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김종래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전원 해외파로 10월 유럽 원정 평가전에 임한 신태용호의 진짜 숙제는 변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스리백’ 보다 스리백 전술 상의 윙백이었다. 

현지시간 7일 2-4로 진 러시아 축구 국가 대표 팀과 친선 경기. 본래 오른쪽 날개인 이청용은 오른쪽 윙백 자리에서 안정적이었고, 두 개의 도움을 올리며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였다. 신태용호 1기 당시 주장 완장을 찼던 센터백 김영권은 왼쪽 윙백 자리에서 어려운 경기를 했다. 공수 양면에 걸쳐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 이청용이 신태용식 3-4-3의 윙백에 잘 녹아든 이유

두 선수의 희비가 엇갈린 것은 개인의 문제를 떠나, 전술 구조에 이유가 있다. 스리백의 윙백은 수비보다 공격력이 중시된다. 스리백과 최소한 한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배후를 지키기 때문에 영역 자체가 풀백 상황의 레프트백 보다 높다. 왼발을 잘 쓰는 센터백 김영권 보다, 오른쪽 측면 공격수를 보던 이청용이 적응하기 더 수월한 전술이다.

게다가 이청용에겐 이전 국가 대표팀에서 맡아본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청용도 러시아와 경기에서 전통적인 윙백처럼 측면의 폭주기관차로 오르락 내리락 하지 않았다. 하프라인 우측 부근 전후를 플레이 기점으로 삼고 빌드업 과정에 기여하며 미드필더처럼 뛰었다.

이청용은 마치 우측면 후방 지역에 후방 플레이 메이커가 한 명 더 있는 듯한 효과를 냈다. 권경원의 골을 도운 크로스 패스도 후방 지역에서 시도한 얼리 크로스였고, 지동원의 골로 이어진 스루 패스도 우측면 뒤에서 깊숙이 찌른 패스였다. 이청용에게 이 영역은 낯설지 않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우측면 공격수로 나섰을 때도 중앙 미드필더가 활발하게 전방으로 침투하면, 중원 지역의 빈 공간을 메우며 기성용과 뒤에서 패스 플레이의 기점 역할을 했다. 

장현수를 라이트백으로 기용했을 때도 이청용은 안으로 좁혀서 플레이했다. 전성기의 속도가 줄어든 대신 공을 다루는 노련미와 경기를 읽는 시야가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청용은 안정적으로 공을 관리하고, 뿌릴 수 있는 선수다. 그의 곁에 정우영이 빌드업 미드필더로 자리해 안정적으로 공을 공급 받았고, 권창훈이 그 앞에서 볼을 받기 좋은 위치를 잡았으며, 구자철이 이 두 선수 사이 공간에서 뛰면서 패스 루트를 열어줬다. 이청용은 동료들과 협업하기에도 좋은 환경이었다. 두 개의 도움 과정에서 패스를 넘겨준 선수는 교체로 들어온 기성용이었다.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기성용 투입 이후 한국 패스 플레이의 질이 전반적으로 좋아졌다.

▲ 이청용 ⓒ연합뉴스


◆ 왼쪽 윙백으로 뛴 김영권은 더 낯설고 더 외로웠다

이청용의 상황과 달리 애초에 김영권에겐 포지션 자체가 낯설고 불안했다. 더구나 표도르 스몰로프가 측면으로 벌려 움직이고, 손흥민이 프리롤로 뛰면서 역습 상황에서 자유도가 높았던 알렉산드르 사메도프까지 방어해야 했던 김영권은 공격으로 올라갈 여력도, 수비 커버 상황의 여유도 많지 않았다. 패스를 주고 받기 위한 주변 선수들의 동선도 멀어 백패스 외에 안정적으로 공을 소유하기 어려웠다. 

신태용호의 변형 스리백 시도는 결과적으로 4실점이라는 실패로 끝났다. 스리백이 자주 실수를 범한 배경에는 중원을 생략하고 투톱을 향한 러시아의 롱패스가 투입됐을 때 중앙 미드필더와 윙백의 수비 지원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다. 스리백 조합 자체의 실수도 있었지만 이청용의 최후방 수비 가담이 떨어지는 면이 영향을 미쳤다. 

