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승을 차지한 슬로베니아/사진 FIBA 제공
[스포티비뉴스=조현일 농구 해설 위원/전문 기자] 2017 유로바스켓이 슬로베니아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슬로베니아는 18일(한국 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세르비아와 결승에서 93-85로 승리하면서 사상 첫 유로바스켓 챔피언에 올랐다. 

그것도 대회 전승(9승) 우승이었다. 4강에서 만난 스페인을 상대로는 20점 차 대승을 따냈다. 고란 드라기치, 루카 돈치치 콤비는 매 경기 상대 수비를 손쉽게 따돌렸고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수비도 빛을 발했다. 

농구 팬들에게 숱한 화제를 안긴 유로바스켓의 5가지 화두를 정리해보았다. 

#1. 희비 엇갈린 동유럽 국가들 
슬로베니아는 이번 대회에서 사상 첫 우승을 달성했다. 훌륭한 수비력, 느린 템포 대신 화끈한 공격력, 쉴 새 없이 뛰는 농구를 앞세워 챔피언에 올랐다. 

슬로베니아는 고란 드라기치가 마지막으로 출전한 유로바스켓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접전도 별로 없었다. 9경기 평균 상대를 13.3점 차이로 물리쳤다. 

전통의 강호 세르비아의 성과도 훌륭했다. 네만야 비엘리차, 니콜라 요키치, 밀로스 테오도시치, 미로슬라브 라둘리차까지 주축이 여럿 빠졌지만 결승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내보였다. 

반면, 리투아니아와 크로아티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때 FIBA 랭킹 3위까지 올랐던 리투아니아는 요나스 발렌슈나스가 맹활약했지만 원래 강점이었던 윙 포지션 공격력의 약화가 아쉬웠다. 그리스와의 16강전에선 64점에 그치는 빈공 속에 13점 차로 패하면서 짐을 쌌다. 

크로아티아 역시 2% 모자랐다. 리투아니아와 마찬가지로 16강에서 덜미를 잡혔다. 러시아와 치른 16강 맞대결에서 78-101로 대패했다. 매 경기 10개 가까이 넣은 3점이 돋보였지만 스페인이나 슬로베니아처럼 확실한 베테랑 에이스의 부재가 아쉬웠다. 

#2. 안녕 나바로
2000년대 초, 스페인은 스무살 남짓한 1980년생 전후의 엘리트 선수들이 한꺼번에 등장했다. 파우 가솔을 비롯해 후안 까를로스 나바로, 펠리페 레이예스, 호세 칼데론 등 재능 넘치는 자원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이른바 '골든 제너레이션'으로 불린 이들은 여러 국제무대에 출전해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그 중심에 있던 선수가 나바로다. 

38살 백전노장인 나바로는 파우 가솔, 로드리게스 등 함께 황금기를 보낸 동료들과 이번 유로바스켓에 참가, 스페인을 3위로 이끌었다. 이 대회를 끝으로 국제대회 은퇴를 선언한 나바로인 만큼 스페인의 3위 입성은 큰 의미가 있었다. 

러시아와의 3-4위 결정전에서 승리를 따낸 후 나바로는 "이 팀에 무한한 긍지를 느낀다. 메달(3위)과 함께 내 경력을 끝낼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 슬픈 감정과 행복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라며 벅찬 감정을 전했다. 

스페인 남자 농구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무대는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일 것이다. 당시 스페인은 내로라하는 강팀들을 물리치며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을 꺾기도 했던 그리스를 맞아 결승에서 70-47로 대승을 따내면서 챔피언십에 입맞춤했다. 

나바로도 2006년을 잊지 못했다. 나바로는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가 가장 잊히지 않는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이제 스페인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나바로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스페인 대표팀에 헌신했던 나바로의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3. 공격 농구가 대세
수비가 우승을 가져다준다는 오랜 농구 격언은 이제 옛이야기가 된듯하다. 지난 시즌 NBA에서 우승을 차지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팀 득점, 어시스트, 야투 성공률 1위에 오르며 완벽에 가까운 공격력을 선보인 바 있다. 

