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세계근대5종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정진화 ⓒ 대한근대5종연맹 제공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7일 아침, 글쓴이 눈길을 끈 스포츠 뉴스가 있었다.

정진화(28·LH)가 현지 시간 26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2017년 세계근대5종선수권대회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1,400점을 얻어 로베르트 카스자(헝가리·1,393점)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뉴스를 보면서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1979년 7월 19일 아침 신문을 펼쳐 든 스포츠 팬들은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국이 이런 종목에서도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가’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기사 내용은 김진호가 서베를린에서 열린 제30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30m·50m·60m·70m 그리고 단체전 등 전광왕을 차지했다는 것이었다. 모스크바 올림픽(1980년 7월 19일~8월 3일)을 불과 1년 앞뒀을 때이다.

유력한 올림픽 금메달 후보가 신데렐라처럼 나타난 것이다. 한국의 불참으로 모스크바 대회에서는 올림픽 양궁 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또 하나, 1981년 3월 30일 신문과 TV 스포츠 뉴스를 본 스포츠 팬들은 깜짝 놀랐다. 국내 매체 영국 특파원들과 AP통신 등 외신이 보도한 내용은 19살의 한국체육대학교 학생이 전통을 자랑하는 전영(全英)배드민턴선수권대회 여자 단식 결승에서 대회 2연속 우승자인 덴마크의 르네 캐팬을 세트스코어 2-0(11-1 11-2)으로 꺾고 우승했다는 것이었다.

세계 무대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아시아의 무명 선수가 권위의 전영 오픈에서 우승하자 전 세계 배드민턴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다. 이 선수가 황선애다. 황선애는 그해에 스웨덴 오픈과 일본 오픈에서도 금빛 스매싱을 했다.

양궁과 배드민턴은 김진호와 황선애가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전에도 알게 모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비 인기 종목이었기에 스포츠 팬들 관심을 받지 못했을 뿐. 근대5종도 그렇다.

근대5종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2004년 모스크바 대회에서 이춘헌이 은메달을 딴 적이 있고 여러 국제 대회에서도 나름대로 꾸준히 성적을 올렸다.

한국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정식 세부 종목은 아니지만 릴레이에서도 전웅태(한국체대)와 황우진(광주시청)이 남자 릴레이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2개로 여자부 개인전과 단체전, 혼성 릴레이를 남겨 놓은 가운데 종합 1위를 달리고 있다. 여자부에는 김선우 김은주(이상 한체대) 정민아(부산시체육회)가 출전하고 있다.

한국은 1949년 스톡홀름에서 제1회 대회가 열린 이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사상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한국은 직전 대회인 2016년 모스크바 대회까지 역대 대회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6개로 17위에 올라 있다. 헝가리(금 53 은 41 동 33)와 폴란드(34 16 21) 등 유럽세가 세계 무대를 휘젓고 있는 가운데 아시아 나라로는 중국(금 5 은 9 동 6)에 이어 2위다. 일본은 이번 대회 여자부 릴레이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첫 메달인 동메달을 땄다.

한국은 직전 대회인 2016년 모스크바 대회에서는 황우진 전웅태가 남자 릴레이에서, 2015년 베를린 대회에서는 이우진 전웅태 정진화가, 2012년 로마 대회에서는 홍진우 황우진 정진화가 남자 단체전에서 각각 금메달을 기록했다. 전웅태 황우진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연속 우승했다.

단체전에 이어 릴레이 그리고 개인전까지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에 오른 한국 근대5종의 목표는 이제 분명해졌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고 효자 종목이 되는 것이다.

글쓴이는 초보 스포츠 기자 시절 외웠던 두 가지 내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하나는 수영 개인혼영 순서인 ‘접배평자’인데 이는 무조건 암기했다. 접영~배영~평영~자유형으로 이어지는 레이스가 경영에서 가장 박진감이 넘친다는 선배 설명을 떠올리면서. 또 다른 하나는 근대5종의 세부 종목이다. 이건 머리를 좀 써서(?) 외웠다. “군인이 처음에는 총을 들고 싸우다(사격) 총알이 떨어져서 칼을 빼들고 싸웠고(펜싱), 칼을 떨어뜨리자 말을 타고 달아나다(승마) 말이 쓰러져서 벌판을 달리다가(육상·크로스컨트리) 강에 이르러 헤엄쳐(수영) 부대로 돌아왔다.” 이런 각본을 만들어서 암기했다. 근대5종은 글쓴이가 만든 엉성한 스토리에 나오는 종목으로 구성돼 있다.

근대5종은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12년 스톡홀름 대회 이후 경기 방식을 조금씩 바꾸면서 올림픽 종목으로 유지되고 있다.

근대5종은 승마에서 사실상 순위가 결정된다고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대회 주최 측에서 준비한 말을 제비뽑기를 거쳐 타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적진의 말을 훔쳐서 탄다는 의미가 있다. 앞선 종목들은 선수 개인 기량이 중요한데 근대5종 승마는 다른 승마 경기와 달리 처음 보는 말과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변수가 많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사격 종목에서 종전의 권총 대신 레이저 건을 사용했다. 2010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청소년 올림픽 때 처음 시도한 레이전 건이 경비 절감은 물론 안정성 확보로 많은 관중들이 볼 수 있고 종목을 널리 알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결론에 따른 것이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기존의 경기 순서가 일부 변경돼 수영부터 시작했다. 이어 펜싱 경기를 했는데 기존의 돌려 붙기가 아니고 경기 전날 치러진 돌려 붙기 결과에 따른 녹아웃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어서 승마 경기를 했다. 복합(육상+사격)에서는 3,200m를 달리면서 800m마다 5발씩, 모두 20발을 쐈다. 표적을 명중하지 못하면 최장 70초까지 시간 지체 페널티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 경기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한 경기장(데오도로 근대5종 파크)에서 열렸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런 경기 끝에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자인 정진화가 13위, 릴레이 우승자인 전웅태가 19위에 랭크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멕시코 선수가 금, 은, 동메달을 차지했다.

근대5종은 세부 종목이 무엇이냐 물음과 함께 또 하나의 질문이 따라붙는다. 근대5종(modern pentathlon)이니, "고대5종도 있냐"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피에르 쿠베르탱이 그의 저서에 남긴 말을 소개한다.

"근대5종 경기를 하는 사람은 경기에서 승리를 하든 못하든 우수한 만능 스포츠맨이다."

쿠베르탱은 고대 올림픽의 ‘펜타슬론(5개 종목)’ 경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1912년 스톡홀름 대회 때 자신이 고안한 근대5종 경기를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이 대회에서는 개최국 스웨덴 선수들이 메달을 휩쓸었다.

쿠베르탱보다 훨씬 이전 사람인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완벽한 스포츠인은 5종경기를 하는 사람이다. 체력과 스피드가 경기인의 신체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라고 5종경기를 찬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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