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칸 오즈데미르는 떠오르는 신성 파이터다.

[스포티비뉴스=백상원 기자] 스위스는 '시계'로 유명하다. 하지만 스위스에서 날아온 한 파이터에게 '시계'는 필요 없을 것 같다. 시계를 쳐다보기엔 경기 시간이 너무 짧다.

떠오르는 신성 파이터 볼칸 오즈데미르(27, 스위스)는 지난달 30일(이하 한국 시간) 열린 UFC 214에서 지미 마누와를 42초 만에 펀치 KO로 이겼다. 그전에 싸운 미샤 서쿠노프 경기에선 훨씬 더 빨리 이겼다. 불과 28초 만에 펀치 KO승 했다.

오즈데미르는 마누와를 이기고 자신의 손목을 가리키는 독특한 세리머니를 했다. '시간이 없다'며 상대들을 순식간에 KO로 꺾었다. 결국 빠른 경기 시간과 독특한 세리머니로 인해 오즈데미르의 별명은 '시간 없음(No time)'이 됐다.

'No time' 오즈데미르는 터키인 아버지와 스위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킥복싱을 배웠고 프로 킥복싱에서 5전 전승을 거뒀다.

젊은 오즈데미르의 관심을 끄는 것은 종합격투기였다. 하지만 훌륭한 타격 실력에 비해 그라운드 실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자신이 배우고 있던 파이트무브아카데미를 나와 당시 UFC 파이터였던 티아고 타바레스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오즈데미르는 주짓수 블랙벨트 타바레스 밑에서 실력을 갈고닦았고 슈토 스위스에서 종합격투기 데뷔전을 치렀다. 파죽의 10연승을 거뒀다. 당시 글로벌MMA나 블리처리포트에서 선정한 기대주 명단에 오를 만큼 유망한 파이터가 됐다. 그런 오즈데미르의 잠재성을 알아본 벨라토르는 경기를 제안했다.

하지만 벨라토르에서 오즈데미르는 충격적인 첫 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는 2014년 4월 벨라토르 115에서 켈리 애넌드슨과 싸웠다. 애넌드슨은 올 아메리칸 출신의 레슬러 파이터. 상대는 이때까지 만나본 적이 없는 수준급 레슬링 실력으로 오즈데미르를 괴롭혔다. 결국 오즈데미르는 애넌드슨에게 2라운드 3분 19초 넥크랭크로 졌다. 오즈데미르는 "애넌드슨 경기에서 실수했다. 레슬링에서도 크게 밀렸다. 그러다 보니 타격전에서마저 많이 꼬였다. 완전히 말린 경기였다"고 회고했다.

▲ 볼칸 오즈데미르의 별명은 'No time'이다.

종합격투기 첫 패배 이후 오즈데미르는 잠시 방황했다. 타바레스 밑에서 나와 이곳저곳 다른 체육관들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 알리스타 오브레임을 만났다. 오브레임은 오즈데미르의 재능을 알아봤고 오즈데미르는 골든 글로리에서 오브레임과 같이 훈련하게 됐다. 이후 오브레임과 골든 글로리 사이에 불화가 생겼고 오브레임은 훈련하는 곳을 미국으로 옮겼다. 자연스럽게 오즈데미르도 같이 따라가게 됐다.

오브레임은 미국 체육관 블랙질리언스에서도 불화를 일으킨 반면 오즈데미르는 완벽히 적응했다. 오즈데미르는 명장 헨리 후프트의 조련을 받아 한 차원 더 강한 파이터가 됐다. 언제나 세계 최강이 되길 원했고 UFC 챔피언을 목표로 훈련했다. 그렇기에 지난해 4월 열린 WFCA 토너먼트 8강 경기를 이겼지만 UFC에 가고 싶어 재계약을 거절했다.

그러던 와중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UFC 파이트 나이트 104에 출전할 예정이었던 얀 블라코비츠가 부상을 당한 것. UFC는 급하게 대타를 찾았고 오즈데미르에게 출전 제안이 왔다. 대회가 2주 채 남지 않았지만 오즈데미르는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대체 출전한 데뷔전에서 당시 라이트헤비급 랭킹 6위이던 오빈스 생프루와 싸웠다. 하지만 오즈데미르는 큰 무대의 압박과 생프루라는 랭커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뛰어난 타격 실력을 내세워 과감하게 공격했고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점수를 땄다. 하지만 마지막 3라운드에서 위기가 찾아왔다. 준비 부족으로 체력 문제가 보였고 생프루의 강타를 얻어맞기 시작한 것. 하지만 이를 악물고 맷집과 근성으로 버텼다. 결과는 오즈데미르의 3라운드 종료 2-1 판정승.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언더독의 반란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오즈데미르의 승리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강한 선수와 더 싸워 검증이 필요하다고 봤다.

