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임은수 유영 김예림 ⓒ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조영준 기자] "계속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하다보니 그런 것(중2병)은 없는 것 같아요."

14살 소녀 임은수(한강중)는 지난달 초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땄다. 지난달 4일 인천국제공항에 귀국한 임은수는 사춘기 질문을 받고 수줍게 말했다.

임은수와 유영(13, 과천중) 김예림(14, 도장중)은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미래를 책임질 유망주로 꼽힌다. 임은수와 김예림은 올 시즌 두 번째 ISU 주니어 그랑프리를 치렀다. 유영은 올 시즌 데뷔전을 가졌다. 이들은 모두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메달에 도전했다. 그러나 임은수가 2차 대회에서 거머쥔 은메달이 유일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한 과정과 경기 내용을 볼 때 다소 아쉬운 결과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와 일본이 장악하고 있는 세계 피겨스케이팅의 벽을 몸소 체험했다. 또한 국내 대회와는 다른 국제 대회를 준비하는 치열함과 전략도 남겼다.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드러난 과제

유영 임은수 김예림은 지난 7월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7~2018 ISU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웃은 이는 김예림이었다. 그는 국내 대회 점수 가운데 김연아(27) 다음으로 높은 193.08점을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임은수는 174.17점으로 2위, 유영은 170.01점으로 3위에 올랐다.

이들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임은수가 2차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며 다른 선수들의 메달 전망도 밝게 여겨졌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4차 대회에 출전한 김예림은 쇼트프로그램에서 56.79점에 그쳤다. 큰 실수는 없었다. 그러나 프로그램 구성요소 점수(PCS)가 23.77점에 그치며 최종 4위에 올랐다. 15일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막을 내린 7차 대회에서는 프리스케이팅(115.42)과 총점(167.64)에서 ISU가 인정한 개인 최고 점수를 받으며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유영은 이달 초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열린 5차 대회에 출전했다. 주니어 그랑프리 데뷔전에서 총점 163.42점으로 4위를 차지했다. 김에림과 함께 출전한 7차 대회에서는 쇼트프로그램(60.52) 프리스케이팅(117.28) 총점(177.7)에서 모두 5차 대회 점수를 넘어섰다. 유영은 5위로 이 대회를 마감했다.

▲ 유영 ⓒ 대한빙상경기연맹 제공

이번 주니어 그랑프리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유독 4위에 오를 때가 많았다. 이들 앞 순위에는 언제나 러시아 2명, 일본 1명의 선수가 자리했다. 몇몇 경기에서는 러시아와 일본 선수와 비교해 가혹하게 매겨진 점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점을 따지기 전에 근본적으로 개선해야할 과제도 드러났다.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러시아, 일본 선수들에게 밀린 부분은 '비점프 요소'다. 피겨스케이팅의 바탕인 스케이팅 스킬은 물론 스핀에서도 약점이 드러났다. 기본적인 부분에서 딸리다보니 비슷하게 실수를 해도 점수가 더 깎이는 현상이 일어났다. 임은수도 "앞으로 비점프 요소를 더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와 일본의 피겨스케이팅 인프라와 환경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다. 풍부한 선수층에서 나오는 경쟁력과 수년간 쌓은 노하우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완성했다. 특히 러시아 선수들은 스트로킹과 스핀에 투자하는 훈련 시간이 많다. 어릴 때부터 기본기인 스케이팅이 철저하게 다져졌기에 빙판을 질주하는 속도도 빠르고 프로그램 수행 능력도 뛰어나다.

한국도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여전히 스케이팅과 스핀에서 밀리는 약점이 드러났다.

또한 이번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한국 선수들은 유독 점프 회전 부족으로 인한 언더로테 지적이 많았다. 유영의 경우 5차 대회 프리스케이팅에서 트리플 플립과 트리플 러츠가 모두 회전 부족이 지적됐다. 또한 유영과 김예림은 트리플 플립의 점프 에지가 모호하다는 어텐션 판정도 받았다. 이들의 점프 회전수 부족과 어텐션은 국내 대회에서는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

유영은 다행히 짧은 기간에 점프를 보완했다. 그는 세계적인 점프 전문가인 지슬란 브라이어드(캐나다) 코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유영은 7차 대회에서 여전히 플립이 어텐션 지적을 받았지만 나머지 점프는 인정받았다. 유영과 임은수는 국내에서 열린 주니어 그랑프리 선발전에서도 플립이 어텐션 지적을 받았다. 올 시즌 남은 일정을 대비해 보완해야할 과제다.

