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경 ⓒ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단체 경기인 배구에서 팀 동료에 대한 믿음은 매우 크다. 선수들을 이끄는 주장은 팀원들이 실수하면 지적한다. 팀 전체를 지탱하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주장 김연경(29, 중국 상하이)은 올여름 내내 후배들을 독려했다. 평소 후배들에게 무서운 주장으로 소문난 김연경은 훈련 때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꾸짖는다. 그러나 공개적인 인터뷰에서는 후배들의 실수를 감싸며 "앞으로 많이 발전할 것"이라고 격려했다.

여자 배구 대표 팀은 6월부터 7월까지 4주간 국제배구연맹(FIVB) 그랑프리 여자 배구 대회 일정을 치렀다. 한국의 최대 약점은 세터 포지션에 집중됐고 새롭게 야전 사령관으로 나선 염혜선(26, IBK기업은행)은 비난의 표적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김연경은 "(염)혜선이가 적지 않은 나이에 주전 세터로 나섰는데 다른 선수가 들어왔어도 상황은 똑같았을 것"이라며 후배를 다독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특정 선수의 실명을 거론하며 이번 여름 내내 대표 팀에 합류하지 못한 점을 꼬집었다. 김연경은 7일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전, "이재영이 들어왔어야 했다. 고생하는 선수들만 고생한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 2017년 그랑프리 대회를 마친 뒤 인천국제공항에 귀국한 김연경(왼쪽)이 여자 배구 대표 팀을 대표해 오한남 대한배구협회장으로부터 금일봉을 받고 있다 ⓒ 한희재 기자

참고 참았던 김연경 마침내 '화산 폭발'

김연경은 지난 6년간 여자 배구 최고 무대인 터키 리그에서 뛰었다. 터키 리그는 국내 V리그보다 일정이 길고 유럽배구연맹(CEV) 챔피언스리그를 치르기 위해 유럽 여러 나라로 이동해야 한다.

빡빡한 일정에도 김연경은 대표 팀에 적극적으로 합류했다. 세계 최고 무대에서 모든 것을 이룬 그에게 남은 것은 올림픽 메달이다. 2012년 런던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갈망은 매우 뜨겁다. 그는 6년간 몸담았던 터키 페네르바체를 떠나 중국 상하이를 선택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대표 팀 일정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런던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지원의 문제는 금전적인 문제를 떠난 '시스템'이다. 김연경은 꾸준하게 "대표 팀이 소집되면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세터가 자주 바뀌고 선수들도 제대로 모이지 못한다"며 "팀의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못하다 보니 조직력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김연경은 터키 리그에 진출하기 전 일본 리그에서 2년간 뛰었다. 페네르바체에서 활약하던 시절 그는 "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한 유럽 리그를 치르기 위해 다니다 보면 일본에서 알고 지냈던 스태프를 만날 때가 있다. 정말 우리와는 다르게 세계 배구를 철저하게 공부하고 자료를 수집한다"며 부러워했다.

또한 2016~2017 시즌 팀 동료였던 눗사라 톰콤(33, 태국)은 김연경에게 큰 자극이 됐다. 김연경은 "태국 대표 팀은 주니어 팀부터 시니어 팀까지 체계적으로 돌아간다. 태국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의 라이벌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반면 한국은 5년 전인 런던 올림픽 때와 비교해 달라진 것이 없다. 국가 대표에서 은퇴한 한 선수는 "국제 대회에서 잘하고 싶은 선수들의 마음은 똑같다. 누가 일본에 지고 싶겠는가. 그런데 대표 팀이 돌아가는 현실을 보면 일본과 비교해 우리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김연경은 물론 런던 올림픽 때부터 함께 뛰었던 동료들은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는 9일 막을 올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최종 엔트리 14명을 채우지 못하자 김연경은 마침내 폭발했다. 그의 말대로 '고생하는 선수들만 고생하는' 현실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러시아와 경기에서 스파이크하고 있는 이재영 ⓒ gettyimages

중심이 되어야 할 협회의 불안정, 나침반 없이 가는 '도쿄 올림픽 항해'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과 태국은 14~16명의 엔트리로 이번 대회에 나선다. 선수층이 풍부한 중국은 2진을 내보낸다. 국제 대회는 단순히 성적을 떠나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경험을 쌓을 기회다. 그런데 한국은 기회를 얻어야 할 선수들이 제대로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다.

대표 팀에서 뛸 선수들을 소집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곳은 다름 아닌 협회다. 올해 협회는 새로운 협회장이 선출되면서 여러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남녀 대표 팀 선수들에게 격려금을 지급하고 자생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표 팀을 지원하기엔 여러모로 부족하다. 특히 최종 엔트리 14명을 채우지 못한 점은 선수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변화를 위해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중심이 서지 않은 협회와 미완성된 시스템으로 정작 상처를 받는 것은 선수들이다.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은 스포티비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홍성진 감독님과 (이)재영이를 다음 달 열리는 그랜드 챔피언십에 출전시키기로 얘기를 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일이 터져 안타깝다. 재영이는 대표 팀에 빨리 합류하고 싶어했다. 휴가를 반납하며 재활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영은 2016~2017 시즌 V리그 MVP다. 그는 김연경과 대각을 이룰 윙 스파이커(레프트) 임무를 해낼 몇 안 되는 선수다. 박 감독은 "(김)연경이도 오죽 답답했으면 그럴 말을 했겠는가"라며 "재영이는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제대로 훈련하지 못했다. 몸을 만든 뒤 대표 팀에 합류할 계획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오랫동안 대표 팀에서 책임감을 갖고 활약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연경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2012년과 지난해 뼈아픈 경험을 두 번이나 했기 때문이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못한' 경험을 세 번이나 반복할 수 없다. 최종 엔트리 14명을 채우는 일은 대표 팀에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3년 뒤 열리는 도쿄 올림픽을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에게 대표 팀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은 매우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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