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글 한준 기자, 영상 장아라 기자]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지켜본 한국 축구 팬들에게, 독일 축구의 힘은 위르겐 클린스만의 ‘만세 세리머니’로 강렬하게 전해졌다. 당시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한 독일의 주전 공격수 클린스만은 1994년 6월 27일, 무더웠던 미국 댈러스 코튼보울 경기장에서 전반 12분 만에 토마스 해슬러의 침투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넣었다.

당시 득점은 스트라이커의 슈팅 기술을 극대화한 명장면이었다. 해슬러의 패스는 평범했으나 수비를 등지고 공을 띄워올린 뒤 180도 터닝 동작으로 하프 발리 슈팅을 작렬한 클린스만의 플레이는 23년이 지난 지금 봐도 최고 수준의 기술이라 극찬할 수 밖에 없다. 

선제 득점 이후 클린스만은 전반 20분 카를하인츠 리들러가 넣은 두 번째 골 과정에 깊숙하게 침투한 스로인으로 귀도 부흐발트의 골대를 때린 슈팅을 유도해 간접 기여했고, 전반 37분 문전에서 또 한번 시원한 슈팅으로 3-0을 만들었다.

이 경기는 후반전에 황선홍과 홍명보가 두 골을 넣고 마지막까지 독일을 추격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당시 조별리그 C조에서 압도적인 스타는 클린스만이었다. 클린스만은 한국전 득점 이전에도 볼리비아전 1-0 승리를 이끈 결승골, 스페인전 1-1 무승부로 이어진 동점골로 조별리그 전 경기에서 득점하고 있었다. 

독일은 대회 8강에서 불가리아의 돌풍에 가로 막혀 탈락했지만, 클린스만은 벨기에와 16강전에도 득점해 4경기 연속골을 넣었다. 이 대회를 마친 클린스만은 AS모나코를 떠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홋스퍼로 이적했다. 

모나코에서 두 시즌 동안 리그 30골을 채운 클린스만은 1981년 슈투트가르터키커스 소속으로 2.분데스리가(2부리그)에서 프로 데뷔했고, 1984년 슈투트가르트에서 1부 생활을 시작해 5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탁월한 골잡이다. 클린스만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1년 앞두고 이탈리아 클럽 인터밀란으로 이적해 현지 적응을 마친 뒤 독일의 월드컵 제패를 이끌었다.

▲ 토트넘 시절 클린스만 ⓒ게티이미지코리아


◆ 클린스만은 어떻게 1년 만만 뛰고 '레전드'가 되었나

인터밀란, 모나코에 이어 토트넘에서 세 번째 리그에 도전한 클린스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입단 초기에는 파울을 유도하는 ‘다이빙’을 싫어하는 영국 축구 팬들의 의심을 받았지만, 프리미어리그 데뷔 시즌 41경기에서 21골, FA컵 6경기에서 5골, 리그컵 3경기 4골로 총 50경기 20골을 몰아치며 ‘클래스’를 입증했다. 득점 이후 보란 듯이 잔디 위로 다이빙하는 골 세리머니는 요즘 말로 치면 ‘사이다’였다.

클린스만의 토트넘 생활은 짧았다. 그의 무시무시한 활약에 독일 최고 축구팀 바이에른뮌헨이 러브콜을 보냈다. 독일 최고의 선수라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클린스만은 바이에른에서 두 시즌을 보내며 UEFA컵 우승과 분데스리가 우승으로 트로피에 대한 갈증을 채웠다. 

독일 대표팀이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실패한 아쉬움을 유로1996 우승으로 만회했다. 당시 독일 대표팀 스쿼드에 바이에른 선수가 8명이나 포함되어 조직력이 강했다. 클린스만은 결승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체코와 조별리그에서 만나 두 골, 크로아티아와 8강전에서 1골을 넣어 팀내 가장 많은 3골을 넣었다. 

토트넘에서 한 시즌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긴 클린스만은 1997-98시즌 이탈리아 삼프도리아로 이적했다가, 후반기에는 토트넘으로 임대 이적해 자신의 프로 경력 황혼기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당시 토트넘은 강등권까지 추락해 위기를 겪고 있었는데, 클린스만은 1997년 12월 28일 아스널과 경기부터 참가해 후반기 15경기 동안 9골을 몰아치며 토트넘을 잔류시켰다.

당시 클린스만은 복귀후 세 경기 만에 웨스트햄유나이티드와 런던 더비에서 결승골을 넣어 1-0 승리를 이끌었고, 리버풀, 크리스털팰리스를 상대로 30, 31라운드에 연속골을 넣어 승점을 가져왔다. 리그 최종 3경기에만 6골을 몰아쳤다, 뉴캐슬, 윔블던, 사우샘프턴의 골망을 차례로 흔들었다. 클린스만이 토트넘에 도착했을 때 팀 순위는 18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마지막 경기를 치렀을 때 순위는 14위. 

▲ 토트넘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클린스만 ⓒ게티이미지코리아


클린스만은 2003년 오렌지카운티블루스타에서 잠시 선수 생활을 했으나, 그의 진정한 현역 은퇴 무대는 토트넘과 프리미어리그였다. 토트넘 팬들이 겨우 한 시즌 반 동안 활약한 클린스만을 ‘레전드’로 인정하는 이유는 그가 짧은 시간 보인 강렬함, 팀이 가장 어려울 때 돌아와 남기고 간 헌신과 활약 때문이다. 

우아한 슈팅 기술을 가지기도 했지만, 빠른 타이밍에 온 몸을 던지며 시도하는 헤더로 유명한 클린스만은 골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선수다.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56경기 30득점 만으로 클린스만을 ‘아이콘’으로 선정한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