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몽규 회장 ⓒ한희재 기자


[스포티비뉴스=한준 기자] 최근 한국 축구와 관련된 소식은 온통 부정적인 이야기로 도배되어 있다.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위업을 이뤘으나, 예선전에서의 부진한 경기력에 어부지리로 얻은 성과라는 점에서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 최근 여섯번의 A매치에서 3무 3패로 부진하면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62위까지 떨어져 사상 처음으로 중국(57위)에 추월당하기도 했다. 

대표팀의 성적과 경기력으로 드러난 위기는, 대한축구협회의 위기 관리 능력과 대응력에 대한 질타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일이 지난 한달간 진실공방 속에 책임론으로까지 번진 거스 히딩크 감독 논란이다. 이러한 부정적 흐름은 비난의 화살을 넘어, 한국축구, 대표팀 경기에 대한 냉소와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19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쇄신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성이 없었다. 성찰보다 해명에 가까웠다. 여론의 논란과 의심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스포티비뉴스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국축구의 문제를 진단하고 축구가 다시 국민의 희망과 기쁨으로 부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시리즈를 기획해 5회에 걸쳐 보도한다.

[한국축구 긴급진단]
① ‘국민 안줏감’ 전락한 한국축구, 소통 없는 협회장 리더십이 화 키웠다
② 경험 없는 기술위-퇴보한 대표팀 : 인재 낭비-시간 낭비-돈 낭비
③ 속수무책 행정력 : 실무 모르는 회장단, 현장과 괴리된 의사 결정
④ 위기의 K리그, '협회'와 엇박자에 설상가상
⑤ 전문가 제언 : 협회의 혁명적 결단이 필요하다

▲ ⓒ곽혜미 기자

“빠른 결재가 필요한 부분까지 회장 보고가 필요해 지체되고, 조금 더 숙의가 필요한 부분은 반대로 급격하게 진행된다.”

대한축구협회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실무를 담당하는 협회 직원들은 벙어리 냉가슴이다. 협회에 대한 질타의 소리가 크지만, 현장에서 눈코 뜰새 없이 바삐 움직이며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뛰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의사를 결정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젊은 실무진과 나이든 집행부간 세대 차이는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다. 나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세대간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과 시도가 없는 불통 상태가 문제다. 한 협회 내부 인사는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문화가 잘 형성되지 않았다. 팀 안에서 소통이 잘 되어도 실이나 윗 단계로 갈 때 소통이 부족하다. 어르신 눈치를 보며 의견 수렴이 어렵다"고 했다.

세대 차이와 더불어 또하나 결정적 문제는 회장단의 실무 경험 부족이다. 정몽규 회장과 김호곤 부회장 등 회장단은 협회의 현장 행정 실무 경험이 없다. 회장단 모두 축구에 대한 애정이 있는 인사지만, 협회 행정의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는 이들의 ‘탁상행정’은 현장과 괴리를 초래하고 있다.

협회 내부 인사는 “정몽규 회장이 부임하고 월요일마다 직원들과 식사하며 소통했으나 건의한 것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제는 건의 자체를 안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실무진이 토로하는 고충의 배경은 회장단의 미비한 행정 경험이다. 

“축구선수와 감독으로 오랜 시간 일해온 노하우가 있겠지만, 행정은 그와 다른 부분이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내 주장을 펴기도 해야 하지만 여러 다른 의견을 듣고 판단하는 일이다. 축구인 출신으로 행정에 들어온 분들은 대부분 자기 주장은 강하게 펴지만 다른 의견을 듣는 일은 원활하지 않다.”

주요 안건을 결정하는 과정에도 실무진의 상황이 반영되지 않는다. 회장 선까지 보고할 것 없이 사무국 차원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도 회장 결재까지 이어져 시간이 지체되며 문제가 되는 일이 있다. 현장에서는 조금 더 숙의하고 결정하길 바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회장이 직접 밀어붙여 급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었다.

사무국 내 최고 직급에 있는 이들도 과감한 판단을 하지 않는 실정이다. 사후에 책임을 물을 소지가 있는 사안은 회장단으로 결정을 넘기고, 회장단은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린다. 의견 괴리는, 회장단이 나이든 인사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세대 차이, 그리고 실무를 경험해본 인사가 회장단에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통찰의 차이가 복합적으로 이뤄져 발생한다.

