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대회 출전 사상 처음으로 우승한 제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는 1963년 9월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당시에는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렸다.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일 자 부산일보에 따르면 부산 야구 팬들에게는 서울의 동대문 야구장과 같은 곳인 구덕 야구장이 해체 절차에 들어갔다.

1973년 서구 대신동에 건립된 구덕 야구장은 사직 야구장이 세워지기 전까지 부산에 있는 유일한 야구장이어서 '구도(球都)' 부산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1986년 롯데가 사직 야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기기 전까지 4시즌 동안 롯데의 홈구장 구실을 톡톡히 했다.

글쓴이는 까까머리 중학생 때 모교 야구부를 응원하기 위해, 스포츠 기자가 된 뒤에는 롯데 자이언츠 홈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구덕 야구장을 찾았다.

중학생 시절 구덕 야구장에는 외야석이 없었다. 7~8회쯤이면 운동장 문을 열어 공짜로 경기를 볼 수 있었는데 펜스 위로 머리를 내밀고 경기를 보다가 홈런 타구가 날아와 혼비백산해 펜스 아래로 몸을 숙였던 게 엊그제 일 같다.

구덕 야구장에서 경북고 기둥 투수 임신근(작고)의 낙차 큰 커브를 보면서 야구 팬이 됐고 최동원(작고)의 불같은 강속구를 기사로 쓰면서 야구 기자로 자리를 잡았다.

길지 않은 부산 유학 시절이었지만 이웃해 있는 구덕 축구장과 함께 구덕 야구장은 글쓴이의 스포츠 앨범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서는 구덕 야구장이지만 동대문 야구장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을 부산일보 기사를 보면서 했다.

부산시는 내년 2월께까지 구덕 야구장과 구덕 체육관 철거를 마친 뒤 조경 작업을 거쳐 이 일대를 생활체육공원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체육관은 구덕 운동장 입구 왼쪽에, 야구장은 오른쪽에, 축구장은 야구장 뒤에 있다. 야구장과 축구장 사이에는 수영장이 있는데 임시로 링을 설치해 복싱 경기를 하기도 했다. 서울의 동대문 운동장과 장충체육관을 합쳐 놓은 부산의 스포츠 복합 시설이었다.

장충체육관은 리모델링을 거쳐 더 멋진 실내 경기장이 됐고 구덕 야구장과 체육관은 스포츠 관련 시설로 부산 시민들의 사랑을 계속 받게 된다.

그런데 동대문 운동장 축구장도 야구장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스포츠 팬이라면 한국 야구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동대문 야구장과 관련된 일화를 하나라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1970년대 고교 야구가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 동대문 야구장은 하루에 ‘네 탕’을 뛰기도 했다. 어느 신문사가 주최하는 대회는 지역 예선 없이 전국의 고교 야구 팀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모두 출전해 대회 일정이 빡빡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첫 경기부터 야간 경기까지 하루 네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출전 학교 응원단과 동문이 경기마다 자리를 물려주며 운동장을 채웠으니 2만여 명 수용 규모의 동대문 야구장 하루 입장 인원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미뤄 짐작할 만하다. 하루 총인원으로 하면 서울월드컵경기장 만원 관중에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동대문 야구장 전성시대’였다.

을지로 6가와 청계천 6가 사잇길을 지날 때마다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을 떠올리곤 한다. 동대문 야구장 자리에, 주변 건물들과 전혀 조화롭지 않게 서 있는 건축물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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