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글 이종현 기자, 영상 이충훈 기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만 하나의 개념을 대중에게 인식시키는 사례는 드물다. 리오넬 메시(30, 바르셀로나)는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과 함께 제로톱을 하나의 포메이션으로 정립했다. 프랭크 램파드(39, 은퇴)는 푸른 유니폼과 함께 미들라이커(미드필더+스트라이커)의 시초격인 선수다.

램파드는 프리미어리그(PL) 팬이라면, 심지어 라이벌 팀의 팬이라도 인정할 수밖에 선수다. 램파드는 선수 생활 중 구설수는 없었고, 매 경기 헌신하며 뛰었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3번째로 많은 출전 기록(609회)을 기록한 것에서 그의 진가는 드러난다. 램파드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총 20시즌을 뛰었는데, 30경기 아래로 뛴 시즌은 데뷔 시즌을 포함해 6차례에 불과하다. 20경기로 한정하면 단 2시즌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으로도 106경기 뛰었다.  

램파드는 단순한 미드필더가 아니다. 미드필더지만 득점력이 좋다. 램파드는 페널티킥과 프리킥을 전담할 정도로 킥 능력이 좋았다. 먼 거리에서 무회전 슛은 그의 전면특허였다. 박스 안에서도 골키퍼를 제치고 곧장 득점할 정도로 침착했다. 램파드는 강인하게 뛰면서 수비를 가담했고 동료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했다. 꾸준한 출전 시간만큼이나 경기력도 일정했다. 

램파드는 2011-12시즌 풀럼과 치른 리그 33라운드 경기 전반 45분 살로몬 칼루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했다.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150호 골을 넣은 1호 미드필더 선수가 된 순간이다. 당시 해설자는 램파드의 득점이 터지자 "프리미어리그 통산 150골을 넣은 첫 번째 미드필더입니다"며 램파드의 대기록 사실을 격정적으로 드러냈다.

램파드는 은퇴할 때까지 177골을 넣었다. 앨런 시어러(260골), 웨인 루니(200골), 앤디 콜(187골)에 이어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도움도 라이언 긱스(162도움), 세스크 파브레가스(107도움)에 이어 3번째(102도움)로 많은 도움을 기록했다. 그의 활약이 가장 도르라졌던 시즌은 2009-10시즌인데, 램파드는 리그에서 36경기 출전해 22골 16도움을 기록했다. 램파드의 위엄은 프리미어리그(PL) 홈페이지의 역대 기록란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램파드의 프리미어리그 발자취 ⓒ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램파드는 이처럼 위대한 선수로 남았지만 과거는 혹독했다. 램파드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유소년 출신이다. 하지만 코치로부터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주문을 받을 정도였다. 램파드는 재능은 없었지만 노력으로 이겨냈다. 그런 노력으로 램파드는 1995년 웨스트햄과 프로 계약을 맺었고 1996년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그의 데뷔전 순간 해설가는 "어린 선수의 환상적인 순간입니다. 프랭크 램파드입니다"라며 그의 데뷔 소식을 알렸다. 

램파드는 2000-01시즌을 끝으로 첼시로 팀을 옮겼다. 당시 첼시는 강팀이 아니었지만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부임하고 2004-05시즌 주제 무리뉴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면서 강팀으로 성장했다. 램파드는 무리뉴 감독 체제에서 핵심으로 활약했다. 첼시의 첫 두 시즌 리그 우승을 도우며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미드필더로 발돋움했다. 

램파드는 무리뉴 감독 이후 아브람 그랜트, 루이스 스콜라리, 거스 히딩크, 카를로 안첼로티,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로베르토 디 마테오, 라파엘 베니테스 등 수많은 감독이 오가는 상황에서도 주전 자리를 놓지 않았다. 램파드는 미국 메이저사커 무대로 떠나기 전 계약 문제로 잠시 맨체스터 시티에 몸을 담기도 했지만, 여전히 첼시의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다. 미들라이커의 시초 램파드는 지난 9월 22일(한국 시간) 잉글랜드 국립 축구 박물관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잉글랜드 축구의 레전드로 인정받았다. 

▲ 첼시의 레전드 프랭크 램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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