어느 조직과 회사든, 현장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내려지는 의사 결정, 실무진이 납득하지 못하는 일방향적 업무 지시는 조직 내 불만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결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말단 직원부터 열심히 경력을 쌓아도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직급은 실장이다.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위치에 도달할 수 없는 구조다. 행정 요직은 모두 축구인 경력을 배경으로 가진 인사들이 불쑥 선임된다.

축구인 출신 행정가는 필요하다. 지도자와 선수 등 현장의 소리를 반영하고, 실무진이 미처 알지 못하는 축구계 생리를 반영한 행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그동안 축구인 출신 전문 행정인 육성을 체계적으로 진행하지 못했다. 그 결과 행정에 참여하는 축구인의 능력 문제가 협회의 행정 실패를 야기하고 있다.

은퇴 이후 행정에 뜻을 갖고 있던 선수들도 각기 다른 이유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한국축구의 가장 낙후된 부분이 행정으로 남아있다. 축구인 출신의 유능한 행정가를 키우지 못했다면, 협회 내부에서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해온 인물을 회장단 내지 고위 임원으로 올려 현장의 소리를 듣고 다양한 의견을 나눠야 한다.

실제로 협회의 각 위치에서 일하는 실무진과 만나보면 각자의 전문성과 축구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 협회 행정 전체에 의미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협회 내부 인사들은 최근 협회 행정의 잡음이 나온 배경으로 직제 개편도 꼽았다.

“구조적으로는 팀제가 되면서, 서로 자기 팀을 챙기려는 경향이 강하다. 예전에는 부서라고 해봤자 6,7부서밖에 없었다. 국과 실 체계였다. 지금은 6개실, 15, 16팀이 되면서 예전보다 더 세분화되고, 팀이 많아진 상태라 팀간 소통이 더 어려워졌다. 예전에도 부서간 소통이 중요하다고 얘기했는데 더 부족해졌다.”

▲ ⓒ곽혜미 기자

불통과 팀 조직 이기주의가 팽배해지면서 협회 내부에 불신이 싹텄다. 협회 안팎의 인사들이 내리는 지적을 보면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개선할 수는 없지만, 당장이라도 개선을 위한 개혁이 필요하다.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는 고위인사부터 쇄신하고, 정 회장도 소통의 범위를 넓혀 낮은 단계부터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 회장은 19일 기자회견에서 협회 내부 인적 쇄신에 대해 말했다. “인적 쇄신에 대해선, 2기가 출발한 지 꽤 되었다. 새로운 인재를 계속 발굴하고, 좋은 협회 직원이나 좋은 축구 지도자들을 계속 발굴하는 게 협회의 책임이다.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서 협회를 젊고 활동적이고, 축구인과 팬들과 서로 상호 교류하고, 안을 수 있는 이런 방향으로 가도록 하겠다.”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인사를 어떤 보직에, 어느 정도의 권한을 맡길지 언급은 없었다. 그동안의 소통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반론적 해명이었다.

더구나 이날 정 회장은 회견에서 소통 문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피력했다. “누구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문제점은 잘 파악하고 있는데, 해결책이 좀 더 빠르고 시간이 걸린다. 또 축구와 관련된 이해관계자가 축구협회나 안에서, 아니면 축구 관련 뿐 아니라 여러가지 관련 기관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빨리 빨리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있지만, 소통이 잘되고 있냐 안되고 있냐는 주관적인 것이다.” 정 회장은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개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어떤 분이 어떤 측면에서 축구협회 직원인지, 아니면 축구 감독분이신지, 지도자이신지, 지방협회장이신지, 학부모이신지 다 다를 것이다. 잘한다는 분도 있고 역량이 모자라서 잘못하는 게 있는지 모르지만 최대한 열심히 해왔다. 나름대로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잘하고 못하고는 많이 갈리고 있는 것 같다. 하여튼 열심히 잘 하고 이번을 계기로 더 열심히 더 잘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하지만, 정 회장과 근거리에서 일했던 바 있는 축구계 고위 인사의 생각은 달랐다.

