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글 이종현 기자, 영상 장아라 기자] 축구의 신(神) 리오넬 메시(30, 바르셀로나)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축구의 신(神)하면 가장 먼저 떠오른 선수는 디디에 드로그바(39)였다.

드로그바는 프랑스의 축구팀 앙나방 갱강에서 프로 데뷔를 했다. 첫 시즌 팀에 적응한 드로그바는 두 번째 시즌 갱강에서 주전급으로 도약했고, 리그에서만 17골을 득점했다. 드로그바는 프랑스 리그에서 될성부른 나무였다. 곧바로 프랑스 리그 앙의 명가 올림피크 드 마르세유로 입단한 이후 한 시즌 만에 첼시의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

드로그바를 지금처럼 레전드로 이끌었던 건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함께 성장을 도운 경쟁자다. 드로그바는 입단 이후 네덜란드 에레디지비에 득점왕 마테야 케즈만과 첼시에서 이미 한 자리 차지하던 아이두르 구드욘센과 경쟁해야 했다. 드로그바는 2005년엔 에르난 크레스포, 2006년엔 안드레이 세브첸코, 2011년에도 당시 EPL 최고의 공격수였던 페르난도 토레스와 경쟁했다. 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장점을 발휘했다. 첼시의 주전으로 활약하던 변덕이 심한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와 여러 명장이 오갔지만 첼시의 확고부동한 주전 선수는 단연 드로그바였다. 

드로그바는 189cm에 육박하는 피지컬과 흑인 특유의 탄력과 유연성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정복했다. 높이도 좋았고, 첼시가 하는 역습에도 특화됐다. 드로그바는 특히 승점이 필요한 '6점' 경기에서 매번 제 몫을 했다. 드로그바는 특히 '런던 더비'의 주인공 아스널전에서 강했는데, 아스널과 상대한 16번의 경기에서 15골을 넣었다. 아스널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

2011-12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극적인 동점 골과 마지막 승부차기 득점으로 첼시를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것도 드로그바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끝으로 잠시 첼시를 떠났던 드로그바는 2014-15시즌을 앞두고 주제 무리뉴 감독과 재회하며 구단의 역대 EPL 4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각자의 포메이션에서 잘하는 선수는 있다. 하지만 드로그바는 공격수로서 능력도 출중했고, 빼어난 세리머니와 멋들어진 득점을 할 수 있는 공격수였다. 차이를 만들고 팀이 득점이 필요할 땐 어떤 식으로든 득점을 뽑았다. 드로그바는 문전에서 헤더뿐만 아니라 터닝 슛, 강력한 무회전 프리킥, 허를 찌르는 슛도 가능했다. 

드로그바는 축구도 잘했지만, 외적인 영향도 컸다. 조국 코트디브아르가 전쟁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전쟁을 멈춘 건 드로그바다. 드로그바는 코트디부아르가 2006년 독일월드컵 아프리카 지역예선을 뚫고 사상 첫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하자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 섰다. 드로그바는 무릎을 꿇고 "여러분, 적어도 1주일 만이라도 전쟁을 멈추어 달라"고 호소했다. 드로그바의 호소에 휴전됐고, 2007년 정부와 반군 사이의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5년을 넘게 지속해온 전쟁이 드로그바의 말 한마디에 멈춘 것이다. 

드로그바는 첼시에서 389경기를 뛰었고 170골과 88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득점력도 뛰어났고 이타적이기도 했다. 첼시가 지난 시즌 안토니오 콘테 감독체제에서 우승하기 이전까지 EPL에서 우승한 건 모두 4차례였는데, 모두 드로그바가 첼시의 공격수로 뛰었을 때 달성한 기록이다. 드로그바는 첼시 유니폼을 입고 2차례의 득점왕(2006-07시즌, 2009-10시즌)과 1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드로그바는 EPL의 아이콘이었고 스템포드 브릿지의 레전드였다.

▲ 디디에 드로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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