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한 선수들이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환영식에 참석했다. 맨 오른쪽이 대회 최우수선수 박신자. ⓒ대한체육회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겨울철 올림픽에서는 1960년 스쿼밸리(미국 캘리포니아주) 대회 때 처음으로 두 명의 여자 선수(스피드스케이팅 김경회 한혜자)가 선수단에 포함됐다. 이어 1964년 인스브루크 대회에는 스피드스케이팅 김귀진과 김혜숙, 1968년 그르노블 대회에는 이현주, 김혜경(이상 피겨스케이팅)과 김귀진, 1972년 삿포로 대회에는 최정희 전선옥 이경희(이상 스피드스케이팅)가 출전하며 한국 여성 동계 올림피언의 계보를 이어 갔다.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인 아시안게임에 한국은 1951년 제1회 뉴델리 대회에는 한국전쟁 와중이었기 때문에 불참했다. 1954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대회에는 육상의 김연실과 성경순이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출전했지만 두 선수는 입상권에 들지 못했다.

아시안게임 첫 여자 메달리스트는 1958년 제3회 도쿄 대회 탁구 개인 단식 조경자, 개인복식 최경자-위쌍숙 조 그리고 단체전으로 모두 동메달이었다. 아시안게임 첫 여자 금메달리스트는 뒤늦게 나왔다. 한국이 개최하려다 반납한, 1970년 제6회 방콕 대회에서 ‘아시아의 마녀’ 백옥자가 포환던지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백옥자는 1974년 테헤란에서 열린 제7회 대회에서 다시 포환던지기 정상에 올랐다.

한국이 구기 종목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3위 안에 입상한 것은 여성이 이뤄 냈다. 꽤 많은 스포츠 팬들이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한 것을 구기 종목의 첫 세계선수권대회 입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8년 전인 1959년 당시 서독 도르트문트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여자 탁구 1세대 스타플레이어인 조경자를 비롯해 최경자 황율자 이종희가 나선 한국은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3위는 중국이었다.

많은 스포츠 팬들이 기억하는 제5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는 1967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렸다. 직전 대회인 1964년 제4회 대회(페루)에 상업은행 단일팀이 출전해 준우승국인 체코슬로바키아에 연장 접전 끝에 지는 등 가능성을 확인한 한국은 이 대회에는 박신자와 김명자, 신항대, 김추자, 주희봉, 채현애 등 당시 국내 여자 농구의 중심인 상업은행과 제일은행, 국민은행의 우수 선수를 모두 모아 명실상부한 국가 대표 팀을 꾸렸다. 미수교국이자 사회주의 국가에서 열리는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한 종목이 여자 농구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한국은 조별 리그 B조 1위로 6개국이 겨루는 결승 리그에 올랐다. 결승 리그에서는 소련에만 50-83으로 졌을 뿐 동독을 64-59, 일본을 81-60, 유고슬라비아를 78-71로 꺾고 준우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박신자는 준우승 팀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혀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로 인정받았다. 농구 올드팬들은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 선수단이 김포국제공항에서 서울시청 앞까지 카퍼레이드를 한 뒤 시청광장에서 환영식을 했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 대회에 이어 8월 도쿄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여자 농구에서 한국은 프랑스와 일본을 가볍게 제치고 우승했다. 소련 등 동유럽 나라들이 북한의 국호 문제 등 대회 운영에 불만을 품고 출전을 거부해 반쪽 대회가 되긴 했지만 한국 여자 농구가 거둔 세계 규모 대회 첫 우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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