유로바스켓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승을 차지한 슬로베니아, 준우승 팀 세르비아, 3위에 오른 스페인은 모두 평균 득점 5위 이내에 든 '공격' 팀이었다. 

크리스탭스 포르징기스를 앞세운 라트비아는 7경기 평균 91.6점을 올리며 팀 득점 1위에 올랐다. 여기에 대회 성적은 5위였다. 그간 국제무대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라트비아가 신선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데에는 화끈한 공격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팀 득점 3위 프랑스(88.5점)를 제외하면 대회 1위~5위 팀 가운데 무려 4팀이 최다 득점 탑 5 이내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챔피언 슬로베니아는 라트비아와 더불어 대회 평균 90점을 넘긴 두 팀 가운데 하나였다. 

드라기치는 "우리 팀 최고의 장점이 공격력이다. 굳이 장점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스페인을 꺾을 때에도 우리 전략은 딱 하나, 끊임없이 상대 림으로 돌진하는 방식이었다"라며 날카로운 창으로 우승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4. 또 한 번 한끗이 모자랐던 세르비아
"결승에서 지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승에 입맞춤 할 것이다." 세르비아의 에이스인 보그단 보그다노비치가 결승 직후 남긴 말이다. 

스페인과 더불어 세르비아는 유럽 내에서 가장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는 팀 가운데 하나다. 국내파와 NBA 선수들의 절묘한 조화 속에 그 흔한 잡음 하나 없이 국제대회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둬 왔다. 

문제는 매번 우승 문턱에서 미끄러졌다는 점이다. 그 시작은 지난 2014 세계선수권대회였다. 당시 준우승을 차지했던 세르비아는 2016 리우데자이네루 올림픽에선 미국에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 열린 2017 유로바스켓에서도 세르비아는 결승에서 슬로베니아에 무릎을 꿇었다. 지난 4번의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3차례 준우승을 차지한 세르비아. 핵심 선수들이 5명이나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선전을 이어간 세르비아가 언제쯤 우승 트로피를 차지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5. 지켜봐야 할 영건, 루카 돈치치
유로바스켓 MVP의 주인공은 고란 드라기치다. 드라기치는 대회 평균 22.6점 5.1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슬로베니아의 우승을 이끈 드라기치, 돈치치를 필두로 알렉세이 쉐베드(러시아), 보그단 보그다노비치(세르비아), 파우 가솔(스페인) 2017 유로바스켓 대회 베스트 5에 뽑혔다.

이 가운데 돈치치만이 아직 NBA의 맛을 못 본 선수다. 드라기치, 가솔은 NBA 소속 팀에서도 주축으로 활약 중인 핵심 자원들. 비록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쉐베드 역시 NBA에서 182경기를 뛴 경험을 갖고 있다. 

보그다노비치의 경우, 2017-2018 시즌 새크라멘토 킹스 유니폼을 입고 활약할 예정이다. 훌륭한 체격에 빼어난 슈팅, 높은 농구 아이큐까지 겸비한 만큼 성공적으로 안착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반면, 돈치치는 여전히 만화와 시트콤을 즐기는 10대 선수에 불과하다(1999년생). 함께 베스트 5에 뽑힌 선수들과의 나이 차이도 제법 난다. 특히 가솔과는 19살 차이다. 

하지만 코트 위에서는 전혀 어린 티가 나지 않았다. 노련하고 침착했으며 날카롭고 폭발적이었다. 이미 예비 NBA 선수라는 평가를 들어왔던 돈치치는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주가를 한없이 끌어 올렸다. 

가솔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솔은 "지금보다 더 능력 있는 선수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그의 기량을 높이 샀다. 

특히 언제 어디서든 던질 수 있는 3점과 빼어난 일대일 능력, 201cm의 신장이 돋보인다. 체격이 더 자랄 여지도 충분하다. 18살의 어린 나이로 유로바스켓 베스트 5에 뽑힌 돈치치의 약진이 이미 시작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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