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5년 1월 한강에서 열린 조선체육회 주최 제1회 전조선빙상경기대회에 출전한 선수들. 학생모를 쓴 이도 있지만 모자와 경기복 패션이 요즘 못지않다. ⓒ대한체육회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의 본산인 대한체육회는 지난해 국민생활체육회와 발전적으로 통합해 명실공히 한국 스포츠를 총괄하는 기구로 기능하고 있다. 대한체육회가 주관하는 최대 이벤트가 전국체육대회(전국체전)다. 2019년 제100회 대회를 앞두고 오는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는 충주시를 중심으로 충청북도 11개 시·군이 힘을 모아 개최하는 제98회 전국체전이 열린다. 전국체전 역사는 곧 한국 스포츠 역사다. 100년 가까이 한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전국체전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편집자 주>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1923년 동아일보사 평양 지국은 대동강에서 우리 민족 손으로는 처음인 빙상경기대회를 열었다. 1월 20일 대동강빙상대회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이 대회에는 참가금 50전만 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다. 경기 종목은 크게 전진 경기, 배진(背進=후진) 경기의 두 가지로 나뉘었으며 한 바퀴 320야드의 링크를 30바퀴까지 도는 최장거리까지 여러 세부 종목이 있었다.

조선인이 처음 여는 빙상경기대회라 대동강 강변의 양쪽 성벽 위에는 수많은 관중이 모여 경기를 관람했다. 배진 3바퀴에서 우승한 함흥 출신의 한소환, 전진 15바퀴 패권을 차지한 강봉삼 그리고 최장거리인 전진 30바퀴 우승자 김인덕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대동강빙상대회는 제3회 대회부터 국제 경기 종목대로 진행됐으며 제4회 대회부터는 관서체육회 주최 대회로 흡수됐다.

조선체육회는 대동강빙상대회보다 2년 늦은 1925년 1월 5일 한강에서 제1회 전조선빙상경기대회를 열었다. 경기 종목은 전진부에 100m, 400m, 800m, 1500m, 5000m, 1만m 그리고 후진부에 300m, 600m 그리고 800m 계주가 있었다. 이날은 날씨가 포근해 얼음이 두껍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얼음 위에 몰리면 자칫 얼음이 꺼져서 위험할지 모른다고 경찰이 대회 중지를 명했다. 그러나 주최 측은 선수 63명만 얼음 위에 입장시킨다는 조건으로 경찰을 설득해 대회를 강행했다.

이 대회 청년단 전진부에서 박유돈(평양)은 800m(1분 38초), 1500m(3분 23초), 5000m(13분 21초) 등 3종목 우승을 휩쓸었다.

조선체육회는 제6회 전조선축구대회를 1925년 4월 28일부터 사흘 동안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었다. 이 대회부터 새로 전문단이 마련돼 전문학교 팀들끼리 경기를 갖게 됐다. 이 대회에서는 소학단만 참가금을 받지 않고 중학단은 3원씩, 전문단과 청년단에는 5원씩 참가금을 받아 대회 운영비에 충당했다.

조선체육회는 1925년 5월 25일부터 이틀 동안 훈련원에서 제2회 전조선육상경기대회를 치렀다. 그때 훈련원은 경성운동장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미 그라운드에는 국제 규격의 트랙이 마련돼 있어 제2회 전조선육상경기대회는 제대로 된 시설에서 치를 수 있었다. 경성운동장은 일제 강점깅기에서 벗어난 뒤 서울운동장으로 불리다가 동대문운동장을 거쳐 동대문야구장으로 이름이 바뀐 뒤 2007년 서울특별시 재개발 계획에 따라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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