게다가 구자철-정우영으로 구성된 중앙 미드필더 조합과 수비 보다는 패스와 공격 능력이 더 강조되었다. 애초에 윙백이나 풀백으로 뛰기에 스피드가 빠르지 않은 김영권에겐 커버 플레이를 위해 뛰어가야 할 거리가 멀었다. 공격 지원이 미진했지만, 선제 실점 상황 외에 김영권은 개인적인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 후반이 진짜였던 러시아…숙제가 더 크게 남은 3-4-3 실험

그나마 한국 대표 팀에 다행이었던 것은 러시아도 이번 경기에 실험을 했던 점이다. 러시아는 선발 투입한 세 명의 미드필더 중 두 명이 이날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안톤 미란추크와 달레르 쿠자예프는 스리백 앞에서 공을 배급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했는데, 패스 미스도 많고, 긴장한 채 허둥대는 모습이 확연했다. 두 선수의 부진으로 한국이 전반전에 볼 점유율에서 우세할 수 있었다. 

러시아도 스리백을 썼는데, 윙백이 힘차게 전진하기 위해선 허리가 안정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공 소유력이 안정되어야 수비로 돌아오는 상황의 부담을 덜고 오버래핑할 수 있다. 유리 지르코프와 사메도프 등 노장 선수로 구성된 러시아의 선발 윙백은 기동력 자체도 좋지 않은데 중원 볼 소유력까지 떨어져 전진이 활발하지 못했다. 덕분에 김영권-이청용의 뒷공간 불안 문제가 전반전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 ⓒ연합뉴스


러시아는 후반전에 미드필더 타라소프와 알렉세이 미란추크, 윙백 콘스탄틴 라우시와 마리우 페르난데스를 투입한 이후 더욱 활기 차고 창조적인 팀이 됐다. 만약 이 조합이 선발로 나왔다면 한국은 전반전부터 더 어려운 경기를 했을 수 있다. 라우시와 페르난데스가 귀화 선수였고, 이들도 A매치 데뷔전이었다는 점에서 체르체소프 감독은 전후반을 나누어 실험했다. 

러시아는 미드필드진에 기존 선수들이 낫다는 것을 확인했고, 윙백 포지션에는 귀화 선수들을 통한 개선의 가능성을 봤다. 한국과 평가전에서 4골이나 넣고 승리하며 홈팬들의 열기를 살린 것과 더불어 실험의 성과도 충분했다. 한국 보다 러시아에 득이 많은 경기였다. 불안했던 전반전 내용에도 불구하고 리드를 잡았고, 후반전에 4-0 상황까지 끌고간 뒤 이겼다. 선수단은 자신감을 얻었고, 체르체소프 감독은 확신을 가졌다.

◆ 신태용호 첫 평가전, 어쩔 수 없이 한 실험은 아니었다

러시아와 비교하면 한국은 많은 점에서 불투명한 경기를 치렀다. 그나마 한국의 소득이라면 선발 출전한 황의조가 전방에서 꽤 유연한 9번 역할을 해줬고, 지동원이 득점포를 가동해 자신감을 얻었으며, 권경원의 A매치 데뷔골, 이청용의 멀티 도움, 디종에서의 활약을 대표팀으로 연결한 권창훈의 활약 등 해외파 선수들이 가진 기량과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신태용 감독은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자재로 전환하며 경기하는 자신의 축구 철학을 입히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했다. 앞서 언급한 변칙 윙백이 남긴 구조적 숙제는, 러시아전에 펼친 실험의 효용성에 의문을 남겼다. 

신 감독의 실험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면, 그것이야 말로 문제다. 쉽게 잡기 어려운 유럽 원정 평가전, 개최국을 상대로 한 평가전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허비해버린 꼴이 된다. K리그와 약속만큼이나 월드컵 본선 로드맵도 중요하다.

