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인천국제공항, 취재 조영준 기자, 영상 임창만 기자] 한 척의 배가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려면 위험한 암초(暗礁)를 피해야한다.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암초를 피하려면 앞날을 대비한 계획이 필요하다.

한국 여자 배구는 올해 국제배구연맹(FIVB) 그랑프리 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국제 대회는 대표 팀의 경쟁력과 선수 기량 발전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한해 치러지는 수많은 국제 대회에 출전할 선수들을 어떻게 조정하느냐다.

계획 없이 무리하게 항해를 이어가면 암초를 만날 가능성이 크다. 여자 배구 대표 팀은 올해 출전할 대회가 정해져 있었다. FIVB가 주관하는 그랑프리 대회는 출전이 필요했다. 한국은 최근 몇 년간 이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세계 최고 무대인 터키 리그에서 뛴 김연경(29, 중국 상하이)을 제외한 선수들은 국제 대회 경험을 하지 못했다. 또한 한국의 국제 대회 경쟁력도 떨어졌다. 이런 점을 극복하기 위해 그랑프리 출전은 시급했다.

아시아선수권대회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2019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시드권이 걸려 있었다. 도쿄 올림픽에 목적을 둔 한국에 아시아선수권대회의 무게감도 가볍지 않았다.

▲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김연경(왼쪽)과 김수지 ⓒ 인천국제공항, 조영준 기자

다음 달 일본에서 열리는 그랜드 챔피언 컵은 대륙별 챔피언들이 맞붙는 대회다. 한국은 그동안 초청 국가 자격으로 출전했다. 그랑프리와 아시아선수권대회와 비교해 그리 중요하지 않은 대회다. 다음 달 20일부터 24일까지 태국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은 올해 가장 중요한 대회다. 김연경은 지난 6월 충북 진천선수촌에 입촌할 때 "올해 국제 대회 가운데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 예선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은 그랑프리와 아시아선수권대회는 뛰고 그랜드 챔피언컵은 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 시즌 한국이 출전할 국제 대회는 총 4개였다. 이 대회에 같은 선수들을 계속 출전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선수 혹사' 논란의 근본 예방책은 각종 국제 대회에서 뛸 선수들의 운영안이었다.

그러나 대한배구협회는 암초를 피해갈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고생하는 선수들만 고생한다'고 외친 김연경의 말은 현실이 됐다. 40일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한국 여자 배구 대표 주전 선수들은 무려 19경기에 출전했다. 주전 미들블로커 양효진(28, 현대건설)은 허리 통증으로 코트에 쓰러졌다. 체력이 바닥이 난 한국은 태국에 힘도 써보지 못하며 0-3으로 완패했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기하기 위해 김연경은 총대를 멨다. 후배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대표 팀 선수 운영을 꼬집었다. 이 문제는 파문을 일으켰고 김연경은 물론 이재영(21, 흥국생명)까지 큰 상처를 받았다.

김연경과 이재영의 오해 풀기, 선수 운영에 대한 계획 있었다면 없었을 일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3위에 오른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18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팀의 대들보이자 주장인 김연경은 그랑프리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와는 달리 표정이 어두웠다. 그는 이번 대회가 열린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전 "고생하는 선수들만 고생한다. 이재영은 대표 팀에 들어왔어야 했다"는 말을 했다. 직설적이었지만 현 대표 팀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세계적인 선수인 김연경은 대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다. 이 정도의 위치에 있는 그는 한국 여자 배구의 발전을 위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의 부실한 운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과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서도 한국은 늘 부실한 정책으로 운영됐다. 올해 새로운 배구협회장과 임원이 교체된 대한배구협회는 자생력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대표 팀 선수 운영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최종 엔트리 14명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김연경은 불만을 드러냈고 후배의 실명을 거론했다.

이 사건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배구 팬들은 이재영과 소속 구단인 흥국생명을 향해 비난을 퍼부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난 김연경은 "그 선수(이재영)에 관해 얘기한 건 사실이나 그런 부분을 예로 들면서 (대표팀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했다"고 밝혔다. 이재영은 그랜드 챔피언 컵부터 대표 팀에 합류한다. 이번 일로 생긴 오해를 어떻게 풀 것이냐는 질문을 받은 김연경은 "풀고 말고를 떠나 그 선수를 비난한 것은 아니다. 이재영은 앞으로 한국 여자 배구를 이끌어 갈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고 말했다. 이어 "오해가 있다면 잘 풀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2016~2017 시즌 V리그 MVP를 수상한 이재영 ⓒ 곽혜미 기자

김연경은 대표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공격과 수비 리시브 여기에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을 생각하면 김연경이 없는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기둥 없는 건축물'과 비슷하다. 이 문제는 앞으로 한국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적으로 김연경에 대한 의존도는 매우 높다.

