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교덕 격투기 전문 기자] #1 클리츠코 은퇴

전 WBA IBF IBO 헤비급 챔피언 블라디미르 클리츠코(41, 우크라이나)가 링을 떠나기로 했다.

클리츠코는 지난 3일(이하 한국 시간) "내가 꿈꿔온 모든 걸 이뤘다. 이제 운동선수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앤서니 조슈아(27, 영국)에게 11라운드 2분 25초 만에 TKO패 한 경기가 은퇴전이 됐다. 오는 11월 12일 추진되던 조슈아와 재대결은 결국 성사되지 못한다.

클리츠코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복싱 슈퍼헤비급 금메달리스트다. 같은 해 11월 프로로 전향해 21년 동안 69전 64승 5패(53KO승) 전적을 쌓았다.

#2 미오치치의 도발

많은 선수와 팬들이 한 시대를 풍미한 헤비급 최강 복서의 퇴장을 아쉬워하는 가운데, UFC 헤비급 챔피언 스티페 미오치치(34, 미국)는 반색했다(?).

미오치치는 4일 트위터에서 "조슈아, 너 이제 스케줄이 '널널'하지? 핑곗거리가 없겠네. 나와 스텝을 밟아 보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클리츠코가 은퇴를 선언해 재대결이 무산됐으니, 이제 자신과 붙을 수 있지 않냐는 얘기였다.

미오치치는 플로이드 메이웨더와 코너 맥그리거의 복싱 경기가 추진될 때부터 조슈아와 복싱 경기를 바라 왔다. 종합격투기 챔피언인 자신과 복싱 챔피언 조슈아 가운데에서 세계 헤비급 최강을 가리자고 제안한 바 있다.

조슈아는 콧방귀를 뀌었다. 지난 6월 복싱 관련 인스타그램에 "미오치치가 메이웨더와 맥그리거의 경기 언더 카드로 조슈아와 경기를 요구했다"는 소식이 올라오자, 댓글에 "도대체 이 친구가 누구야?(Who the f○○k is that guy?)"라는 말을 남겼다.

조슈아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슈퍼헤비급 금메달리스트다. 프로 복싱 전적 19전 19승 19KO로 WBA IBF IBO 헤비급 챔피언이다. 아마추어 복싱 경험은 있지만 프로 경력은 없는 미오치치를 대 놓고 무시했다.

맥그리거가 제레미 스티븐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3 미오치치의 자기소개

미오치치는 "도대체 이 친구가 누구야?" 댓글에 발끈해 바로 답장을 보냈다. 트위터에서 "네가 말한 '이 친구'는 전 세계적으로 지구 최강의 남자라고 알려져 있어. 넌 영국에서조차 최강이 아니야"라고 받아쳤다.

하지만 더 이상 설전이 진행되지 않았다. 손바닥이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조슈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미오치치의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그는 현시점 '세계 종합격투기 헤비급'에서 가장 강한 남자다.

전적 17승 2패를 쌓았다. 최근 5연승 중이다. 마크 헌트·안드레이 알롭스키·파브리시오 베우둠·알리스타 오브레임·주니어 도스 산토스 등 쟁쟁한 강적들을 KO 또는 TKO로 꺾었다.

타이틀전에서 한 번만 더 이기면 UFC 역사상 최초로 3차 방어에 성공한 헤비급 챔피언으로 이름을 남긴다.

실력이 좋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 없다. 문제는 흥행성이다. 은퇴한 메이웨더를 다시 링으로 불러온 맥그리거만큼 지명도가 높지 못한 게 사실이다.

미오치치가 클리츠코의 은퇴에 맞춰 또 도발을 걸었지만, 조슈아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4 미오치치 대신 레스너

지난달 30일 UFC 214에서 다니엘 코미어에게 KO로 이기고 다시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존 존스(30, 미국)는 승리 후 '뜬금포'를 날렸다.

"브록 레스너, 40파운드 덜 나가는 상대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기분을 알고 싶어? 그럼 나와 옥타곤에서 만나자"고 소리쳤다.

레스너는 지난해 7월 UFC 200에 출전한 뒤 약물검사에 걸렸다. 지금은 WWE에서 파트타임으로 활동하고 있다.

왜 하필 레스너였을까? 헤비급에 도전할 생각이라면, 최강자 미오치치의 이름을 불렀어야 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존스는 미오치치의 가슴을 후벼파는 한마디를 남겼다.

"미오치치는 정말 강한 헤비급 선수지만, 레스너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진정한 '슈퍼 파이트'라고 보기 어렵다. 종합격투기 팬들은 기대하겠으나, 대중들은 관심이 없을 것이다."

일명 '머니 파이터'를 만들기엔 미오치치가 덜 유명하다는 뜻. 큰돈도 벌기 힘든데, 193cm로 자신과 키가 같고 압박 능력이 탁월한 올라운드 파이터와 굳이 붙을 이유가 없다는 의미기도 했다.

#5 오브레임보다 덜 유명해?

최근 미오치치의 3차 방어전 상대가 케인 벨라스케즈로 결정됐다는 소문이 돈다. 팀 동료 루크 락홀드는 3일 ESPN 팟캐스트 '5라운즈'에서 "벨라스케즈가 몇 개월 안에 돌아올 것이다. 복귀전은 타이틀전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나 미오치치 측은 이 소문을 부정하고 있다. 자신이 챔피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UFC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전까지 경기를 뛰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알리스타 오브레임(37, 네덜란드) 때문에 뿔이 났다.

미오치치는 승리 수당 없이 파이트머니만 60만 달러(약 6억 7,500만 원)를 받는다. 오브레임도 승리 수당이 없다. 그런데 파이트머니는 미오치치보다 20만 달러 많은 80만 달러(약 9억 원)다.

파이트머니를 협상할 때 실력은 물론이고 시장성, 영향력, 이름값 등이 고려되지만 미오치치는 자신에게 진 선수가 자신보다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6 "타이틀 도전권을 줘"

미오치치는 원래 과묵한 편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1월 UFC 195에서 안드레이 알롭스키를 1라운드 54초 만에 쓰러뜨리고 갑자기 두리번거렸다. 옥타곤 옆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데이나 화이트 대표를 찾은 미오치치는 철장을 흔들며 "내게 타이틀 도전권을 줘"라고 소리쳤다. 침까지 튀겼다. 맹수의 포효 같았다.

나중에 화이트 대표는 "날 향해 미친 듯 소리치는 그에게 어떻게 도전권을 주지 않을 수 있겠냐"며 웃었다. 그리고 4개월 뒤 미오치치는 챔피언이 됐다.

유명 선수를 도발하고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일명 '맥그리거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말을 아끼던 미오치치도 적응했다.

조슈아를 걸고넘어지고 UFC에 불만을 토로하는 미오치치의 움직임은 목표점이 상당히 명확해 보인다. 하루아침에 맥그리거가 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과적으로 자신의 몸값과 이름값을 키우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지금은 조슈아 또는 존스와 슈퍼 파이트의 명분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행보를 시간을 두고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케인 벨라스케즈, 프란시스 은가누, 데릭 루이스 등 랭커들을 꺾고 헤비급을 평정한 미래에는 조슈아의 마음을 움직이는 '빅 네임'이 돼 있을 것이다. 그는 그만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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