"리더가 귀를 안열고 마음을 안 연다. 인사가 만사인데. 이미 문제가 된 사람을 그대로 쓰고 바꾸는거 같지만 다시 모았다. 잘한 사람은 10년, 20년 갈 수 있지만, 과거에 실수한 사람이 다 들어있다. 들어와서 새롭게 한게 없다. 정 회장이 나이가 젊다는 점에서 기대를 했다. 현장의 소리를 잘 반영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나이 많은 사람보다 더 고리타분하고 이야기를 안듣더라. 가뜩이나 좁은 소통의 문을 더 좁혔다. 그러니 추락에 날개가 없다." 


정 회장은 기자회견 발언에는 그간 행정과 운영에 대한 성찰보다 지금까지 하소연과 아쉬움을 토로하는 인상이 짙었다.

“올해 시작하면서 목표가 있었다. 네 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첫째, 평양에서 열리는 여자 대표팀이 아시안컵 본선에 나가서 다시 한번 월드컵에 나가는 것. 둘째, 올해 FIFA 집행위원 선거에서 국제 무대에 나가는 것. 셋째, 20세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해서 8강 안에 드는 것. 넷째, 월드컵을 9회 연속 진출하는 게 목표였다. 이 네 가지 중에 세 가지를 달성했다. 하나는 목표치에 약간 모자랐다. 많은 분이 수고해서, 약간 모자랐는데, 하지만 축구팬과 국민들의 높은 기대와 열망 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더 열심히 하겠다.”

정 회장은 그간 협회가 목표 달성과 수행을 위해 열심히 일해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 최근 논란의 궁극적 원인을 대표팀 경기력이라고 진단했다. 김호곤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의 현실인식과 다르지 않았다. 여론은 그 점에 공감하지 않고 있다. 이날 회견이 논란을 불식시키지 못한 것은, 행정 전반에 대한 비판, 인적 쇄신 요구에 대한 대응이 확실히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팀의 경기력만 회복되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만 내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릴 것이라는 생각은 안일하다. 이게 다 경기력 탓이라고 치부하면 간단하다. 하지만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면 해결은 요원하다. 

한국 축구계 고위 인사는 대표 팀의 경기력 부진은, 협회의 부실한 행정력이 낳은 결과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FIFA 등수만 문제가 아니다. 본인이 FIFA, AFC에 들어가서 한국 축구를 위해, 한국축구 위상을 위해 한 일이 뭐가 있나? 국제 인력을 늘렸나, 국제 위원을 배출했나? 본인 포지션만 가져갔다. 3,000억 예산을 만들어놓겠다는 공약을 지키기는커녕 예산이 부임 전보다 깎였다. 히딩크가 오고, 안오고 문제가 아니라 정몽규 회장의 4년을 돌아봐야 한다."

신문선 명지대 교수는 "변화를 주겠다고 하고, 혁신하겠다고 하는데 자기 사람 외엔 전부 불안해 한다. 독재를 오랫동안 해온 정권의 특징이, 다른 사람을 못 믿는 것이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내부적으로 쓸 사람이 없는 것이다  다시 한번 현대 집행부가 갖고 있는 인력풀의 한계를 확인한 것"이라며 현 협회 수뇌부의 불통 배경을 짚었다. 

"행정하는 사람, 경영하는 사람은 냉정해야 한다. 어떤 상항이든 경우의 수를 준비해야 한다. 12월을 준비해야 한다. 국민들이 축구를 놓고 이렇게까지 집단적으로 들고 일어난 적이 없었다. 12월에 경기가 잘못될 경우, 어떻게 뒷감당을 하려고 하나. 축구 대표팀과 협회, 한국 축구가 광의적으로 중병에 걸렸는데, '대일밴드'나 붙이고 '옥도징끼'를 바르고 치료했다고 하는 거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경기력만 얘기하는데. 월드컵에서 성공하려면 경기력뿐 아니라 협회, 대표팀, 미디어, 국민이 똑같이 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콘세서스(공동체 구성원의 동의)를 이뤄야 한다. 협회는 경기력만 탓하고 있다."

지금 축구협회는 모든 면에서 쇄신해야 한다. 정 회장이 실각을 면하려면 이제부터라도 확고한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인사가 만사다. 협회 외부는 물론 내부에서도 쇄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조직 개편과 임원진 개편 문제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단행해야 한다. 

글=한준 (스포티비뉴스 축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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