K리그 전원 제외 합의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신 감독에게 변형 스리백이나, 3-4-3 포메이션은 갑자기 튀어나온 개념은 아니다. 신 감독은 전문 레프트백 윤석영 마저 부상으로 하차하는 악재 속에 3-4-3 포메이션을 대안으로 꺼냈다. 윤석영 부상이 아니었다고 해도, 신 감독에게 이 전술은 계획 안에 있었다. 

포백과 스리백의 전환, 윙백의 전진을 유도하는 ‘변형 스리백’은 현대 축구의 전술 트렌드다. 신 감독은 2014년 9월,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 치른 베네수엘라-우루과이와 A매치 친선 경기 당시 기성용을 스리백 중앙에 세운 스리백을 시도했고, U-20 대표팀에서도 센터백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올리거나, 수비형 미드필더를 두 센터백 사이에 끼워 넣는 변형 스리백을 가동했던 바 있다. 

윤석영 부상이라는 악재가 있었지만, 아우크스부르크의 출전 명단에 들지 못하는 지동원을 선발한 신 감독은 도르트문트의 박주호도 부르려면 부를 수 있었다. 소집된 선수 중 오재석, 임창우, 장현수 등을 풀백 자리에 기용해 포백을 시험할 수도 있었다. 10월 A매치는 신 감독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제한적었던 게 사실이지만, 3-4-3 포메이션을 선택한 것이 궁여지책이었던 것은 아니다. 

신 감독이 포백을 쓰겠다는 마음이 확고했다면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서 주로 라이트백으로 서던 장현수를 풀백으로 두고, 오재석을 레프트백으로 선발 출전시키거나 박주호를 선발하는 등 엔트리 구성 과정과 선발 선수 선택 과정에 고민의 폭이 달라졌을 것이다. 

신 감독도 "장현수가 변형 스리백에서 포어 리베로 역할을 맡았는데 내용 면에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고 했고, 장현수도 "우리가 하고자 하는 축구를 조금이나마 보여준 게 다행이다. 앞으로 변형 스리백 전술을 더 가다듬으면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러시아전 실험이 일회용이 아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 ⓒ연합뉴스

◆ 불투명한 러시아전, 선명해질 모로코전

신 감독은 결과가 중요했던 최종예선 마지막 두 경기에서 안정 위주로 경기로 무실점 경기를 했다. 러시아전은 실점 리스크를 안고 변형 스리백을 실험했다. 조금 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고 자 했다. 2-4 패배라는 결과는 물론이고, 내용면에서도 만족을 말하기 보다 숙제가 더 큰 경기였다.

선수 개개인의 실수나 감독의 판단 오류, 패착 등에 집중해 비난의 날을 세우기 보다 구조적 결함을 짚고, 향후 개선 방향을 숙고할 시점이다. 패배에 대한 면죄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0-4로 질뻔한 경기가 2-4로 끝났지만, 점수 너머에 드러난 성과와 과제를 더 통렬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신태용호의 10월 유럽 원정은 이제 절반의 일정을 소화했다. 예선전 없이 본선을 준비하는 개최국 러시아의 발전 과정이나 완성도를 이제 2기 멤버를 이끌고 유럽 원정에 나선 신태용호와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결과 보다 과정, 점검이 중요한 평가전 성격의 일정이다. 러시아전은 한국도 러시아도 변수가 많았던 경기다.

10월 10일 만날 모로코는 치열하게 아프리카 예선을 치르고 있는 정예 군단이다. 노르딘 암라바트(왓포드), 유네 벨란다(갈라타사라이), 우스마 탄난(라스팔마스), 파이살 파이르(헤타페), 메흐디 베나티아(유벤투스), 아시라프 하키미(레알마드리드) 등 유럽 빅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즐비하다. 선수 구성을 봐도 러시아 이상의 전력을 구축한 상대다. 

모로코와 경기에서는 전술적으로나 조직적으로 더 나아진 모습으로 실험과 단련을 이어가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물론, 모로코 전 역시 평가는 점수가 아니라 내용으로 내려야 한다. 쌓이는 오답 노트 속에 정답으로 가는 길이 있다. 러시아전의 4실점이 과장된 것인지, 혹은 2득점이 과장인지는 모로코와 경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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