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도곤 기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티에리 앙리는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선수로 꼽힌다.

앙리는 제 2의 앙리로 불리는 킬리안 음바페(PSG)가 기록을 깨기 전까지 AS 모나코의 최연소 출전, 최연소 득점 기록을 세우며 유럽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1999년 1월 유벤투스로 이적하며 빅리그에 발을 들였으나 그의 이탈리아 생활은 실패했다. 기록, 내용면에서 부진했고 반년 만에 유벤투스를 떠났다. 그리고 이 선택은 앙리의 축구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마련했다.

앙리가 선택한 곳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널, 앙리는 아스널 이적 후 팀과 개인의 전성시대를 동시에 열였다. 입단 첫 해부터 프리미어리그를 평정한 앙리는 리그 31경기 출전해 17골, 총 43경기 출전해 25골을 넣으며 입단 첫 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앙리는 명실상부한 아스널의 왕이 된다. 데니스 베르캄프, 로베르 피레, 솔 캠벨, 애슐리 콜, 프레드릭 등과 함께 아스널의 전성시대를 열였고, 특히 2003-04 시즌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남은 리그 무패 우승을 이끌었다. 30골로 득점왕 타이틀도 차지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특유의 골 감각과 빠른 스피드로 프리미어리그를 평정한 앙리다. 스피드는 물론 영리한 몸싸움에도 능해 프리미어리그에서 막기 까다로운 대표적인 공격수로 꼽혔다. 기술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프리머이리그 최정상의 선수였다.

득점은 물론 패스 능력도 뛰어났다. 좋은 패스로 많은 도움을 올렸고, 베르캄프, 융베리, 피레 등도 앙리와 함께 뛰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위 선수들 모두 개인 중심적인 선수가 아닌 이타적인 플레이어였고 이들을 위시한 아스널은 리그 최고의 공격진을 구성했다. 특유의 골 감각과 빠른 스피드로 프리미어리그를 평정한 앙리다. 스피드가 빠르면 몸싸움이 약하고, 몸싸움이 강하면 스피드가 느리다는 편견을 깬 것도 앙리다. 앙리는 스피드는 물론 영리한 몸싸움에도 능해 프리미어리그에서 막기 까다로운 대표적인 공격수로 꼽혔다.

▲ 티에리 앙리
앙리는 최고의 자리를 지키며 프리미어리그 최정상의 공격수로 활약한다. 긴 시간 아스널에서 뛴 만큼 많은 역사도 함께 했다. 2005-06 시즌에는 세 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고 특히 리그 마지막 경기인 위건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당시 경기가 치러진 곳은 아스널의 홈 구장 하이버리로 위건전을 끝으로 철거됐다. 하이버리의 마지막 경기에서 아스널의 상징인 앙리가 해트트릭을 달성하고 마지막 골에서는 경기장 잔디에 입을 맞추며 하이버리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같은 시즌에는 아스널은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이끌었으나 바르셀로나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이후 아스널의 악몽과 같은 챔피언스리그 악연이 시작됐다. 2005-06 준우승 후 아스널은 단 한 번도 결승에 진출지 못했다.

하이버리의 끝과 새 구장인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시작을 함께 했지만 새 구장에서의 첫 해가 그의 아스널 마지막 시즌이 됐다. 이 시즌을 끝으로 앙리는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앙리는 바르셀로나 이적 후 커리어에 딱 하나 빠져있던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기도 했다.

선수 생활의 말년에 접어들며 바르셀로나를 떠나 미국 MLS의 뉴욕 레드불스로 이적했다. 그대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듯 보였으나 2012년 1월, 단기 임대를 통해 아스널로 깜짝 복귀했다. 복귀 후 리즈 유나이티드와 FA컵 경기에서 복귀골을 넣었다. 이 골은 결승골이 됐다. 특히 리그 25라운드 선덜랜드와 경기에서 1-1로 맞선 후반 추가 시간에 극적인 결승골을 넣으며 팀에 승리를 안겼다. 임대 연장은 없었고 앙리는 뉴욕을 돌아갔다. 그리고 2014년 은퇴를 선언, 해설자 ,패널 등을 거쳐 현재는 벨기에 대표팀 수석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영상] 아스널의 왕, 티에리 앙리 ⓒ 장아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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