오즈데미르는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신성 미샤 서쿠노프와 싸웠다. 오즈데미르는 경기 전 인터뷰에서 "난 더 높은 랭킹의 선수를 원한다. 서쿠노프는 4연승을 달리고 있는 강한 선수다. 하지만 내가 그의 연승을 저지할 것이다. 1라운드 만에 KO로 이길 것"이라고 예언했다.

▲ 볼칸 오즈데미르는 미샤 서쿠노프를 가볍게 꺾었다.

경기 결과는 오즈데미르가 예언한 대로 됐다. 전진하는 서쿠노프를 옆으로 피하며 라이트펀치를 던졌고 타격을 맞은 서쿠노프가 맥없이 앞으로 쓰러진 것. 시작한 지 28초 만에 일어난 KO였다.

경기 후 오즈데미르는 "이번 승리는 운이 전혀 아니다. 지미 마누와를 원한다. 마누와는 라이트헤비급 최고의 타격가 중 한 명이기 때문에 그와 싸우고 싶다. 타이틀전으로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경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오즈데미르는 원하는 대로 UFC 214에서 지미 마누와와 싸우게 됐다. 사람들은 오즈데미르가 강하다고 인정했지만 여전히 마누와의 적수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오즈데미르는 "이번 경기도 인상적인 1라운드 KO로 이기겠다. 그래서 알렉산더 구스타프손의 타이틀 도전권을 가로챌 것이다"고 선언했다.

마누와도 한 주먹 하는 강타자였지만 오즈데미르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1라운드 클린치로 밀어붙인 마누와에게 오즈데미르는 펀치 연타를 집어 넣었다. 밀린 상태에다 매우 짧은 거리에서 날린 타격이었지만 마누와는 비틀거렸다. 피 냄새를 맡은 오즈데미르는 피니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따라가며 정확한 펀치를 날렸고 마누와는 뒤로 크게 쓰러졌다. 이 모든 것이 42초 만에 일어났다.

오즈데미르는 인상적인 데뷔전과 빠른 KO 2연승으로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난 시간이 없다. 타이틀전 하고 싶다"고 밝혔다.

인상적인 승리에 팀 동료 앤서니 존슨은 "오즈데미르는 체육관의 그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한다. 체육관에서 먹고 자고 살면서 끊임없이 훈련한다. 오즈데미르는 마누와를 정말 인상적이게 이겼다. 난 마누와를 2라운드 KO로 이겼지만 오즈데미르는 훨씬 더 빨리 이겼다. 이 친구는 나를 별로 대단하게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친구의 승리가 기쁘다. 오즈데미르는 타이틀 도전 기회를 받을 자격이 있다"며 극찬했다.

▲ 볼칸 오즈데미르는 3경기 만에 라이트헤비급 랭킹 3위 지미 마누와를 이겼다.

UFC 3연승을 달리고 있는 오즈데미르는 알렉산더 구스타프손과 챔피언 존 존스를 노리고 있다.

"구스타프손, 다음 타이틀 도전의 가치를 올려보자. 너와 나 두 선수 가운데 누가 진정한 유럽 '왕'인지 한 번 가려볼 필요가 있다. 내가 널 KO로 이기겠다"며 먼저 구스타프손을 도발했다.

이어 "존스가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곧 나에 대해 연구해야 할 것이다. 난 라이트헤비급의 새로운 피다. 아직도 내가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날 언더독 취급한다. 난 사람들을 계속 놀라게 만들겠다"고 자신했다.

오즈데미르는 말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했다. 2017년 UFC에 데뷔해 3연승 했고 라이트헤비급 랭킹 3위 선수를 손쉽게 KO로 이겼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기세를 보여 주고 있다.

오즈데미르의 매니저이자 절친한 친구 프레드릭 엔글런드는 "오즈데미르는 일상생활과 케이지 위에서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평상시에 그는 정말 평온하고 느긋한 친구다. 하지만 케이지 위에선 '화산'같이 폭발적으로 싸운다"고 평했다.

오즈데미르의 이름인 볼칸은 터키어로 '화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화산은 한 번 분출하면 지축을 흔들고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신성 오즈데미르는 막 태어나 분출하는 화산처럼 UFC 라이트헤비급의 지축을 뒤흔들고 있다.

과연 이 새로운 화산이 정체돼 있었던 라이트헤비급 타이틀 지각에 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까? 자신을 언더독이라고 평가하고 의심하던 사람들을 계속 놀라게 만들 수 있을까? 2017년에 폭발한 이 '젊은 화산'이 언제까지 계속 분출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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