신의 가치를 알리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또한 시즌 막판까지 유지할 수 있는 체력과 부상 방지도 필요하다. 김예림은 지난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 1위에 오르며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마무리는 아쉬웠다.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성장에 밑거름이 될 경험을 한 김예림은 이번 대회에서 몇 단계 성장했다.

▲ 경쟁자이자 없어서는 안 될 동료인 김예림(왼쪽부터) 임은수, 유영 ⓒ 스포티비뉴스

김예림은 프리스케이팅에서 7개 점프를 중반부부터 뛰며 가산점을 챙겼고 3가지 스핀 가운데 체인지 콤비네이션 스핀과 레이벡 스핀에서는 최고 등급인 레벨4를 받았다. 약점인 프로그램 구성요소 점수(PCS)도 56.8점을 챙기며 출전 선수 가운데 1위에 올랐다.

김예림은 새 프로그램 곡을 받은 뒤 어떤 단계로 훈련했는지를 요목조목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프로그램에 점프가 있으니 점프 위주로 했고 어느 정도 완성되면 체력과 음악, 그리고 프로그램 연습을 했다. 그 다음은 작품 전체에 집중했고 이 단계가 지나면 표정 연기도 했는데 거울을 보면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이번 선발전 1위에 오른 김예림이 자신이 출전하고 싶은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를 가장 먼저 선택할 수 있다.

남다른 재능과 꾸준한 성실함 여기에 강한 정신력까지 지닌 김예림의 앞날은 분명 밝다. 그는 "부상으로 아직 준비가 덜 된 부분이 있다"며 "다가오는 새로운 시즌에는 좀 뒤에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예림은 30일 모든 경기 일정이 끝난 뒤 시상식에 참석한다. 그동안 2위에 오른 적이 많았던 그는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김연아의 축하를 받는다. 김예림은 "지난해에도 선발전에서 1위를 했는데 시상대에 올라가지는 않았다. 내일 실감이 날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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