▲ 임은수 ⓒ 연합뉴스 제공

러시아와 일본이 장악한 은반, 쉽지 않지만 극복해야할 벽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여자 싱글에 진출한 6명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1. 알렉산드라 트루소바(13, 러시아, 개인 최고 점수 : 197.69)

2. 소피아 사모두로바(15, 러시아, 개인 최고 점수 : 192.19)

3. 알레나 코스톨나야(14, 러시아, 개인 최고 점수 : 197.91)

4. 다리아 파넨코바(15, 러시아, 개인 최고 점수 : 196.55)

5. 아나스타시아 타라카노바(13, 러시아, 개인 최고 점수 : 196.68)

6. 기하라 리카(15, 일본, 개인 최고 점수 : 194.24)

* 예비 명단 3순위 - 임은수 개인 최고 점수 : 186.34

7차례 걸쳐 진행된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6명의 선수는 파이널에 진출한다. 한국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김연아가 2005년 진출한 이후 12년간 나타나지 않았다.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은 러시아 선수들이 독식할 기세였다. 그러나 마지막 7차 대회에서 일본의 기하라 리카가 극적으로 합류했다. 기하라는 프리스케이팅에서 활주 도중 두 번이나 빙판에 크게 넘어졌다. 트리플 악셀과 더블 악셀 + 트리플 토루프에서도 착지가 흔들리며 빙판에 손을 짚었다.

그럼에도 기하라는 더블 악셀 + 트리플 토루프 점프에서 한 번 넘어진 유영(117.28)보다 높은 점수(119.09)를 받았다. 그는 지난달 라트비아 리가에서 열린 3차 대회에서 은메달을 땄다. 만약 이번 7차 대회에서 3위 안에 진입하면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막차행을 탈 수 있었다.

▲ 아사다 마오 이후 트리플 악셀을 뛰며 일본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기하라 리카 ⓒ GettyIimages

기하라는 큰 실수를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동메달을 목에 걸며 파이널 진출에 성공했다. 이번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은 오는 12월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된다. 러시아 선수들이 장악한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 일본 선수가 필요했다. 남은 한 장의 파이널 출전권을 놓고 기하라는 같은 국적 동료인 야마시타 마코(14)와 아라키 나나(15)와 경쟁했다. 기하라는 일본의 유망주들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그는 실전 경기에서 선배 아사다 마오(27) 이후 트리플 악셀을 뛰고 있다. 또한 쿼드러플(4회전) 점프에 도전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혀 '피겨 천재'로 인기몰이를 했다.

결국 이들 가운데 가장 지명도가 큰 기하라가 자국에서 열리는 주니어 그랑프리 출전권을 얻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 최고 점수를 받은 유영과 김예림의 순위는 떨어졌다. 유영과 김예림 임은수는 이번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러시아와 일본 선수들의 순위 쟁탈전에 밀릴 때가 많았다.

김연아와 활약했던 주니어 시절과 박소연(20, 단국대) 김해진(20, 이화여대)이 뛰던 시대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변했다. 러시아는 매해 많은 유망주들을 국제무대에 데뷔시킨다. ISU의 후원을 쥐고 있는 일본도 이에 질세라 어린 선수들을 꾸준하게 내보내고 있다.

▲ 김에림 ⓒ 연합뉴스 제공

이런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비슷한 기술을 구사해도 한층 완벽하게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러시아와 일본이 장악한 피겨스케이팅 무대에서 과거 영광을 누린 미국과 캐나다 선수들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특정 국가가 독주하고 있는 현재, '포스트 김연아'를 꿈꾸는 한국 유망주들이 힘겹게 도전하고 있다.

한국의 국제 대회 경쟁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환경을 탓하기 전에 이번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국내 대회와는 다른 국제 대회에 임하는 새로운 전략도 시급하다.

유영 임은수 김예림은 이번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귀중한 경험을 했다. 이제 출발점에 선 이들은 빙판에서 성장을 위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심판의 채점으로 결과가 나오는 피겨스케이팅은 선수의 노력만으로는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 이번 경험을 토대로 국제대회를 준비하는 새로운 지도그리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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