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10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과 0-0으로 비기며 A조 2위를 차지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한국 선수단이 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했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한국이 천신만고 끝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진출에 성공했지만 예상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최종 예선 4승3무3패 11득점 10실점의 경기력 문제는 당연히 비판 받아야 한다.

그러나 축구깨나 한다는 나라들도 하기 어려운 9회 연속 본선 진출의 기록을 세운 선수들, 특히 특정 선수에 대한 지나친 비난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어느 분야든 적절한 비판 속에 발전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발전하지만 신세대 축구 팬들은 정말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다. 19세기 후반 이 땅에 들어온 축구는 일제 강점기에 민족적 울분을 달래는 스포츠로 성장했고 해방 직후 1948년 런던 올림픽 8강과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출전의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 축구는 아시아 무대에서 맴돌 뿐, 세계 무대에는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1970년 메르데카배(말레이시아)와 킹스컵(태국),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해 3관왕이 됐을 때 축구 팬, 나아가 국민들의 기쁨은 정말 컸다. 1970년 방콕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농구와 함께 두 종목 모두 처음으로 아시아 정상에 올라 기쁨이 두 배였다.

1970년대 초반 벤피카와 산토스 같은 유명 클럽과 겨루는 것만으로도 축구 팬들은 즐거워했다.

그사이 한국 축구는 월드컵은커녕 올림픽에도 나서지 못하는 긴 암흑기를 겪고 있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는 출전하긴 했지만 축구사에 남을 만한 참패였다. 체코슬로바키아에 1-6, 브라질에 0-4, 아랍공화국연합(이집트+시리아)에 0-10.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는 일본에 골득실차에서 밀려 출전하지 못했고 어렵사리 지역 예선을 통과한 일본이 동메달을 따는 걸 지켜봐야만 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예선은 중·장년 축구 팬들에게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1971년 9월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뮌헨 올림픽 아시아 동부 지역 예선에는 한국과 일본, 말레이시아, 자유중국(대만), 필리핀이 출전했다. 한국과 일본의 양강 구도로 예상했던 대회 판도는 첫날 말레이시아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동메달의 일본을 3-0으로 물리치면서 바로 깨졌다.

한국은 수중전으로 열린 말레이시아와 경기에서 슈팅 수 32-9를 기록하는 등 일방적으로 몰아붙였으나 후반 7분 시에드 아마드에게 결승 헤딩 골을 내주고 주저앉았다. 경기가 끝난 뒤 수많은 관중이 그라운드로 내려가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본부석 쪽을 향해 거센 항의를 하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본부석 어디엔가 대한축구협회 관계자가 있다고 생각했을 터이다.
한국은 이후 필리핀을 6-0, 일본을 2-1, 자유중국을 8-0으로 꺾었지만 올림픽 출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뮌헨 올림픽에는 아시아를 대표해 말레이시아와 버마(미얀마), 이란이 출전해 조별 리그에서 나란히 1승2패를 기록해 8강이 겨루는 2차 조별 리그에 오르지 못했다.

한국이 불참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경우 한국이 출전했더라도 축구는 가지 못했다. 다시 한번 말레이시아에 발목을 잡혔기 때문이다.

한국 축구가 다시 올림픽 무대에 서기까지는 24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나마 개최국으로 자동 출전한 덕분이었다. 이후 한국 축구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까지 8회 연속 올림픽에 나섰다. 이 또한 축구깨나 한다는 나라들도 세우기 힘든 기록이다.

올림픽에서도 월드컵에서도 축구 팬들은, 나아가 국민들은 지난 30여년 동안 축구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비판은 하되 비난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년 6월, 한국 축구는 러시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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