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최근 한국 축구와 관련된 소식은 온통 부정적인 이야기로 도배돼 있다.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위업을 이뤘으나, 예선전에서 부진한 경기력에 어부지리로 얻은 성과라는 점에서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최근 여섯 번의 A매치에서 3무 3패로 부진하면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62위까지 떨어져 사상 처음으로 중국(57위)에 추월당하기도 했다. 

대표 팀 성적과 경기력으로 드러난 위기는, 대한축구협회의 위기 관리 능력과 대응력에 대한 질타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일이 지난 한 달간 진실 공방 속에 책임론으로까지 번진 거스 히딩크 감독 논란이다. 이러한 부정적 흐름은 비난의 화살을 넘어, 한국 축구, 대표 팀 경기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19일 오후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쇄신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성이 없었다. 성찰보다 해명에 가까웠다. 여론의 논란과 의심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스포티비뉴스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국 축구의 문제를 진단하고 축구가 다시 국민의 희망이자 기쁨으로 부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기획해 5회에 걸쳐 보도한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한국-러시아전은 오전 7시에 열렸음에도 KBS 16.6%, MBC 13.5%, SBS 8.5% 등 합산하면 시청률이 38.6%에 이른다. JTBC에서 중계한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시청률은 국내 및 아시아 지역에서 열려 시청 시간이 편했지만 평균 10%대. 지난 8월 30일 치른 절체절명의 한국-이란전의 경우 16.5%였고, 9월 5일 한국-우즈베키스탄전은 10.3%로 떨어졌다. 월드컵 본선과 예선의 관심 차이를 감안해도 관심이 크게 떨어졌다.

특히 10월 친선 경기 시청률은 시간대와 대전 상대를 감안하면 저조하다. SBS가 중계한 한국-러시아전 시청률은 10.6%, MBC가 중계한 한국-모로코전 시청률은 6.6%에 불과했다. 꾸준한 하락세다. 러시아전은 추석 연휴 기간, 밤 11시에 열렸고, 모로코전도 밤 10시 30분으로 프라임 시간대에 중계된 점을 고려하면 A매치의 인기가 뚜렷하게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기는 안 보는데, 비판의 소리는 거세다. 한국 축구는 ‘국민 안줏감’으로 전락했다. 너도나도 비판하며 ‘씹는 용도’로 소비되고 있다. 국민의 자부심과 희망이 돼야 할 대표 팀은 외면의 대상이 됐다.

관심이 떨어진 이유는 기대감을 주지 못하는 경기력에 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원인과 책임은 궁극적으로 감독과 선수의 문제를 떠나 대표 팀 운영을 총괄하는 축구협회에 있다는 게 현장의 시선이다. 협회가 갖는 대중적 영향력과 이를 통해 발생하는 각종 수익의 중심에 대표 팀이 있다. 대표 팀의 부실은 곧 협회의 부실로 이어진다. 최종 책임자는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다.

김호 전 대표 팀 감독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정 회장 주위에 ‘예스맨’이 너무 많다”며 직언할 수 있는 내부 인사가 부족하다고 했다. 아예 직언이나 소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월드컵 예선 도중 선수단과 대중의 신뢰를 잃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적절한 경질 시점을 놓친 배경에 정 회장의 의중이 있었다.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중국전 패배 후 해임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협회 내부 관계자도 정 회장 체제의 아쉬움이 소통에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협회 내부 인사는 “정 회장이 부임하고 나서 월요일마다 직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했다. 실무자들이 이 자리에서 여러 가지 의견을 냈는데, 거의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실무자들도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모든 요청이나 건의를 수용할 수는 없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면 소통이라고 할 수 없다. 이야기하는 쪽에서도 맥이 빠진다. 이런 일이 취임 후 내내 이뤄지면서 협회 소통 구조는 경직됐다.

정 회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협회 내 소통 문제에 대해 “누구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문제점은 잘 파악하고 있다. 해결책에 시간이 걸린다. 축구 관련 이해 관계자나 축구협회 안에서, 축구뿐 아니라 여러 관련 기관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빨리빨리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있다”며 다른 견해를 취했다. “소통이 잘되고 있냐, 안되고 있냐 이것은 주관적인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로 현장에서 토로한 고충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일축했다. 

축구계의 대표적 ‘야당 인사’로 꼽히는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예견된 참사로 가고 있다”며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한국 축구 선수들의 기량이 한계점에 와 있다. 개인 성향이 강한 선수들을 통솔할 리더십의 부재에 대해 정 회장이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안이한 판단력이 더 큰 화를 자초할 것이다.”

대표 팀 감독 선임, 이를 결정할 수 있는 기술위원장 선임 결정권은 정 회장에게 있다. 히딩크 논란 와중에 한 달이 넘도록 정 회장은 직접 교통정리에 나서지 않았다. 19일 기자회견을 열었으나 김호곤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이 15일 회견에서 했던 설명과 동어반복이었다. 사태를 크게 만든 김 위원장의 책임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정 회장은 조직 개편과 임원진 개편 등 인적 쇄신을 말했으나 모든 논란의 중심에 있는 김 위원장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기술위를 장기적으로 운영하며, 대표 팀 감독 선정 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겠다고 한 뒤, 어느 쪽이든 보직을 유지해 힘을 실어 주는 방향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 

신 교수는 “회장의 최측근이 정 회장의 눈치를 살피기 바쁘다. 사심과 행정 능력 부족, 판단의 한계로 계속 헛발질을 할 것이다. 이럴 때 (정 회장이) 자문역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부패한 행정가들”이라고 질타했다.

"결단을 못하는 건, 현대 집행부가 오랫동안 협회를 이끌면서, 자신들 스스로가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자기 사람들 외에는 사람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돌려막기'를 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인사에 책임을 묻고자 사람을 바꿔야 하는데, 확신이 안 드는 것이다. 인사 기본이 잘못됐다. 혁신이라는 단어 그 자체로, 분위기를 일신하고, 협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털어 버리고, 신태용 감독에 대한 비판을 일신하는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안하느니만 못한 회견을 했다." 

협회 집행부를 쇄신해야 한다는 소리가 거세다. 대표 팀 깊숙한 곳에서 일했던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협회 수뇌부와 기술위원회의 경험과 노하우, 역량이 부족해 대표 팀에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정 회장이 결단력 있게 밀어붙이지 못한다. 담대하지 못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번 논란에 대한 회견에서도 축구계에서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 정 회장의 자세가 재현됐다. 이른 시일 안에, 추후에, 조만간 결정하겠다는 발언이 대부분이었다. 회견을 통해 문제를 일단락하지 못했다. 내부 논의 과정에서 반발과 반대 의견을 제압하고 강단 있게 개혁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지 못했다.

경직된 사고, 불통, 무능 등 다방면에서 문제를 지적 받는 협회는 대폭적인 인사 쇄신, 전면적인 문호 개방으로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고 행정 능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지금부터라도 단계적으로 수행하며 한국 축구 전반의 발전을 꾀해야 한다.

한국 축구는 바닥을 향하고 있다. 여기가 추락의 끝이 아닐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반전을 위한 혁신을 해야 한다. 모든 키는 정 회장이 쥐고 있다. 공개적으로 개혁 의지를 천명했으나, 구체적으로 알려야 한다.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대중을 설득하고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몇 마디 사과와, 그간의 비판에 대해 해명하는 수준으로는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