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현종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수원, 김건일 기자] 2007년 한 앳된 얼굴의 투수는 경기 도중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마운드에서 교체되고 나면 광주 무등구장 한 켠에서 머리를 뜯고 어느 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2007년 광주 동성고를 졸업하고 괴물 투수 수식어와 함께 KIA에 2차 1라운드 1순위로 입단했던 기대주 양현종이 프로에 내디딘 첫발은 녹록지 않았다. 양현종은 입단 첫해부터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제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마운드에 오르면 볼을 여러 개 던지다가 강판되기 일쑤였다. 그래도 기대를 숨길 수 없었던 팀 내 최고 유망주. KIA 팬들은 그를 '막내딸'로 감쌌다.

경기 하나에 울먹였던 그가 KBO 리그 정상에 우뚝 섰다. 2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17 타이어뱅크 KBO 리그 kt와 경기에 선발 등판해 5⅔이닝을 2실점(비자책점)으로 막고 5-3 승리를 이끌어 시즌 20번째 승리(6패)를 신고했다. 양현종은 프로 야구 출범 이후 9번째 20승 투수가 됐으며 선발승으로 한정했을 때 KBO 리그 국내 투수로는 1995년 이상훈(LG)에 이어 22년 만에 대기록, 그리고 타이거즈 역사상 최초 기록을 수립했다.

이날 양현종에겐 20승 기록은 물론 두산에 반 경기 차로 쫓긴 상황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kt는 좌완 양현종을 공략하기 위해 선발 타자 9명을 모두 오른손 타자로 배치했다. 그래서일까. 천하의 양현종도 흔들렸다. 아찔했다. 1회 2아웃을 잘 잡은 뒤 3번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에게 던진 초구가 손에서 크게 벗어났다. 양현종은 공을 놓은 직후 허리를 숙여 통증을 호소했다. 트레이너가 황급히 뛰어나왔다. 돌발 상황에 뜨거웠던 수원 kt위즈파크 원정 팀 응원단석이 적막해졌다.

걱정도 잠시, 양현종은 트레이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툭툭 털고 일어났다. 2구 시속 147km 힘 있는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 존에 꽂아 건재를 알렸다. 풀 카운트에서 힘으로 이겼다. 6구째 시속 145km 패스트볼로 1루 땅볼을 유도했다.

그 뒤로 모두가 아는 양현종으로 돌아왔다. 3회까지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지켰다. 전날 한 이닝에만 12점으로 폭발한 kt 타선을 짓눌렀다. 4회가 최대 위기였다. 안치홍의 2점 홈런에 힘입어 3점을 먼저 안았지만 수비 실책이 양현종을 괴롭혔다. 이범호가 4회에만 실책 2개를 저질렀고, 좌익수 최형우 수비도 깔끔하지 않았다. 5-4-3 병살타가 돼야 할 타구가 1타점 2루타가 됐고, 이닝이 끝나지 않고 이어져 적시타를 내줬다. 주지 않아도 될 2점을 줬다. 계속된 2사 만루 위기에서 나온 타자는 정현. 더 이상의 실점은 없었다. 양현종은 정현을 중견수 뜬공으로 유도했다.

6회 2아웃 이후 이날 경기 최대 위기를 맞았다. 박기혁을 내야 땅볼로 유도했는데 이번엔 김선빈이 실책을 저질렀다. 투구 수는 109개를 넘어섰다.

이때 양현종은 박수를 쳤다. 외려 김선빈을 격려했다. 마운드에 있는 투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였다.

양현종은 장성우와 승부에서 공 6개를 추가로 던졌다. 볼넷. 올 시즌 개인 한 경기 최다 투구 수 120개를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3루 쪽 KIA 원정 응원단은 양현종에게 아낌없는 기립 박수를 보냈다.

양현종은 "내가 20승을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오늘92일) 내가 20승에 도전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꿈만 같았다. 기회가 왔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성하게 돼 뿌듯하다. 20승을 달성했던 우리나라 투수 대표 선배님들과 함께 내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오늘 20승을 하면서 팀이 한국 시리즈 진출을 확정 지었으면 좋았겠지만 내일(3일) 헥터가 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 양현종 ⓒ한희재 기자

양현종은 시련의 데뷔 첫 2년을 넘어 2009년을 기점으로 잠재력을 터뜨렸다. 그해 선발투수로 자리 잡아 12승으로 팀의 통합 우승에 이바지했다. 2010년 16승을 올리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 팀에 선발돼 금메달을 일궜다.

그런데 2011년 급격한 슬럼프에 빠졌다. 2011년 7승 9패 평균자책점 6.18로 무너졌다. 불펜으로 강등된 이듬해엔 1승 2패 2홀드에 그쳤다.

하지만 양현종은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선발투수로 돌아와 19경기에서 9승 3패 평균자책점 3.10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4년 화려하게 부활했다. 극심한 타고투저 속에서도 16승 8패 평균자책점 4.25로 국내 투수로 다승, 탈삼진 등 주요 부문을 석권했으며 초대 최동원상 수상자가 됐다. 2015년 윤석민이 볼티모어에서 돌아왔지만 에이스는 양현종이었다. 양현종은 15승 6패를 기록했고 평균자책점 2.44로 리그 유일의 2점대 평균자책점 투수로 섰다.

어느덧 프로 11년째, 30세가 된 양현종은 제법 의젓하다. 야수의 실책에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그는 최원준 등 어린 선수들이 실책할 때 '얼굴을 펴라'고 격려한다. 팀이 어려울 때면 "공 한 개라도 더 던지겠다"고 말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지난 겨울 FA 자격을 얻었을 때 "KIA에서 우승하고 싶다"며 KIA에 남은 양현종. 어느덧 의젓한 에이스, 그리고 KBO 리그 역사에 남을 대 투수로 성장했다. 이제 팀의 11번째 우승을 지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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