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일정' '협회 논란' '선수 발언'…비 온 뒤 굳어진 신뢰

- 런던 올림픽 때부터 쌓아온 '가족 같은 문화' 대표 팀 끈끈하게 만들어

- 대화와 소통으로 주축 선수와 젊은 선수 화합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올림픽이 열린 지난해보다 대표 팀의 일정은 매우 빡빡했다. 가뜩이나 선수층이 두껍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들의 대표 팀 합류 문제는 쉽지 않았다. 여기에 부상과 민감한 문제까지 발생했다.

이런 고난을 극복한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해피엔딩의 집필자가 됐다. 한국은 24일 태국 나콘빠콤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FIVB(국제배구연맹) 세계여자선수권대회 아시아 지역 예선 B조 최종전에서 홈팀 태국을 세트스코어 3-0(25-22 25-16 25-21)으로 이겼다.

앞선 경기에서 한국은 북한, 이란, 베트남을 모두 3-0으로 물리쳤다. 4경기를 무실세트로 마친 한국은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최상의 성적표를 받았다. 한국은 당당하게 B조 1위로 내년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 본선 진출권을 거머쥐었다.

사실 태국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한국은 이달 초 일본에서 열린 FIVB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 주전 선수 상당수가 출전하지 않았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대표 팀인 세계 강호들에 호되게 무너졌다. 자칫 대표 팀 선수들의 사기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김연경(29, 중국 상하이) 김희진(26, IBK기업은행) 박정아(24, 한국도로공사)가 합류한 대표 팀은 태국전에서 올해 최고의 경기력을 펼쳤다.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값진 성과를 얻은 대표 팀은 올해 국제 대회를 기분 좋게 마무리 지었다.

▲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 ⓒ AVC 제공

어려움을 이겨내고 똘똘 뭉친 선수들의 희생정신

한국은 올해 총 4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아시아선수권대회와 그랜드 챔피언스 컵 무대에 섰다. 특히 4주간 펼쳐진 그랑프리에서는 같은 멤버가 강행군을 펼쳤다. 김연경은 "앞으로 대표 팀이 성장하려면 14명 엔트리는 물론 후보 선수들도 함께 훈련하는 시스템이 완성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4주간 진행되는 그랑프리에서 똑같은 선수가 모두 출전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김연경을 비롯한 주전 선수들은 그랑프리와 아시아선수권을 모두 치르며 녹초가 됐다. 대표 팀 상비군과 프로 팀 2군 시스템이 없는 한국 여자 배구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문제로 인해 주전 선수들의 '혹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동시에 잠재력이 있는 젊은 선수들이 국제 대회를 경험할 기회도 사라졌다.

결국 올해 국제 대회 가운데 가장 중요성이 떨어지는 그랜드 챔피언스 컵에는 젊은 선수들이 대거 발탁됐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 하혜진(21, 한국도로공사)과 세터 이고은(22, IBK기업은행)이라는 새로운 인재를 배출했다. 이들은 세계선수권대회 예선 엔트리까지 이름을 올렸다. 하혜진은 김희진의 백업 멤버로 활약했다. 이고은은 태국전에서 한국이 이기는 데 힘을 보탰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원천은 선수들 간의 신뢰였다. 김연경과 김희진, 양효진(28, 현대건설)은 런던 올림픽 때부터 대표 팀에서 활약했다. 김수지(30, IBK기업은행)와 박정아 이재영(21, 흥국생명)은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경험했다. 김연경과 양효진 그리고 김수지 등 주축 선수들은 올림픽을 경험하며 가족 같은 끈끈한 문화를 형성했다. 주장인 김연경은 후배들에게 엄한 선배로 유명하다. 김연경이 채찍을 들 때 양효진과 김수지는 선배와 젊은 후배 사이를 연결하는 가교를 맡았다.

이런 분위기에 새롭게 합류한 젊은 선수들은 하나둘씩 녹아들었다. 황민경(27, 현대건설)은 "그랑프리 때부터 느꼈는데 대표 팀은 정말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함께 헤쳐 나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을 앞두고 선수들이 호흡을 맞춘 시간은 고작 3~4일 정도였다. 짧은 기간 훈련할 때 대표 팀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홍성진 감독은 "팀 내 문제가 있을 때는 대화로 해결하려고 한다. 미팅을 통해 선수들과 많이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끈끈함은 태국전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경기에서 김연경(15점)과 김희진(15점)은 30점을 합작했다. 미들 블로커 김유리(26, GS칼텍스)는 12점, 이재영은 11점을 기록했다. 특히 김유리는 부상으로 빠진 양효진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메웠다. 이재영은 공격은 물론 안정된 리시브로 살림꾼 소임까지 톡톡하게 해냈다.

▲ 김연경 ⓒ AVC 제공

치열해진 대표 팀 주전 경쟁…전력 향상 기대

과거 한국 여자 배구 대표 팀은 김연경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선수들의 차출도 쉽지 않아 김연경의 비중은 클 수밖에 없었다. 홍 감독은 "예전과 비교해 지금은 선수들의 대표 팀 차출이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됐다"고 밝혔다.

한국은 최상의 전력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횟수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예선에서는 '꿈의 삼각편대'인 김연경-이재영-김희진이 태국전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그랜드 챔피언스 컵부터 팀원들과 호흡을 맞춘 이고은은 '세터 불안'에 대한 염려를 털어냈다. 숨은 주역인 김연견(24, 현대건설)과 나현정(27, GS칼텍스)은 새로운 리베로로 자리매김했다.

김연경과 대각을 이루는 아웃사이드 히터 한 자리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이재영과 박정아 황민경 그리고 최수빈(23, KGC인삼공사)은 이번 대회에 모두 출전했다. 여기에 천안‧넵스컵 MVP인 강소휘(20, GS칼텍스)까지 차기 대표 팀 멤버로 거론되고 있다.

이고은이 선전한 세터도 여전히 주전 경쟁이 치열하다. 미들 블로커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양효진과 배유나(27, 한국도로공사)가 버티고 있다. 고민거리였던 김희진의 백업 멤버 자리도 하혜진이라는 새로운 인재가 등장했다.

한국이 당장 일본과 태국처럼 탄탄한 선수층을 만들기에는 여러모로 어렵다. 그러나 올해 많은 국제 대회를 치른 대표 팀은 가능성이 있는 젊은 선수들을 발견하며 나름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올해 힘든 여정을 마친 대표 팀은 마지막 종착지에서 웃었다. 이런 성과는 내년 대표 팀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남은 문제는 협회의 행정력과 배구인들의 단합이다. 한 배구 관계자는 "올해 유독 협회에 대한 문제가 많았는데 근본적으로는 모든 배구인의 책임이다. 도쿄 올림픽을 생각할 때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대표 팀은 2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귀국한다.

[영상] 한국 VS 태국 하이라이트 ⓒ SPOTV 미디어 서비스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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