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 고베 하계 유니버시아드 유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조형수 하형주 윤용발(왼쪽부터)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81년 루마니아 부크레슈티에서 열린 제11회 대회에서 한국은 레슬링 자유형 68kg급의 유인탁이 은메달을 차지했고 레슬링 자유형 48kg급 손갑도, 52kg급 김종규, 그레코로만형 52kg급 방대두가 각각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테니스 혼합복식의 전영대-김수옥 조가 동메달을 보태 86개국 4천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이 대회에서 종합 20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는 소련(금 40 은 36 동 33), 루마니아(금 30 은 17 동 20), 미국(금 29 은 18 동 9)이 1위~3위를 차지한 가운데 중국(금 10 은 8 동 3)이 4위에 올라 1980년대 세계 스포츠계의 판도 변화를 예고했다.

1983년 7월 캐나다 에드먼튼에서 열린 제12회 대회에 한국은 육상과, 수영, 체조, 남자 배구, 남자 농구 등 임원 25명 선수 56명 등 81명의 비교적 큰 규모의 선수단을 보냈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 열기가 서서히 고조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사이클 169km 도로경기 개인전에서 신대철의 동메달이 유일한 메달로 종합 순위 23위에 그쳤다. 남자 배구는 1979년 멕시코시티 대회 금메달 대회 이후 다시 한번 메달에 도전했으나 3위 결정전에서 이탈리아에 세트스코어 0-3으로 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1985년 고베에서 열린 제13회 대회는 한국으로서는 여러모로 신경이 쓰인 대회였다. 양대 대회를 앞두고 있었고 1967년 대회 이후 18년 만에 이웃나라에서 열리는 대회인데다 북한의 출전이 예고돼 있었다.

▲ 1991년 셰필드 하계 유니버시아드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는 1년 뒤 올림픽 챔피언이 된다. ⓒ대한체육회

한국은 그해 8월 24일부터 9월 4일까지 열린 이 대회에 당시 기준 역대 최다인 임원 41명과 선수 106명 등 147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유도 95kg급 하형주와 65kg급 윤용발, 78kg급 조형수가 금메달을 획득하고 86kg급 이현근이 동메달을 보태는 등 유도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고 육상 남자 200m 장재근 등 4개의 동메달을 보태 금메달 3개와 동메달 5개로 역대 최고인 종합 순위 12위를 차지했다.

북한은 유도에서 95kg 이상급 황재길 등이 금 2개의 금메달을 얻고 축구에서 우승하는 등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종합 순위 9위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는 소련이 금메달 44개와 은메달 21개, 동메달 19개로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했고 미국(금 22 은 21 동 13)과 쿠바(금 9 은 8 동 5)가 2위와 3위를 기록했다.

1987년 7월 8일부터 19일까지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제14회 대회에 한국은 임원 46명과 선수 122명 등 168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한국은 축구에서 은메달, 테니스 남자 복식에서 배남주-김재식 조가 동메달을 차지해 종합 28위를 차지했다.

1989년 서독 뒤스부르크에서 열린 제15회 대회는 육상과 농구, 펜싱, 조정 등 달랑 4개 종목이 열린 단촐한 대회였다. 한국은 임원 10명, 선수 18명을 파견했으나 여자 마라톤 김연구의 동메달이 유일한 메달이었다. 종합 순위는 공동 27위였다.

1991년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제16회 대회에서 한국은 1년 뒤 열릴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의 꿈을 부풀렸다. 또 10여년 뒤인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쓰게 되는 선수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해 7월 14일부터 25일까지 열린 이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4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3개로 종합 순위 11위에 올랐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월계관의 영광을 안게 되는 황영조는 7월 21일 셰필드 시내에서 벌어진 마라톤에서 대회 최고 기록인 2시간12분40초(종전 2시간14분33초)로 2위인 일본의 지쓰이겐지루(2시간14분29초)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4개월 전인 3월 열린 제62회 동아마라톤대회에서 처음으로 풀코스를 뛰어 2시간12분35초의 기록으로 3위에 올랐던 황영조는 2번째 풀코스 도전에서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 1991년 셰필드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금메달의 꿈을 이룬 축구 대표 선수들(빨간 유니폼) ⓒ대한체육회

조별 리그부터 승승장구한 축구는 준결승전에서 우루과이를 4-1로 크게 물리친 뒤 결승전에서 네덜란드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부차기에서 5-4로 이겨 1985년 고베 대회 은메달의 한을 풀었다. 1967년 도쿄 대회 여자 농구와 1979년 멕시코시티 대회 남자 배구에 이은 대회 3번째 단체 구기 종목 우승이었다. 축구 금메달을 이끈 주역이 홍명보였다.

여홍철은 체조 남자 뜀틀에서 9.781점을 얻으며 예상 밖의 금메달을 따 5년 뒤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여 1, 2, 3’의 고난도 기술로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을 마련했다. 테니스 남자 복식의 장의종-지승호 조, 여자 복식의 김일순-이정명 조가 각각 금메달을 추가했다.

여자 마라톤에 출전한 김연구는 2시간37분57의 기록으로 2위에 올랐다. 체조 철봉의 임군기와 테니스 여자 단식의 김일순 그리고 여자 하키는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중국(금 22 은 17 동 11)은 1위 미국(금 29 은 23 동 24), 3위 소련(금 15 은 15 동 21)과 3강을 이뤘고 북한(금 11 은 3 동 5)과 일본(금 5 은 15 동 8)이 각각 4위와 6위에 오르는 등 아시아 나라들이 강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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