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닿을듯 닿지 않았던 자리에 올라섰다. 두산 베어스가 지난 3월 31일 한화 이글스와 공식 개막전 이후 177일 만에 선두 KIA 타이거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두산이 24일 kt 위즈를 6-4로 꺾은 뒤 잠실야구장은 홈팬들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KIA가 홈에서 한화에 0-5로 지면서 두 팀의 승차가 사라졌다. 두산은 82승 3무 55패, KIA는 82승 1무 55패로 나란히 승률 0.599를 기록했다. 두산은 4경기, KIA는 6경기를 남겨둔 가운데 두 팀 모두 더는 물러설 수 없는 곳까지 왔다.
3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외치며 패기 있게 시즌을 맞이한 두산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판타스틱4'에서 마이클 보우덴이 어깨 부상으로 이탈했고, 불펜은 베테랑 이현승, 김승회에게 의지하며 어렵게 버텼다. 타선은 4번 타자 김재환을 빼면 기복이 컸다. 전반기 내내 5위권을 맴돌면서 가을 야구만 해도 다행일 거 같았던 두산은 어떻게 호랑이 꼬리를 밟았을까.
◆ 위기는 기회다
위기는 곧 기회다. 보우덴이 어깨 충돌 증후군으로 전반기 내내 이탈했을 때 두산은 젊은 투수들에게 눈을 돌렸다. 선발투수로 전향한 함덕주와 함께 신인 김명신, 이영하, 박치국까지 기회를 주며 빠르게 1군 경험을 쌓게 했다. 함덕주는 굳이 선발 5명을 쓸 필요가 없는 기간을 빼곤 시즌 내내 로테이션을 지켰다. 32경기 9승 8패 1홀드 평균자책점 3.69로 호투하며 성공적인 선발 첫 시즌을 보냈다. 함덕주가 버틴 덕에 두산은 보우덴 공백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전반기 충분한 기회를 얻은 김명신과 이영하는 후반기 들어 불펜에서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최주환은 전반기 주전 2루수 오재원이 긴 슬럼프에 빠져있을 때 눈도장을 찍었다. 전반기 76경기 타율 0.308 5홈런 40타점을 기록하며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첫 풀타임 시즌인 만큼 후반기 들어 페이스가 다소 떨어졌지만, 9월 들어 타율 0.394 2타점을 기록하며 시즌 3할 타율을 회복했다.
류지혁은 7월 말 유격수 김재호가 허리 부상으로 빠지고, 8월 말 다시 어깨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 공수에서 큰 힘이 됐다. 2번 타자로 활발히 출루하고, 수비도 큰 실수 없이 잘 버텼다. 다만 24일 kt전에서 왼 무릎 타박상을 입어 걱정을 사고 있다.
포수 박세혁은 안방마님 양의지가 6월 말 손가락 골절로 빠졌을 때 묵묵히 포수 마스크를 썼다. '나까지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고, 양의지가 돌아왔을 때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두겠다는 자신과 약속도 지켰다. 무더운 여름 박세혁이 버티지 못했다면, 후반기 승률 0.714는 불가능했다.
◆ 기다리면 터진다
올 시즌 두산 마운드의 가장 큰 수확은 김강률이다. 김강률은 후반기 들어 '무적'이 됐다. 32경기 5승 5패 10홀드 41⅓이닝 평균자책점 1.31을 기록했다. 부단한 노력 끝에 밸런스가 잡히면서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직구가 위력을 얻기 시작했다. 김강률은 최근 기복이 있는 이용찬을 대신해 셋업맨에서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바꿨다. 김강률이 활약하면서 두산 뒷문은 꽤 단단해졌다. 후반기 불펜 평균자책점 3.50으로 롯데와 공동 선두에 오르며 18승 3패 16세이브를 기록했다.
박건우와 오재일은 반전 드라마를 썼다. 박건우가 먼저 부진을 털었다. 4월까지 타율 0.180 1타점에 그쳤던 박건우는 2군에 다녀온 이후 180도 달라졌다. 연일 맹타를 휘두르며 3번 타자로 자리잡았고, 시즌 타율은 0.368까지 올랐다. 19홈런 20도루를 기록하며 20-20까지 홈런 하나를 남겨 뒀다. 주전 외야수로 도약하며 커리어 하이를 이룬 지난 시즌을 뛰어 넘는 활약이다.
오재일은 지난해보다 안타 하나만 더 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이뤘다. 5월까지 타율 0.206에 머물렀던 오재일은 6월부터 타격 페이스를 찾으면서 시즌 타율을 0.309까지 끌어올렸다. 9월 들어서는 홈런 9개를 몰아치는 괴력을 자랑하며 시즌 25홈런을 달성해 2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안타는 지난해보다 3개 많은 123개다. 목표를 달성한 오재일은 득점권에서 더 보탬이 되겠다는 각오로 타석에 서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 6월 손가락 부상 여파로 주춤했던 양의지와 민병헌이 9월 들어 타격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가을 사나이' 3루수 허경민은 9월 타율 0.306 1홈런 11타점 맹타를 휘두르며 시즌 내내 안고 있던 타격 부담을 조금은 덜었다.
넘어질 것 같은 순간은 많았다. 그러나 견디고 또 견디면서 여기까지 왔다. 팀의 위기를 자신의 기회로 삼은 선수들, 그리고 긴 기다림에 응답한 선수들의 노력과 땀이 모여 견고해 보였던 '1위 천장'이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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