이런 점에서 이재영의 존재감은 한층 커진다. 공격 비중이 큰 김연경의 짐을 덜어줄 선수 가운데 한 명이 이재영이다. 그는 2016~2017 시즌 V리그에서 MVP를 수상했다. 김연경의 뒤를 받쳐줄 공격수가 부족한 현실에서 이재영의 존재감과 성장은 매우 절실하다.

결론적으로 김연경과 이재영은 대표 팀에서 모두 필요한 선수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이 풀 오해가 아니라 한국 배구의 시스템에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일본과 준우승한 태국은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이들은 한국과 달리 주니어 선수들을 시니어 대표 팀에 맞춰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선수들을 고르게 경기에 출전시켜도 팀 전력에 큰 차이가 없었다. 이렇다 보니 각 경기에 맞춰 선수들을 출전시켰고 체력과 부상 문제도 덜 수 있었다.

반면 나침반 없이 항해한 한국은 결국 암초를 만났다. 선수들은 무리한 일정에 체력은 바닥이 났다. 양효진(28, 현대건설)은 코트에 쓰러졌고 김연경은 작심한 듯 특정 선수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현재 시스템을 비판했다.

나침반이 있었다면 이런 암초를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선수 운영에 대한 틀이 없었던 한국은 결국 암초를 만나며 흔들렸다. 매번 변하지 않는 적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선수와 지도자 아닌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배구의 부실한 시스템

선수들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는 감독이다. 홍성진(53) 여자 배구 대표 팀 감독은 “선수들이 매우 지쳤다. 아시아선수권대회는 약체들도 있었기에 선수들을 고르게 기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랑프리는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치렀다. 그랑프리가 아시아선수권대회보다 두 배는 더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각 구단과 선수 차출 문제에 대해 그는 "선수를 준다 안 준다의 문제가 아니다"며 "각 구단도 부상 중인 선수가 있고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런 문제는 감독이나 구단 그리고 선수 가운데 누구를 겨냥할 수 없다. 넓은 시선으로 보면 '총체적 난국'인 한국 배구의 현실 때문이다. 기본적인 체계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해 다른 국가보다 먼저 도착지에 도착하려 했던 점이 문제였다. 태국과 일본처럼 탄탄한 시스템을 갖추려면 2군 체제와 장기적인 기획력이 요구된다. 선수층이 풍부한 중국은 이번 아시아선수권대회에 23세 이하 어린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대회 성적을 떠나 중국 배구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선수들에게 경험을 주기 위해서다.

유애자 SPOTV 배구해설 위원은 "우리 어린 선수들이 국제 대회 기회를 얻지 못할 때 일본과 태국은 물론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며 "한국과 차이점은 어린 선수들에게 국제 대회 경험을 줬다는 점이다. 이 선수들은 국제 대회에서 경험을 익히며 빠르게 성장했다. 우리도 미래를 대비해 어린 선수들을 육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마친 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 인천국제공항, 조영준 기자

한 국가의 배구 성장은 탄탄한 유소년 층에서 나온다. 한국은 2005년 프로가 출범됐고 어느덧 12년이 됐다. 이 정도 되면 지속해서 어린 유망주들이 등장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밑으로 내려갈수록 선수들이 없다. 정호영(17, 선명여고) 이외 눈에 쏙 들어오는 유망주가 없는 것이 한국 여자 배구의 현실이다.

이런 문제는 대표 팀 경쟁력은 물론 국내 프로배구의 발전에 큰 해가 된다. 탄탄한 선수층은 2군 제도와 같은 시스템에서 나올 수 있다. 그런데 유망주들이 고갈되고 있는 현실은 한국 여자 배구에 경종을 울린다.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 완성은 물론 유소년 배구 발전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다. 이런 계획과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번에 발생한 사태는 반복될 수 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행정은 나침반 없는 항해와 똑같다. 협회의 주먹구구식 대표 팀 운영에 피해를 본 것은 선수들이다. 대표 팀의 기둥 김연경은 사과했고 기대주 이재영은 눈물을 쏟았다. 

홍 감독은 "가장 중요한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에서는 선수 엔트리 14명을 다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초청 자격 국가로 출전하는 그랜드 챔피언 컵에서는 김연경을 비롯해 부상 중인 양효진도 뛰지 않는다. 

김희진(26, IBK기업은행) 박정아(24, 한국도로공사) 염혜선(26) 김미연(24, 이상 IBK기업은행)도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들 대신 이재영과 하혜진(21, 한국도로공사) 정시영(24, 흥국생명) 이고은(22, IBK기업은행) 최수빈(24, KGC인삼공사) 전새얀(21, 한국도로공사) 등이 새롭게 가세한다.

김수지(30, IBK기업은행)와 황민경(27, 현대건설) 이재은(30, KGC인삼공사) 한수지(28, KGC인삼공사) 김유리(26) 나현정(27, 이상 GS칼텍스) 김연견(24, 현대건설) 등은 그랜드 챔피언 컵에 그대로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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