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호는 1993년 제17회 하계 유니버시아드 야구 결승 쿠바와 경기에서 인상적인 투구를 펼쳐 메이저리그행 발판을 마련했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93년 7월 8일부터 18일까지 미국 버팔로에서 118개 나라 5천1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제17회 대회에서 한국은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4개로 종합 순위 13위에 그쳐 2년 전 셰필드 대회의 6위(금 5 은 1 동 3)에서 7단계이나 내려오는 다소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여자 창던지기의 이영선은 56m62로 기대하지 않았던 금메달을 차지했다. 유니버시아드대회의 효자 종목인 테니스에서는 남자 단식 신한철이 영국의 제프리 헌터를 세트스코어 3-1로 꺾고, 남자 복식 김남훈-공태희 조가 체코의 얄- 드보라세 조를 2-1로 물리치고 각각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금메달을 기대했던 김완기는 자신의 최고 기록(2시간9분25초)보다 많이 뒤지는 2시간15분35초로 2위로 골인했고 형재영은 2시간15분53초로 동메달을 차지했다.

야구와 축구는 은메달을 추가했고 배구와 테니스 남자 단식의 윤용일, 체조 평균대의 한나정은 동메달을 보탰다.

야구 팬들에게는 이 대회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1993년 아마추어 야구는 인기와 흥행에서 프로 야구에 크게 밀려났다. 그해 아마추어 야구는 세 차례 국제 대회를 치렀다.

출발은 좋지 않았다. 2월 호주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일본에 4-11로 크게 져 준우승을 거뒀다. 이어 출전한 대회는 6월과 7월 사이 열린 제11회 이탈리아 대륙간컵이 버팔로(뉴욕주)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였다. 대회 비중으로만 보면 대륙간컵이 훨씬 더 컸다. 그러나 대한야구협회는 유니버시아드 사상 처음으로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는 점을 고려해 유니버시아드에 1진을 파견했다.

국가 대표팀 1진 지휘봉은 최남수 고려대 감독이 잡았다. 박찬호, 위재영, 임선동, 조성민, 차명주(이상 투수), 최기문, 진갑용(이상 포수), 유지현, 홍원기, 허문회, 백재호, 박현승(이상 내야수), 박재홍, 심재학, 강혁, 강상수, 최경환(외야수) 등 뒷날 프로에서 활약하게 되는 선수들이 대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예선 리그에서 대만을 4-3, 캐나다를 12-4, 일본을 4-3, 이탈리아를 11-1로 눌렀으나 미국에 3-8, 쿠바에 5-10으로 져 4승 2패로 2위를 차지했다. 예선 리그 1위에 오른 쿠바와 다시 만난 결승에서 한국은 1-7로 져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쿠바는 2개 대학 연합 팀이었다.

이 대회 야구 예선 경기들은 버팔로 인근에 있는 나이아가라 래피즈 등 마이너리그 더블 A 또는 싱글 A 구장들에서 펼쳐졌다. 한양대 2학년 박찬호는 마이너리그 트리플 A 버팔로 바이슨스 홈인 파이롯 구장에서 열린 쿠바와 결승 5회 마운드에 올라 5이닝 동안 4안타만 내주며 3실점(2자책점)해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때 LA 다저스 짐 스토클, 뉴욕 양키스 딕 그로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윌리엄 클라크 등 메이저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의 관심은 박찬호의 성적이 아닌 투구 스피드였다. 백스톱 뒤에 설치한 스피드건에 찍힌 박찬호의 패스트볼 구속은 93∼95마일(약 149.7~152.9km)이었다. 동양에서 온 바짝 마른 투수가 빠른 공을 던지는 광경에 스카우트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박찬호의 패스트볼은 스카우트들에게 합격점을 받았다. 그러나 직구 외 구종에선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찬호는 당시 주력 변화구로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변화 각이 날카롭지 못했다. 컨트롤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박찬호에게 가장 먼저 접근한 건 다저스 짐 스토클 스카우트였다. 그는 한국 구단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박찬호를 스카우트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물어보는 등 다른 구단 스카우트들보다 한 발 앞서 움직였다. 그리고 그해 연말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행을 성사시켰다.

박찬호의 메이저리그행이 어느 정도 진전된 이 대회에서 주최국 미국은 금메달 31개, 은메달 23개, 동메달 19개로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했고 중국(금 17 은 6 동 5)과 캐나다(금 11 은 13 동 14)가 뒤를 이었다.

1995년 8월 22일부터 9월 3일까지 후쿠오카에서 162개국 5,700여명의 선수단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제18회 대회에서 한국은 기념비적인 성적을 올렸다.

유도에서 6개의 금메달을 휩쓴 것을 비롯해 수영 지상준, 체조 정진수, 테니스 남자 단식 윤용일, 남자 배구 등 5개 종목에서 10개의 금메달을 차지하고 은메달 7개와 동메달 10개를 더해 종합 순위 5위를 차지했다. 당시 기준 최고 성적이었다.

유도는 60kg급 김혁, 65kg급 정세훈(이상 남자), 61kg급 정성숙, 66kg급 조민선(이상 여자)이 금메달을 메쳤고 남녀 단체전에서 우승했다.

남자 배구는 결승전에서 접전 끝에 스페인을 세트스코어 3-1로 누르고 1979년 멕시코시티 대회 이후 16년 만에 정상에 섰다. 지상준은 남자 배영 200m에서 2분01초19로 터치 패드를 찍어 한국 수영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 규모 대회에서 우승했다.

정진수는 평행봉에서는 9.687로 금메달, 마루에서는 9.487점으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는 한국 선수끼리 맞붙어 윤용일이 이형택을 세트스코어 2-0으로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버팔로 대회에 이어 2연속 결승전에 오른 축구는 일본에 0-2로 져 은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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